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랑/국내작가소개방

[스크랩] 장욱진

영원한 울트라 2007. 10. 15. 15:17

장 욱 진

 

 


 

출생 : 

1917년 11월 26일


출신지 : 

충청남도 연기


학력 : 

데코쿠미술학교


경력 : 

1954년~1960년 서울대학교 미술대 교수
1958년 국전 심사위원


수상 : 

1986년 제12회 중앙문화대상 예술대상
1937년 전조선 학생미술전람회 최우수상 수상


대표작 : 

도서 '강가의 아틀리에'

 

나는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리며 내 몸과 마음을 다 써버릴 작정이다. 남는 시간은 술을 마시고… "

현대 한국 화단에서 가장 자유로운 정서를 가지고 있는 화가 장욱진은 일제 시대에 태어난 조선의 어린 학생으로서 일본에서 열리는 그림대회에서 일등을 할 만큼 어린 시절부터 그림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그 후 동경미술학교에 다닐 때에도 식민지인으로서, 그림 속에 일본 풍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여러모로 차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인 교수들에게 그 그림 실력만은 인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뒤 서울대 미대 교수를 역임할 때의 장욱진은 여느 교수들과는 다르게 귄위와 형식을 지독히 싫어했다고 해요. 교수임에도 불구하고 줄곧 넥타이도 매지 않은 채 낡아빠진 양복에 고무신을 신고 다니기도 했답니다. 덕분에 새로 들어온 수위들은 그를 구걸 온 사람으로 여겨 문 앞에서 쫓아내기도 했다지요. 대학 정문 앞에서 수위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허름한 옷차림의 교수님을 상상해 보세요. 너무나 재미있지 않나요? 만약 제 주변에 그런 교수님이 계시다면 저는 아주 열심히 그 분을 쫓아다녔을 것 같아요.

그의 또 다른 기벽으로는 죽도록 마셔대는 술에 있습니다. 한번 술을 시작하면 열흘이나 보름씩 밥도, 안주도 거부하고 줄기차게 마셨답니다. 술을 먹는 것도 황송한 데, 밥을 어떻게 먹으며, 더군다나 안주는 미안해서 먹을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고 해요.

그러나 그림을 그릴 때도 술을 먹을 때처럼, 다른 모든 것을 외면한 채 때로는 식음조차 전폐하고는 그림 그리기에만 빠졌습니다. 술조차 입에 대지 않구요. 어떤 때는 몇 년 동안 술을 입에 대지 않고 그림에만 몰두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그림을 다 완성하면 몇 달을 앓아 눕기도 했답니다. 그에게 있어 그림은 살아가는 의미이고, 술은 휴식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 있어 술과 그림은 인생 그 자체였던 거죠.

평생 그림과 술 밖에 몰랐던 그였기에 돈을 지니는 것이나 돈을 버는 행위 자체를 경멸했습니다. 때문에 부인이 책방을 운영하면서 가정 경제를 책임져야 했지요. 그러나 그 부인은 지극 정성으로 남편을 보살폈구요. 덕분에 그는 오로지 그림에만 온 정신을 쏟을 수 있었고,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유희를 주는 그림들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의 명성과 그림의 가치의 반은 헌신적이었던 부인의 몫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렇듯 세상의 모든 위대한 예술가나 선각자, 위인들 뒤에는 그들을 위한 희생이 존재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왕자의 여우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진실이 세상을 아름답고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금 떠오르네요.

어린아이의 그림 같기도 한 장욱진의 그림들은 매우 단순합니다. 그리고 그 크기도 작습니다. 그는 손바닥 만한 화폭 속에 해와 달, 나무와 집, 소와 까지, 가족 등 소박한 이미지를 담아냈지요. 이는 큰 그림엔 집중을 할 수가 없어 싱거워지기 때문이라고 하는 데요. 비록 크기는 작은 그림이지만, 그 속에는 가장 평화롭고 따뜻한 세계가 그려졌습니다. 한국인의 소박한 정서와 가족의 따뜻한 사랑 그리고 가난하지 않은 우리네 풍경 등이 그 안에 곱게 놓여있지요. 어떠한 허영이나 사치로도 그려낼 수 없는, 작지 않은 아름다움 들입니다.

4.19혁명으로 인해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혼란했던 시절, 장욱진은 교수직을 사임하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시골 덕소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틈만 나면 시골의 자연을 찾아 여행을 다녔구요. 산 속의 사찰이나 시골과 같은 자연에서, 혹은 가난하지만 따뜻했던 가족 속에서 마음의 평안함을 구했던 그는 그것을 자신의 그림 속 원천으로 삼았습니다.

겸손하고 욕심없이 살았던 장욱진에게도 삶의 고난이 찾아오는 데요, 오십이 넘어 얻은 막둥이가 15살이 되던 해에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그 자신도 백내장을 얻어 시력을 잃게 되었지요. 그리고는 결국 68세에는 기관지염으로 술과 담배조차 끊을 수 밖에 없었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욱진은 70세가 넘을 때까지 미국, 유럽, 태국, 인도을 여행하며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73세였던 겨울 어느 날, 점심 식사 후 갑자기 그리고 조용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평소의 그답게, 신선처럼, 홀연히, 그렇게 말이죠.

 

 

 

 

 

[자상(1951)]
6.25 전쟁으로 인해 피난 중 에 그려진 그림으로, 일명 <보리밭>이라고도 불리고 있는 그의 자화상입니다. 그런데 그는 피난길에 어울리지 않는 차림으로 화폭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붉은 길을 걷고 있네요. 이는 혼란했던 시절, 대자연의 완전한 고독 속에서 안정감을 찾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그린 그림입니다.

 

 

[자동차가 있는 풍경(1953)]
그의 그림 들 중에 특히 어린아이의 그림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드는 작품입니다. 그만큼 자유롭고 순수한 상상력으로 그려진 그림이란 것이죠. 그는 도시를 싫어했지만 어린아이와 같은 호기심으로 바라본 도시 속 자동차를 그려냈습니다. 이 그림은 그의 작품 중 거의 유일하게 문명의 사물이 들어있는 데요, 그 문명도 나무들과 함께 조화롭고 평화롭게 위치하고 있네요.

 

 

[수하(樹下), (1954)]
해석하자면 나무 아래라고도 할 수 있는 이 그림 속에도 그가 평생을 두고 그렸던 나무와 새가 등장합니다. 그는 늘 잎이 풍성한 나무를 그렸는 데요, 이는 가난하지만 늘 마음만은 풍요로웠던 그의 삶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름 한낮, 나무 아래에서 속옷만 입고, 누워있는 어린 아이의 편안하기만 할 마음 또한 그렇구요.

 

 

[나무와 새(1957)]
잎이 풍성한 나무와 새, 그리고 어린 아이가 화폭의 중심에 놓여있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를 지탱하면서 집들과 마을이 위치해 있는 데요. 이는 우리네 삶의 기반이 자연이라는 그의 삶의 주장을 잘 드러내고 있죠. 세상의 모든 것들이 싸우지 않고 자연과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다운 평화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그의 인생관은 현대 도시화된 사회에서 지쳐있는 우리들에게 깨끗한 산소와 같은 신선한 가르침이 됩니다.

 

 

[달밤(1957)]
어둔운 반달만이 아스라히 그 빛을 잃지 않고 있는 순간입니다. 창문 하나 달랑 있는, 지나치게 검소한 집과 새 그리고 형태만 파악되는 나무들이 충분한 여백을 만들면서 그림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욕심을 부리거나 하지 않고 조용하고 평화롭게 자기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부엌(1973)]
원시시대 그려졌다고 하는 동굴 벽화 같기도 하고, 암호화된 그림 같기도 한 작품이죠. 사람도, 벽도, 부엌의 모습도 모두 단순화되었습니다. 오른 쪽 방에는 아버지와 아이가, 왼쪽 부엌에는 어머니가 앉아 있는 모습인데요, 그의 가족 같네요. 가재도구 하나 제대로 없이, 빈궁하기만 한 살림이지만 그들은 절망하거나 괴로워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이라고 할까요. 그들은 가난하지만 평안하고, 스스로 만족하며,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무(1987)]
백내장 수술 후 완전하지 못한 시력으로 그린 그림들 중 하나인데요,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나무와 새, 소와 해 그리고 사람이 그려져 있습니다. 모두 장욱진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며 세상의 구성원들이죠. 늘 그렇듯 나무가 그림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데요, 이는 나무가 모든 구성원들의 생명과 기운을 공급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나무와 집(1988)]
문 하나 달랑 있는 작은 초가집 안에 화가 자신으로 보이는 인물이 있고, 그의 가족인 듯 한 부인과 아이가 밝은 햇살 아래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즐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햇빛을 즐기고, 새소리를 듣고, 나무가 주는 맑은 공기를 마시며 욕심없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이 가족은 전형적인 한국인, 우리네의 정서입니다.

 

 

[노인(1988)]
그림 한가운데에 크고 잎이 풍성한 나무 한 그루가 놓여있고, 해와 달, 소 그리고 화가 자신으로 보이는 노인이 그림의 네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단순화된 나무도 그렇고, 화가 자신으로 여겨지는 노인의 모습도 수묵수채화처럼 맑고 가볍습니다. 인생의 말년, 그의 마음도 이와 같이 가볍기 때문일까요?

 

 

[밤과 노인(1990)]
이 작품은 그가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그려진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신선의 모습을 한 노인은 바로 작가 자신인데요. 이제 세상을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인지하고 있었는 지, 그는 세상을 등지고 하늘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발 아래 있는 세상은 늘상 그의 바람처럼 어린 아이와 새 그리고 나무로 차 있습니다.

 

 

 

 

 

 

  

출처 : Artist 엄 옥 경
글쓴이 : skyblu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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