행복한 삶/삶의등대▲

조선 국왕이 무릎꿇고 항복한 까닭

영원한 울트라 2007. 9. 27. 14:14
우리 역사를 보면, 일제 36년을 제외하고는,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은 적이 없다. 근대 이전에는 중국 왕조가 팽창할 때마다 침략을 받았지만, 국가를 송두리째 빼앗긴 적은 없었다. 이것은 항쟁과 더불어 적극적인 외교를 통해 가능하였다. 언제나 강대국 틈에 끼여 있던 우리로서는 생존을 위해 국제정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일이 중요했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중국 왕조와 조공-책봉 관계를 맺었다. 중국 왕조가 우리 국왕을 책봉하고, 우리는 그 왕조에 조공을 바치는 형식이었다. 중국에 사대했다는 것이 이를 말한다. 불평등한 관계였지만, 중국 주변의 모든 나라들이 그렇게 했다. 당시의 세계질서였던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의 국제적 위상을 인정받았고, 더욱 중요하게는 중국의 선진문화를 수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공-책봉 관계 아래서도 중국의 내정 간섭은 받지 않았다. 책봉이란 것도 우리나라에서 국왕이 즉위한 뒤에 중국이 추인하는 절차에 불과했다. 사대가 불가피했던 시대적 제약 속에서나마 자주를 지켰던 것이다. 이를 위해 중국 왕조들과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타협했는데, 언제나 철저하게 실리를 추구했다. 고려 초 서희의 외교는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거란이 침입해 왔을 때, 서희는 송 대신 거란에 사대하는 조건으로 전쟁을 막고 청천강 이북 땅을 회복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거란의 목적이 송을 공격하기에 앞서 고려와 송의 관계를 끊는 데 있음을 간파했던 것이다. 송과 단교하는 데 따른 고민이 없지 않았지만,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더 나아가 고려는 거란과 송이 대립하는 상황을 이용하여 자주를 극대화하였다.

이것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이 조선의 외교이다. 중국에서 여진족이 흥기하는 상황에서 조선의 정치인들은 명에 대한 의리를 앞세워 친명정책을 고집했다. 그 때문에 청의 침략을 자초하여 수도 한양이 유린되고 국왕이 무릎을 꿇고 항복하는 치욕을 당했다. 국제 정세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실리보다 명분을 앞세웠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고려는 몽골과의 대결에서도 생존과 자주를 지켜냈다. 몽골이 세계적인 대제국을 건설하는 동안 주변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침략을 받았다. 고려도 예외가 아니었지만, 고려는 끈질긴 항전 끝에 몽골과 조공-책봉관계를 맺음으로써 몽골 중심의 세계질서 속에서 드물게 국가를 유지하였다. 몽골 역사상 조공-책봉관계 수립은 처음 있던 일로, 고려의 적극적인 외교가 몽골의 정책을 바꾸는 데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공민왕의 반원운동은 국제정세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여 자주성을 회복한 사례이다. 몽골과 강화한 이후 고려는 약 100년 동안 몽골의 간섭을 받았다. 중국과의 조공-책봉관계 아래서 자주성이 가장 심하게 훼손된 시기였다. 그러한 가운데 공민왕은 반원운동을 일으켜 몽골 세력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중국에서 몽골이 쇠퇴하는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몽골의 간섭에서 벗어나려는 의지와, 국제정세의 변동이 맞물려 가능한 일이었다.

근대 이후 새로운 세계질서가 형성되면서 자주는 더욱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었다. 반면, 우리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자주를 지키기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이런 어려움이 우리로 하여금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 아닐까?

자주가 명분이나 구호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러나 그에 앞서 스스로 자주를 지키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 다음에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주변의 정세와 우리의 능력을 냉철하게 판단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그 능력에는 군사력, 경제력뿐 아니라 국민의 단결 같은 보이지 않는 힘도 포함될 것이니, 이를 극대화하는 것이 바로 정치의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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