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 ‘사(詐)짜’와 ‘타(打)짜’의 세계
신동아기사입력 2008-02-25 10:32
주말 과천 경마장에는 그야말로 다양한 군상이 모인다. 휴일을 이용해 말들의 호쾌한 질주를 즐기면서 ‘2만원, 3만원의 비용을 들이는 것이 10만원짜리 뮤지컬을 다섯 편 보는 것 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스포츠 마니아도 있고, 대박의 기대에 꿈을 싣고 몇 년째 전 재산을 쏟아 부으며 주변을 맴도는 도박중독자도 있다. 하지만 그저 즐기기 위해 경마장을 찾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소수다. 돈을 따기 위해서 오는 인사가 대부분.
이 장면에서 우리는 삶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몇 가지 아이러니를 마주한다. 그 하나는 경마 예상지다. 경마장 주변이나 심지어 스크린 경마장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여러 종류의 경마 예상지는 경마 참가자들에게는 그야말로 복음서다. 그들은 두어 가지 경마 예상지를 사서 손에 들고 줄을 그어가며 우승마를 예측한다. 심지어는 모든 종류의 예상지를 다 산 다음 그들이 중복으로 추천하는 말을 최우선 순위에 두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안쓰러운 풍경이다. 만약 경마 예상지를 만드는 사람들이 정말 우승마를 예측할 수 있다면 그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빛과 소금’이다. 이런 분들은 대통령직인수위에 모셔다가 그 ‘나눔의 철학’에 대해 강연을 들어야 할지 모른다. 자신이 우승 가능한 말을 가려낼 능력이 있는데도 자신의 ‘초능력’을 다른 이들을 위해 나눠 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들은 절대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경마에 참가하지 않는다.
결과를 잘 예측하면서도 자신은 경마를 하지 않고 소중한 정보를 예상지로 만들어 헐값에 파는 것이라면, 스스로 수익을 낼 수 있는 막중한 기회를 나머지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셈이니 나눔의 철학이 있는 분들이고(예상지 판매수익이 경마에서 우승마를 적중시켜 받는 배당금보다 많을 리 없다), 혹여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전망을 파는 것이라면 비윤리적이고 반도덕적이라는 비난을 면할 길이 없다. 설마 자신도 모르는 일을 아는 척하며 그런 예상지를 파는 분은 없을 터이니, 이분들을 어찌 우리 사회의 빛과 소금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증권가와 경마장의 ‘천사’들
시야를 좀 넓혀 보면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에는 이런 분들이 곳곳에서 불을 밝히고 있다. 오늘도 증권방송에는 수많은 전문가가 나와서 대박을 외치고 최고의 종목을 찍어준다. 나중에는 그것도 모자라 ARS나 인터넷 회원으로 가입하면 당장이라도 수십배의 수익을 안겨줄 황금종목들을 추천해주겠다고 한다.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경제신문의 하단에는 ‘어리석은 개미 백성’을 어여삐 여기는 ‘증권시장 황제’와 ‘미다스 손’의 주말강연 광고가 실리고, 그들은 “강연에 참석하기 위해 ‘교재비’ 몇 만원 정도는 지참하는 것이 예의”라고 말한다.
그뿐인가. 신문과 방송에 등장하는 무수한 부동산 전문가 중에도 정작 본인은 변두리 전셋집을 못 벗어나면서, 꼭 집어서 어느 지역 어느 아파트가 올라가고, 어느 동네 어느 집 앞마당에 땅을 사두면 자손만대 땅값이 오를 것이라 일러주는 선지자가 넘쳐난다. 이들도 ‘빛과 소금’은 아니더라도 최소 ‘플래시와 간장’ 정도는 된다.
방송 출연, 그로 인해 유명세를 이어가는 저작활동, 신문기고 등에서 발생하는 보잘것없는 수입에 만족하면서 최고의 기회들을 정작 본인이 잡기보다는 타인에게 베푸는 사람들, 이들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전문가들이다. 그 점에서 보면 필자도, 심지어는 족집게라 하는 증권회사 임원이나 펀드매니저, 애널리스트들도 이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쯤에서 이분들께 도발적인 질문을 한번 던져보자.
“왜 당신들은 스스로 투자해서 재벌이 될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도 쥐꼬리만한 월급이나 받으면서 아직도 회사를 다니고 있는가?”
경마 승률조작 사건에는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 게 있다. 바로 경마 예상지다. |
99%의 재능과 1%의 운
답은 ‘동전 던지기는 100% 운이므로 내가 개입할 여지가 없지만, 도박은 스스로 개입 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박의 ‘시장지배력’은 개입의 정도와 일치한다. 우리네 어린 시절 도박 등용문이던 ‘짤짤이’도 마찬가지다. 아이들도 코 묻은 동전을 들고 도박을 하면서 단순히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나 뒷면만이 나오는 게임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느새 ‘홀짝’으로, 다시 ‘삼치기’로 발전한다. 후자로 갈수록 개입의 정도가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입의 정도가 클수록 우열이 확연하게 가려진다. 상대의 수를 어느 정도 읽거나, 심지어는 남의 눈을 속여서 동전 하나 정도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 고수가 된다. 아이들도 이런 고수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래도 한다.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른들의 세계엔 이런 동전 따먹기 같은 게임은 없다. 그것이 동전을 거래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할 수만 있다면 돌멩이로도 도박을 할 것이다. 홀짝게임에 1억원을 건다면 그것도 엄청나게 큰 도박판이 될 수 있지만, 그 손쉬운 방법 대신 마작이나 훌라, 포커로 이동한다. 왜냐하면 동전 던지기에서 내가 개입할 수 있는 범위는 고작 ‘손장난’뿐이기 때문이다. 동전 던지기에서 다른 사람의 수를 읽는 능력은 아무 소용이 없다. 돈을 거는 사람이 생각을 하지 않고 스스로 동전을 던져서 거기서 나오는 결과대로 돈을 걸면 승부는 온전히 확률의 영역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즉 손동작의 숙련도밖에는 개입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좀 더 복잡한 게임들에선 사정이 달라진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서서히 능력의 차이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때 능력의 차이는 대개 태생적이다. 많은 사람이 포커를 열심히 치면 누구나 ‘도신(賭神)’이 될 수 있으리라 믿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카드와 마작, 화투 등의 경우엔 태생적으로 그것을 잘할 수 있는 재능을 보유한 사람이 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재능, 노래를 잘하는 재능, 춤을 잘 추는 재능이 보통사람의 노력으로 따라잡을 수 있는 거리가 아니듯 이런 도박에서도 재능의 차이는 점점 벌어진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그 사실을 인정하려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황영조가 울진 바닷가를 달린 끝에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고 너도나도 한강변을 달리면 죄다 올림픽 금메달을 딸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런데 유독 도박에서는 ‘1%의 재능과 99%의 노력’이라는 ‘천재론’을 신봉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도박에 빠져든다. 도박에서 이들이 패퇴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99%의 재능과 1%의 운’이라는 도박의 진리를 모르는 데 있다.
그래서 국가가 공인하는 도박들은 대개 개인의 능력에 따른 편차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경마나 경륜, 경정, 심지어 슬롯머신이나 블랙잭까지도 대신 뛰는 말이나, 대신 달리는 자전거 혹은 카드를 나눠주는 딜러가 있다. 다시 말해 확률의 부분에 대해 개인의 차이가 작용하지 않게 만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모든 도박은 ‘99%의 재능’ 부분이 사라지고 공평한 것처럼 보인다. 강원랜드만 해도 승률이 49%에 육박한다. 그럼에도 강원랜드에서 무수한 신용불량자가 양산되는 것은 바로 그 1%의 손실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결국 강원랜드에서 최소한 비기기라도 할 수 있는 확률은 ‘1%의 노력’이 최대한 발휘된 경우뿐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환호한다. 모든 도박은 도박꾼의 처지에서 확률의 결과로 공평하게 배분하지 않고(이를테면 매번 100원을 투자하면 99원을 돌려주는), 하우스(운영자)의 처지에서 공평하기 때문이다. 즉 하우스는 100원 매출당 1원의 이익을 얻는 것이 분명하지만, 도박꾼의 처지에서는 그날의 운에 따라 대박이 터지기도 하고 거덜이 나기도 한다. 그래서 도박꾼들은 소위 그 ‘대박’에 기대를 걸고 다른 사람보다 그것에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믿는다. 심지어 기계가 수천만 분의 일로 그림을 맞춰주는 슬롯머신 앞에서도 잘 터지는 슬롯머신을 고르는 ‘기법’이 있다고 믿을 정도다.
사짜와 타짜
그래서 운영자에게는 확률이 불공평 할수록, 예를 들어 100명이 투자한 1000만원 중에서 990만원을 골고루 나눠주지 않고 몇 명에게 몰아주면 도박이 되고, 공평할수록 게임이 된다. 하지만 도박을 하는 사람의 처지에서는 개인의 노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믿으면 중독성이 더 강해지고, 개인의 노력과 전혀 무관하다고 믿으면 흥미가 사라진다. 그래서 심판관이 동전을 던져서 돈을 나눠주는 도박이 있다고 하면 아무도 그것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도박꾼들이 스스로 동전을 던져서 돈을 나눠 가지게 하면 그 도박은 범국가적 흥행산업이 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사(詐)짜’와 ‘타(打)짜’가 생겨난다. 사짜는 ‘절대 확률’의 세계에서 확률을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만의 비범한 논리로 무장돼 있고, 마치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무림의 비급(秘·#54622;)’이라도 있는 것처럼 행세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들은 비루하며 천박하고 위선적이며 거짓말쟁이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비급의 한 페이지를 슬쩍 보여주며 그것이 마치 엄청난 대가를 줄 수 있을 것처럼 위장하지만, 그들의 말은 모두 거짓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비급’을 파는 대가로 살아간다. 그들은 자신의 비급이 가지에 돈이 열리는 화수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에 마치 그것이 대단한 것인 양 모호하게 포장하지만, 막상 비급의 책갈피를 들춰보면 사기꾼들의 돈다발처럼 뒷면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다.
하지만 타짜는 다르다. 이들은 정교하다. 타짜는 기술을 팔지 않는다. 어수룩한 눈매 뒤에 독수리의 발톱을 숨기고, 어눌한 초식을 구사하는 듯하지만 급소를 노린다. 그리고 분명히 사짜와는 다른 내공을 소유하고 있다. 그들이 돈을 버는 방식은 실전이다. 그들은 비급이 아예 없거나, 설사 있다고 해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의 비급은 오직 머릿속에만 있을 뿐이다. 자신이 이길 수 있는 비책을 타인에게 싸게 팔아 공유하려는 바보는 없기 때문이다. 타짜는 오직 최고가 됨으로서 타짜일 뿐, 자신의 비급을 배운 경쟁자들이 도처에 등장하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에게 한 수 가르침을 청하면 그런 게 없다고 하거나 면박만 주기 일쑤다.
지난해 주가 상승과 펀드 열풍을 타고 주식 관련 서적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
주식시장의 사짜와 타짜
불행인지 다행인지 몰라도 필자는 우리나라에서 주식시장을 기반으로 업을 꾸려가는 사람 중에 어지간히 이름이 알려진 사람은 그가 사짜이든 타짜이든 모두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것은 필자가 나름대로 한국 주식시장에서 사이버트레이딩과 기술적 분석, 그리고 선물거래의 1세대이기도 했고, 또 그럼에도 필자가 특정 기관에 소속되거나 주식판을 업으로 삼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교적 운신이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또한 MBN에서 진행하는 경제방송이 7년째로 접어들면서 그동안 게스트로 초대된 걸출한 분들뿐 아니라, 소위 개미로서 성공신화를 이룬 분들까지 두루 만날 수 있는 공식적인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필자가 주식시장에서 느낀 점은 주식시장의 제도는 과거에 비해 현저히 선진화했으나, 시장 주변의 환경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리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시장은 여전히 불공정하고, 기관투자자들은 아직도 정직하지 못하며, 시장의 어두운 손들은 아직도 은밀하게 이슬을 맞고 다닌다.
심지어 코스닥이나 거래소 중소형 종목, 신규상장, 우회상장, M·A·R·D의 경우에는 아직도 더러운 자본과 추악한 주주들이 담합하고 음모를 꾸미면서 언제라도 한 건을 올릴 기회만 엿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도 창투사에서 받은 투자금으로 근근이 버티는 비상장 바이오벤처 기업이 창투사 직원들과 어울려 적절한 쉘(shell)을 찾아다니며 가격을 협상하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쉘은 조개껍데기라는 의미로, 상장기업이기는 하지만 기업 내용은 껍데기만 남아 우회상장에 이용될 수 있는 기업을 가리킨다. 이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우회상장을 원하는 기업을 펄(pearl·진주)이라고 한다. 창투사와 벤처 기업 직원의 계획은 일단 쉘을 찾아 우회상장시킨 후 이 벤처기업이 최근 계약을 맺은 ‘유전자 백신’ 제조에 대한 임상실험을 실시한다는 정보를 시장에 흘려보냄으로써 합체된 두 회사의 주가를 최대한 띄운 후 빠져나간다는 것. 이 유전자 백신사업이 아직 논문 수준에 불과한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경우는 사짜일까, 타짜일까. 말도 안 되는 프로젝트를 이용해 주가 조작을 행하려는 점에서는 사짜가 분명하지만, 이를 실행할 수 있는 돈과 조직 인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미 수차례 동일한 성공사례가 있다는 점에서는 타짜라고 볼 수도 있다. 이렇게 주식시장에는 사짜와 타짜의 경계가 모호한 사람이 많다.
슈퍼개미라고 불리는 개인투자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과거와는 달리 자신이 특정 종목을 매집한다는 사실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허수주문’ ‘통정매매’와 같은 고전적 수법의 주가 조작이 많았지만, 지금은 거래소 시장감시기능의 강화로 이런 조작이 용이하지 않다. 그래서 요즘은 많은 슈퍼개미가 음지에서 양지로 나와 공개적으로 주식을 매집한다. 그 결과 개인투자자들의 이목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하면 주가가 급등하고 그들은 유유히 차익을 챙기고 나오지만, 이목을 끄는 데 실패하면 꽤 큰 손실을 보는 경우도 있다.
합법적 사기꾼, ‘완벽한 타짜들’
하지만 슈퍼개미도 급이 있다. 언론보도를 통해 잘 알려진 A씨는 혼자서 움직인다. 그는 보통 3, 4명의 일선 증권사 직원을 휘하에 두고, 유동성이 풍부하지 않고 자본금이 많지 않으며 경영권이 취약한 기업을 고른다. 그리고 최소 1~2년에 걸쳐 조금씩 시장에서 지분을 매입한다. 그리고 지분이 5%가 넘는 순간 법에 따라 ‘경영참여 목적’이라는 공시를 한다. 이 과정에는 ‘언론 플레이’도 필수다. 이 공시에 따라 주가가 춤을 추면 추가 매입을 감행하기도 하고, 혹은 ‘단순투자 목적’으로 공시를 변경한 후 매입가보다 훨씬 비싼 값에서 이익을 실현하고 빠진다.
대개 이런 부류의 투자자 중에는 과거에 주식시세 조종이나 기타 불법매매 등으로 돈을 번 사람이 많고, 자산은 보통 100억원에 달한다. 이들은 공시제도의 맹점을 역이용해 이익을 올리긴 하지만 그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A씨는 사짜와 타짜의 경계를 넘나드는 부류다.
아예 군단을 형성하는 경우도 있다. 전문투자자 C씨가 이에 해당한다. 그는 이익은 안정적이지만 회사 운영이 전근대적인 제약회사 등을 타깃으로 삼아 적정 지분을 매입한다. 하지만 그가 5%의 지분을 채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공시 대상이 되기를 피하는 것이다. 그를 따르는 일군의 개미군단이 그 틈을 메운다. 이 경우 최소 20~30명의 그룹이 C씨를 정점으로 각각 0.5~1%의 지분을 공동 매입하기에 실제 이들이 보유한 지분은 상당하다. 그래도 시장에서는 이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기 전까지는 매집 사실을 알 도리가 없다.
이들이 공동으로 목소리를 내는 순간 시황은 급변한다. 이들은 당당하게 이사 선임권을 요구하고 주총에서 표 대결도 불사한다. 회사의 약점을 잡고 공개적으로 개선을 요구하기도 한다. 결국 초조해진 경영진은 무상증자를 하거나 배당을 늘릴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주가는 기대감으로 급등한다. 이런 경우는 자본시장의 구조를 정확히 포착하고 그 간극에 칼을 들이미는 극히 세련된 형태의 타짜라고 할 수 있다. 감독기관에서는 C씨의 과거 사례 등을 추적하며 불법성 여부를 조사했지만 법에 저촉된 점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기업의 지배구조나 잘못된 관행을 개미의 힘으로 고친 영웅으로 비칠 수도 있다.
증권 관련 강연회장. 주식 강사는 왜 직접 주식 투자에 뛰어들지 않는 것일까? |
최근의 기관투자자들이나 ‘장하성 펀드’조차 이런 지적에서 그리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이들이 스스로 믿거나 주장하는 철학은 지배구조 개선이나, 주주권리 회복, 시장 투명화일 수 있지만 시장에서 받아들이기에는 울트라 슈퍼개미의 시장 매집과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장하성 펀드가 지분을 매집했다는 공시가 나오면 장하성 교수의 원래 의도가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시장은 경영권 분쟁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이는 곧 라자드라는 외국계 자본의 배를 불리는 결과가 되고 만다.
기관투자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정 운용사가 지분을 매집했다는 소문은 시장의 이목을 끌고 곧 주가 상승으로 연결되지만, 언젠가 이들이 지분을 되팔 때는 뒤늦게 뛰어든 일반 투자자들만 덤터기를 쓰고 말 것이라는 점에선 오십보백보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스스로 주장하는 철학이 있고, 사회적 명망이나 시장지배력이 일반 슈퍼개미와는 다른 점을 감안해 ‘사(師)짜’로 특별대우를 해주기로 하자.
A씨와 C씨, 그리고 일부 펀드매니저들은 시장의 구조를 이용해서 수익을 올리는 경우다. 하지만 시장에서 매매의 기술로 수익을 올리는 경우도 있는데, 실제로 많은 개인투자자가 열광하는 부류다. 그 사정을 알기 위해 먼저 ‘주식시장은 예측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만약 주식시장이 오를지 내릴지를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신이다. 그는 이 세상의 부를 모두 독점할 수 있고, 시장은 그로 인해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주식시장의 운명은 아무도 모른다’는 전제에서만 시장이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듣는 ‘1000만원으로 100억원 만들기’ 같은 ‘주식시장 대박 황금률’을 말하는 사람은 일단 무조건 사짜다. 상상해보라. 만약 당신이 주식시장에서 돈을 버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왜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겠는가. 다른 사람이 그 기술을 배우는 순간 당신의 비급은 비급으로서의 유용성이 사라지는데, 세상의 누가 혼자만 아는 비급을 단돈 1만, 2만원의 책값에 팔 생각을 하겠는가.
‘주식시장에 전문가는 없다’라는 개념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앞서 경마 예상지를 파는 사람의 예를 든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필자는 주식시장에서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무수한 사짜를 만나봤는데, 그중에는 실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극소수의 타짜도 있다. 대체 어찌된 일일까.
먼저 많은 사람이 접하는 전문가들의 실체를 보자. 증권전문가라 하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그중에는 증권사에 적을 두고 브로커, 애널리스트, 펀드매니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중에 타짜는 없다. 진정한 타짜라면 주식 투자로 부자가 되지, 증권사에서 월급 받고 일을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보편적으로 왜 일반인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일까. 이것이 바로 해설자의 패러독스다. 축구나 야구경기를 관전하면 해설자는 그야말로 신이다. 그는 모든 문제점을 파악하고 전략의 허점을 짚어낸다. 그리고 그 말은 대체로 맞다. 그런데 왜 구단들은 그들을 선수나 감독으로 기용하지 않는 것일까. 이유는 상황에 뛰어든 사람과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의 차이에 있다.
증권가 사짜들의 실체
그라운드에서 경기결과에 따라 죽느냐 사느냐가 결정되는 사람들은 상황의 일원이다. 그들의 시야는 축소되고 이성보다는 감정의 진폭이 커진다. 하지만 결과에 구애하지 않는 해설자는 감정보다 이성의 진폭이 크고 합리적이며 객관적이 된다. 증권 유관기관에 근무하는 주식시장의 전문가는 이론적으로도 일반인보다는 탄탄한 토대를 가지고 있는데, 그들의 힘은 바로 이 점에 있다.
그러나 투자정보를 파는 사람들의 처지는 다르다. 그들은 자신이 파는 정보의 옳고 그름에 따라 당장의 손익이 늘어나거나 줄어든다. 그들은 늘 ‘대박’을 외치고, ‘꼭 집어주마’라고 주장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렇게 매매하지 않는다. 그들은 시장에 참여하는 무수한 투자자 중 한 사람일 뿐이다. 이런 유사 전문가들은 검증이나 자격이 따로 없다. 국내 최고의 증권정보 사이트에서 이름을 날리던 전문가가 한때 전 재산을 주식 투자로 잃어버리고 심야에 칼을 품고 남의 집 담을 넘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필자가 방송국에서 만난 유명 재야고수 D씨는 경제방송에 나와 시장전략에 대해 이야기하고 추천종목을 콕 집어주며 여유만만한 웃음을 날렸다. 하지만 그 다음날 그 방송사에 D씨의 방송출연료를 차압한다는 통보가 왔다. 그는 이미 주식 투자로 두 번이나 망한 사람이고, 그 당시에도 파산 상태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전문가가 된다. 이것이 증권시장 사짜들의 또 다른 일상이다. 심지어 증권정보 사이트에서 유료회원을 모집하는 전문가로 선정되는 방법은 차마 밝히기가 면구스럽지만 그 과정은 우습다 못해 슬프기까지 하다.
증권사 수익률대회 우승자들도 마찬가지다. 증권사 수익률대회는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졌더라’라는 말처럼 평범한 사람을 일약 전문가로 만들어준다. 하지만 증권사 수익률대회에 우승하기 위한 그룹들이 있고, 서로 성과를 밀어주기 위해 공동으로 참여한다거나 수익률대회에서 단기적으로 실적을 내기 위한 은밀한 강좌까지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증권사 수익률대회의 우승자는 어떻게 그런 신화적인 수익률을 올릴 수 있었을까. 당신이 100만명의 e메일 주소를 확보했다고 하자. 그리고 그중의 반인 50만명에게는 내일 시장이 내린다, 나머지 반인 50만명에게는 오른다는 메일을 보낸다. 그리고 다음날, 적중한 쪽의 50만명을 다시 반으로 나눠 25만명에게 같은 식으로, 다음에는 다시 적중한 쪽 12만5000명에게, 다시 그 반에게, 또다시 그 반에게 메일을 보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에게 열광하는 추종자의 무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오늘 지금 이 순간 지구상의 누군가는 머리에 벼락을 맞았고, 누군가는 땅콩을 먹다가 목에 걸려 사망했으며, 누군가는 로또에 당첨됐을 것이다. 시장의 특정 구간에 특정 종목들이 급등할 때 공교롭게도 당신이 그 종목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일반인에게 이런 비하논리는 다소 작위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물론 이들에게도 특별한 게임의 룰이 있다. 그 룰은 일종의 거래 기술이다. 이를테면 절벽을 향해 미친 듯이 달리는 마차에 올라타면 단시간에 먼 거리를 갈 수 있다(소위 급등주). 이때 당신이 그 마차에 올라타는 근거는 절벽에 도달하기 전에 뛰어내릴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당신은 처음 한두 번 절벽에 이르기 직전 마차에서 뛰어내리는 데 성공 할 수 있지만, 결국 세 번째나 네 번째쯤에선 마차와 함께 절벽에서 떨어지고 만다. 그렇게 되면 그동안의 성공까지 일거에 파멸에 이른다.
그러지 않고서야 몇 달 만에 수천%의 신화적 수익을 올리는 그 많은 사람 중에 주식 투자로 재벌이 된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많은 수의 우승자는 머지않아 해당 증권사에 투자 상담사로 채용되거나, 혹은 증권 정보회사에서 유료회원을 모집하고 정보제공 대가로 호구를 해결한다. 그러면서 서서히 잊혀간다.
그런데 E씨는 실제로 부자가 된 몇 안 되는 사례 중 하나다. 그는 얼마 전 필자를 만났을 때 100억원대의 자산을 굴리고 있었다. 이는 그가 이 원리를 빨리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수익률대회에서 우승한 뒤 일정액의 종자돈을 챙겨 우량주 장기투자로 돌아섰다. 그의 공격적 성향은 원금의 몇 배에 해당하는 차입금을 동원하게 했고(증권사의 신용거래), 이것이 시장의 장기상승과 맞물리면서 상당한 자산을 축척했다. 그는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시장을 이긴다는 생각은 무모해요. 나는 시장이 언젠가 하락하기 시작하면 모든 주식을 팔고 다시는 증권시장에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그는 필자가 인정하는 진정한 타짜다. 그는 노름판에서 현금을 쥐고 일어서는 사람이 버는 사람이라는 원리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타짜가 다 이런 행로를 가는 것은 아니다. 시장의 진정한 고수는 강호에 숨어 있다.
F씨는 대전의 어느 오피스텔에 4명의 직원이 일하는 트레이딩룸을 갖고 있다. 그의 일상은 아침 6시에 컴퓨터 앞에 앉아 전날 밤의 세계시장 동향을 살피는 것에서 시작된다. 전날의 기관투자자와 개인투자자, 그리고 외국인의 매매내역과 신문기사 등을 꼼꼼히 검토한다. 그리고 컴퓨터에 깔린 10여 개 증권사의 온라인 시스템에 접속해 각 증권사의 신규 추천종목과 데일리 시황을 검토하고 증권사 리포트나 조간신문에 중복으로 언급된 종목들을 따로 챙긴다.
그러고 나면 8시. 이제부터는 긴장의 연속이다. 전날까지 관심 리스트에 있던 종목 중에서 교체할 것을 체크하고, 종목마다 조건값(일정 조건에서 매수/매도)을 지정해서 막 출근한 직원들에게 4분의 1씩 나눠준다. 직원들의 임무는 자신에게 할당된 종목이 그가 지정한 조건값에 들어오면 기계적으로 매수 또는 매도하는 것이다. 어지간한 증권사 HTS에도 이 기능은 있지만, 그는 사람을 더 신뢰한다. 돌발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의 지론은 ‘매매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8시50분, 동시호가와 일찍 시작되는 선물거래 양상을 초조하게 지켜본 다음 동시호가가 끝나면 그때부터 초긴장 상태에 돌입한다. 직원들은 매수, 매도를 할 때마다 그에게 확인을 받는다. 그가 직접 보고 있는 4대의 컴퓨터에는 그가 실시간으로 거래하는 종목들이 깔려 있다. 조건값에 따르지 않는 직관적이고 동물적인 매매는 그가 직접 한다.
타짜의 고단한 하루
그렇게 그의 일과는 지나간다. 오후 3시 동시호가가 끝나면 그때부터 직원들은 자신이 담당한 거래의 명세표를 출력해서 한자리에 모여 앉는다.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시장 복기(復棋)가 이뤄진다. 직원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문하생인 셈이다. 하지만 그가 직접 거래한 내역들은 복기의 대상이 아니다. 이 내역들은 직원들이 혼자서 보고 공부할 수는 있지만, 그가 가르쳐주는 법은 없다. 스스로 깨우치든지 아니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진정한 타짜의 풍모다.
오후 4시쯤 그들은 비로소 사우나로 향하지만, 그들의 굳은 얼굴은 펴질 줄을 모른다. 장중 내내 팽팽하게 긴장한 근육과, 혈관 속에 뿜어진 아드레날린의 영향이다. 그러고 나서 그는 혼자서 사무실로 돌아온다. 그곳에서 다시 오늘의 시황 기사들을 읽고 자신의 매매에서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점을 연구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 시장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어서, 규격화한 매매 패턴으로는 6개월도 견딜 수 없다. 시세의 움직임에 웬만큼 익숙해지면 시장은 어느새 그 모습을 바꿔버린다. 그러면 그는 다시 새로운 패턴을 분석하고 연구하면서 불규칙성에서 규칙을 찾는다.
그는 자신이 많은 돈을 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2억원 정도의 돈을 직원들에게 3000만~4000만원씩 나눠 운용하게 하고, 자신은 1억원 정도를 직접 굴려 한 달에 2000만~3000만원의 수익을 얻는다. 그 정도가 한계다. 더 이상의 돈은 데이트레이딩으로 관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간 기준으로 100%가 넘는 큰 수익이지만, 하락장이건 상승장이건 수익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데이트레이더에게는 변동성이 큰 시장이 유리하다. 그래서 펀드에서도 1년에 60%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요즘 시장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에게 이 일은 직업이고 피를 말리는 싸움이다. 그는 분명 시장의 타짜이지만 이것이 과연 모두가 선망하는 모습일까. 필자와 악수를 나누고 돌아서는 그의 모습에서 영화 ‘타짜’의 주인공 ‘고니’의 마지막 모습이 실루엣처럼 겹쳐진다.
박경철 의사, 안동신세계병원장 donodonsu@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