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응 성
강원도 평강 출생. 평안남도 순안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 중동중학(中東中學)에 진학했으나
학업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2년 중퇴했다. 1934년 제13회 선전에 출품, 특선으로 입선하고 일본인 미술교사의 주선으로
일본 다이헤이요[太平洋]미술학교 선과(選科)에 입학하여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여러 차례 선전에 출품했다.
해방 후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참가, 1954년 이후 추천작가, 초대작가를 지내고,
1956∼1960년에는 홍익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다.
1954년 대한미협전에서 대통령상을, 1974년에는 대한민국예술원 미술상을 받았으나 타계할 때까지
한번도 개인전을 갖지 못한 채 사망했다.
치밀한 사실적 묘사에 뛰어났으며, 자연주의적 양식을 보여주는 고궁풍경을 많이 그렸다.
가을-손응성 作
손응성은 한국 양화의 역사에 있어서 사실주의의 선구자이다.
그의 사실주의는 단순한 소재의 선택과 사실적 표현으로서의
사실주의가 아니라 마음의 의도를 담아 독특하고 선명한 박진감과
실제감을 강조한 한국적 극사실주의의 성향을 나타낸다.
이는 작가의 주관을 배격하는 태도로 1970년대에
유행하였던 외래적 성향의 하이퍼리얼리즘과는 달리
전통적인 사실주의의 맥락에서 드러나는 정감적인 요소를 농밀하게
내재시킨 것으로 1950년대부터 형성된 작가만의 작풍이었다.
특히 황금빛으로 발산하는 산야의 조형감은 일종의 신비감을
자아내는 작가만의 독특한 표현 언어이다.
정자-손응성 作
외곬의 기질로 화가의 생애를 사실주의로 일관했던 손응성은
명확한 예술적 성향과 철저한 내밀성을 담은 독자적
사실주의의 선구자로 평가되고 있다.
1950년대 중반부터 한국적인 미의식에 바탕을 둔 치밀한 시각과 정감으로
골동을 소재로 한 정물화와 고궁의 분위기를 담은 풍경화에 천착하였다.
이 작품은 뚜렷한 색채의 대조와 놀라운 세밀 묘사를 통해
그의 무성격한 사실주의의 방법과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놋그릇
스키복 입은 여인/손응성/1940년/캔버스에 유채(129x93)
손응성(1916-1979)은 치밀한 사실적 표현의 세필화가로서 사실주의 작가로 평가된다.
그는 초기 작품에서 주로 여성 모델을 소재로 인물화를 그렸다. 그의 인물화가 대개 그렇듯 이 작품 역시 정면을
벗어난 측면이며 의자에 앉아 있는 좌상이다.
이 작품의 경우 손응성 특유의 세밀한 표현이 나타나기 보다는 대담한 요약으로 인물과 기물을 묘사하였는데 이러한 방식이 오히려 볼륨감을 한층 강조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털모자와 신발 위로 약간 내비친 양말의 붉은 색조가 푸른 스키복의 단조로운 색감에 악센트를 주고 있으며 그러한 악센트가 동시에 화면전체에 긴장감을 부여하고 있다.
이 작품은 19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수상한 그의 초기 작품이며 화가로 입문하던 시기의 가장 기념비적인 수작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