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삶의등대▲

대중의 두 얼굴

영원한 울트라 2007. 9. 27. 14:26
영화 ‘디 워’의 흥행 성공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사회적 현상이다. 대다수 영화 전문가는 디 워를 수준 이하의 졸작으로 단정한다. 문제는 비평가들이 ‘논할 가치가 없다’고 혹평한 이 영화가 8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물론 영화 흥행에서 비평가와 대중의 평가가 엇갈린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영화 전문가들은 디 워 흥행의 이유를 애국심 마케팅이나 심형래 감독의 인간극장식 성공담에서 찾는다. 나아가 디 워를 비판한 비평가들을 폭력적인 표현을 동원해 융단 폭격한 대중의 태도가 파시즘의 대두를 연상시킨다고까지 개탄한다. 이에 반해 많은 관객은 전문가 집단의 비일관성을 공박하면서 이른바 영화 엘리트들이 은연중 내보이는 우월감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얼핏 보기와는 다르게 디 워 논쟁은 한가한 일과성의 사안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전면적인 대중사회로 들어섰음을 웅변하는 사건이다. 세계사적으로 대중의 출현이 산업화와 연계된 근대의 산물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대중은 일정한 경제력을 지니고 대중문화를 소비하면서 민주주의의 주체임을 자처하는 익명의 존재로 정의된다.

‘디 워 논쟁’ 대중사회 도래 의미

하지만 대중사회의 도래에 대한 지식인들의 반응은 사뭇 비판적이었다. 대중이 몰역사적이고 충동적이며 천박하다는 것이다. 선정적 대중문화의 범람과 함께 자발적으로 동원된 대중의 파시즘에의 동참이 그 사례라는 것이다. 디 워 논쟁에서 지식인들이 이제 ‘대중과 싸워야 할 때’라면서 황우석과 심형래를 같은 맥락에 놓고 비판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결국 디 워 논쟁은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 주는 의미심장한 축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제 문화 향수()의 측면에서도 한국의 대중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다는 사실이다. 디 워 현상에 대한 비평가들의 분석은 일리가 있지만 ‘왜 그렇게 많은 관객이 보았는가’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한다.

전문가들이 간과한 점은 디 워가 여름방학 특수를 맞아 가족 관람객을 겨냥한 B급 아동영화였으며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재미있게 보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소박하지만 엄중한 무게를 갖는다. 일부 열광적인 팬들의 과잉행동을 빌미로 디 워 현상이 반()지성주의니 파시즘의 징후니 하면서 일방적으로 폄훼될 성격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논쟁 과정에서 비평가와 대중 모두 선정주의의 폐쇄회로 속에서 상호공방을 거듭했던 측면도 있다.

이렇듯 디 워 논쟁은 대중의 야누스적 얼굴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한편으로 대중은 표피적이며 유행에 휩쓸리기 쉽고 감성적이며 즉물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대중은 생활 속에서 체득한 삶의 실감()을 지니고 있으며 소박한 민심의 흐름을 형성해 역사를 만든다. 대중의 이런 양면적 역동성은 특히 현대 한국정치사에서 유감없이 발휘된 바 있다. 우리 역사의 빛과 그늘을 함께 만든 박정희를 대중이 최고의 위인으로 꼽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2002년 노무현 정권의 출범도 대중 다수의 질박한 삶의 느낌 위에서 비로소 가능했다. 박빙()의 대선 결과는 ‘안정 속의 변화’를 바라는 민심을 반영한 것이었다. 노 대통령의 경거망동이 자초한 탄핵소동에서 대통령을 지키고 압도적인 다수 여당을 만든 것도 대중의 결연한 의지 덕분이었다. 그 후의 역사가 증명하는 바탕 없는 날림 정권과 불량 정치인들의 출현도 결국 한때의 대중의 결정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대중은 우둔하면서 동시에 현명

모순어법이지만 대중은 우둔하면서 동시에 현명하다. 대중은 부화뇌동하면서도 가끔 세상사의 정곡을 찌르는 결정을 내리기도 하는 존재인 것이다. 역설적인 교훈은 우리 모두가 이미, 언제나 대중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있다. 디 워 논쟁이 입증하듯 대중을 가르치기 좋아하는 지식인이나 엘리트도 예외는 아니다. 대중사회는 현대적 삶의 필연적 현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중은 타도해야 할 적이 아니다. 우리 자신의 일부로서, 아둔함과 지혜를 공유한 채 항상 동행해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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