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대중 토론에서 성장과 분배의 관계는 오해를 낳기 쉽다. 정치인들의 단골 메뉴인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추구한다’는 말은 결국 아무 할 말이 없다는 얘기다. ‘성장 없이 분배 없다’는 주장은 ‘굶으면 배고프다’는 표현에 불과하다. 또 ‘분배 없는 성장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라는 말은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얘기인가. 이 세 가지 표현이 부분적으로나마 성장과 분배에 관한 우리나라 중도, 보수, 진보의 시각을 대변하는 것이라면 슬픈 일이다. 국민 후생이 걸린 명제를 놓고 공허한 말싸움밖에 할 일이 없는가.
장기적으로는 상호보완 가능
성장과 분배에 관해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관계를 정립하기 어렵다는 것이 다양한 국가 경험과 비교 연구에 근거한 학계의 최근 중론(衆論)이다. 즉, 양자가 함께 좋아지는 나라도 있고, 함께 나빠지는 나라도 있고, 서로 상충관계를 보이는 나라도 있다는 것이다. 이때 간과해선 안 될 사실이 있다. 성장은 정도의 차는 있지만 모든 계층의 후생을 높인다. 성장과 분배는 따로 갈 수 있지만 성장 없이 빈곤을 없애기는 불가능하다.
성장과 분배의 관계에서 특히 유의해야 할 점은 단기와 장기의 구분이다. 경제 위기를 겪고 난 뒤 대대적인 구조 개혁을 벌이는 경우 일시적으로 성장과 분배가 함께 나빠지기 쉽다. 그러나 성공한 개혁은 두고두고 고르게 잘사는 경제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일반적인 경제 상황이라면 단기에는 성장과 분배가 엇갈리게 움직일 확률이 높다. 정부 예산은 한 해 단위로 짜이기 때문에 어느 해 정부 정책의 초점을 성장이냐 분배냐 식으로 택일해 말하는 사람도 많다. 이처럼 제한된 국가 자원을 투자나 연구 같은 생산적 용도에 쓰는 것과 소비나 복지 목적으로 쓰는 것은 경제적 효과 측면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분배나 복지 관련 지출이 지속적 성장에 도움을 주는 경로가 존재한다. 저소득 계층에 대한 교육 및 의료 지원, 중소기업에 대한 훈련 및 연구개발 지원은 장기적으로 분배와 성장을 함께 향상시킬 수 있는 수단이다. 나아가 정치경제적 맥락에서 볼 때 지나친 분배 악화는 향후의 지속적 성장을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 그래서 사회 안정이 흔들리며 성장 투자가 위축될 수도 있고 투표 결정권을 쥔 중산계층의 거센 복지 요구에 맞춰 인기영합적인 복지 지출이 늘어날 수 있다.
성장과 분배가 장기적으로 상호 보완적일 수 있는 여지가 큰데도 둘의 관계를 오로지 이념 대립으로만 몰고 가는 것은 잘못이다. 적정 분배가 무엇인지를 둘러싼 철학적 논쟁은 불가피하겠지만 현실 정책에서 성장 분배와 관련해 이념이 진입할 여지는 의외로 많지 않다. 오히려 실패한 정책을 위장하거나 정치적 반대파의 정책을 공격하기 위해 이념에 호소하는 변태적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좋은 성장 정책은 어차피 적절한 분배를 포함해야 하고, 좋은 복지 정책은 지속적 성장을 전제로 성립할 수 있다. 결국 누가 좀 더 효과적인 정책 조합을 만드느냐가 관건이다. 보수가 복지를 홀대하고 진보가 성장을 무시한다는 이분법은 애초에 틀린 얘기다.
이념대립으로 몰고가면 잘못
단기적인 충돌 가능성이 높은 성장과 분배 목표를 장기적으로 함께 달성하기란 쉽지 않다. 잘못하면 둘 다 나빠질 수도 있다. 그래서 능력 있는 정부를 고대하는 것이다. 보수건 진보건 이념 타령이나 하는 사람들은 정답이 아니다. 이번 대선에서 성장과 분배에 관해 후보들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를 보면 그들의 경제 식견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행복한 삶 > 삶의등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중의 두 얼굴 (0) | 2007.09.27 |
---|---|
단일 민족의 두 얼굴 (0) | 2007.09.27 |
경제 天動說 (0) | 2007.09.27 |
정신 차려, 대한민국 ! (0) | 2007.09.27 |
어머니 (0) | 2007.09.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