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랑/그림 이야기

한국미술사 - 삼국시대

영원한 울트라 2009. 8. 14. 07:52

■ 삼국 시대의 회화 ■

 

우리 나라에서 진정한 의미의 회화가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의 중엽의 4세기경부터이다.

삼국의 회화는 중국과 삼국 각국 간에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발전하여각기 다른 성격의 회화를 형성하였다.

삼국시대의 미술은 약 2,000년 전 고대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왕권 중심의 귀족사회가 성립되면서

등장한 고구려<부여(夫餘)의 뒤를 이어 압록강 건너 통구(通溝) 부근을 국도(國都)로 하여 성립된 나라로 후에

평양(平壤)으로 천도(遷都)>, 백제<경기도 광주(廣州)에서 공주(公州), 부여(扶餘)로>, 신라<경상도에서 일어나

경주(慶州)를 국도(國道)로>의 삼국(三國)의 미술을 말한다.

 

삼국의 미술은 각기 다른 지역과의 차이를 가지며 동시에 한반도 적인 문화로서의 성격도 뚜렷한 바

고구려 미술은 북방적(北方的)인 웅혼(雄渾)하고 씩씩하며 규모가 크나 다소 거친 면이 있으며,

신라 미술은 장엄하며 잘 정리 조화된 부드러운 특색을 지니고 있으며,

백제의 미술은 부드러우며 우아한 특징을 지닌다고 할 수 있는 바

이는 지리적 조건에 의한 영향과 외래 문화와의 교류에서 생긴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삼국시대 미술의 가장 큰 특징은 불교의 전래에 따른 영향을 꼽을 수 있다.

고구려는 소수림왕(小獸林王) 때(372년)에 동진(東晋)의 순도(順道)가 불상과 경문(經文)을 아도(阿道)가 성문사(省門寺)와

이불란사(伊佛蘭寺) 두 절을 창건하였으며, 백제는 고구려보다 10여년 늦게 인도의 승(僧) 마라난타(滅難陀)가

동진(東晋)으로부터 남방계 불교를, 신라는 고구려로부터 불교를 전래 받아 불교 예술이 삼국의 건축과 조각, 회화 등 각 부문에 걸쳐 큰 영향을 미쳐 삼국시대의 미술은 대부분이 불교 예술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라 할 수 있다.

 

고구려의 회화

고구려의 회화는 알려진 통구와 평양을 중심으로 분포된 60여개의 고분 벽화로 알 수 있다.

특히 고분 벽화 내용의 주제와 화풍에 따라 시대적으로 변화된 추이를 잘 파악할 수 있다.

대체로 초기(4~5세기)에 해당하는 고분벽화는 무덤 주인의 초상을 중심으로 하는 풍속화적이고 불교적인 그려졌는데,

신분에 따른 인체 비례를 과장되게 표현한 점이나 초보적인 요철법의 표현 등 유치한 면이 나타나면서도

고구려 특유의 동적인 화풍이 드러나 있다.

황해도 안악 3호분과 덕흥리 고분은 연대를 알 수 있는 고구려 고분벽화 초기의 귀중한 예이다.

 

 

 안악3호분 

 

서기 6세기에 해당하는 고구려 고분 벽화 중기에는 풍속화가 유행하는데, 통구의 무용총, 각저총 등이 이 시기에 속한다.

특히 무용총의 수렵도에는 긴장감과 활력이 넘치는 고구려 회화의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6세기 말에서 7세기 전반에 해당하는 고분벽화 후기에는 사신도가 주로 다루어진다.

 

 

 

사신도(四神圖)

고대 중국에서 비롯된 우주 신앙(信仰) 사상에서 나온 방위도(方位圖). 사수도(四獸圖)·사신도(四神圖)라고도 한다. 천상(天象)과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을 도안적(圖案的)으로 표현한 회화(繪畵)이다.

고대인들은 동서남북 4방의 성좌(星座)를, 또는 우주를 다스리는 제왕(帝王)과 그 밑에 4방을 수호하는 신수(神獸), 즉 동방에는 청룡(靑龍), 서방에는 백호(白虎), 남방에는 주작(朱雀), 북방에는 현무(玄武)의 방위신(方位神)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이 동물의 성질과 색채를 춘·하·추·동 4계절에 맞추어 청룡을 봄, 백호를 가을, 주작을 여름, 현무를 겨울로 배정하여, 옛날부터 왕들이 왕도(王都)를 정하는 데 기본적인 요건으로 삼아왔다. 한국에도 이 사신을 그린 고구려 분묘가 평남 강서군 일대에 남아 있다.

 

 

통구의 사신총, 강서대묘, 중화군진피리 고분군의 사신도에서는 동적이며 화려하고 선명한 색채를

띤 고구려 특유의 화풍을 볼 수 있다.

그 밖에도 고구려의 회화가 일본의 회화 발전에 남아 커다란 영향을 준 것은 현재 일본에 남아 있는

기록과 작품들을 통해 알 수 있다.

 

백제의 회화

백제의 회화는 지금까지 알려진 몇 안되는 회화 유적과  기록을 살펴볼 때 고구려와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으면서

높은 수준을 이룩했음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백제의 회화는 공주 송산리 6호분의 사신도와 신숙도, 능산리 고분의 사신도와 연화문, 비운문,

그리고 무녕왕릉에서 나온 칠을 한 두침(頭枕) 및 다리 받침에 그려진 어룡과 신수 문양 정도이며,

6세기 이전으로 올라가는 예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 중 특히 고분 벽화는 고구려의 영향이 뚜렷하다.

그러나 표현이 동적이고 날카로운 고구려의 회화에 비해 박진감은 떨어지나 안정감이 있고,

유연한 필치에서 백제 고유의 감각을 볼 수 있다.

회화는 아니지만 무녕왕릉 출토 은탁잔 뚜껑의 산악문은 고구려 덕흥리 고분과 무용총의 수렵도에 보이는 삼산형(三山形)의

산악도가 이미 6세기 전반 백제에서 유행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이러한 산수 표현은 7세기 전반의 것으로 추정되는 규암리 출토의 산수문전에서 더욱 발전되었음을 볼 수 있다.

이 산수문전은 부조 형태로 도안화된 공예의 수준이면서도, 나무가 덮인 삼산형의 부드러운 토산과 암산의 공간감을

느낄 수 있는 배치, 그리고 근경의 수면과 하늘의구름, 누각과 승려의 표현 등 산수화적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어서

당시 회화가 상당한 수준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산수문전(문양전)은 1937년 충남 부여군(扶餘郡) 규암면(窺巖面) 외리(外里)에 있는 한 절터에서 출토된 일괄 유물이다.

이들 문양전은 모두 산수문전(山水紋塼)과 산수봉황문전(山水鳳凰紋塼), 산수귀문전(山水鬼紋塼), 연대귀문전(蓮臺鬼紋塼), 연화문전(蓮花紋塼), 와운문전(渦雲紋塼), 봉황문전(鳳凰紋塼), 반룡문전(蟠龍紋塼) 등 8매로 경질의 점토로 틀에서 찍은 것이다.
이 중 산수문전은 암반(巖盤)과 암벽을 전경(前景)으로 하고, 그 뒤에는 삼봉으로 이루어진 연산(連山)이 첩첩이 들어서 있다. 산봉우리마다 소나무 숲이 서 있고 산 위의 하늘에는 서운(瑞雲)이 흐르고 있다. 근경(近景)에 나타난 암벽 뒤의 산중턱에 지붕에 치미가 있는 건물이 있고, 오른편 암반 위에는 이 집을 향해서 걸어가는 한 인물이 표현되어 있는 7세기 백제의 산수를 보여 주고 있다.
이 외 7점도 모두 같은 크기의 것으로 봉황ㆍ반룡ㆍ와운ㆍ연화ㆍ귀(鬼)ㆍ산수귀(山水鬼)ㆍ산수봉황을 주제로 정교하게 제작하였다.

 

 

한편 일본 문화 발전에 기여한 백제의 화가는 회화 방면에서 백가와 아좌태자 등 6세기 이후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 화가들이 알려져 있다. 특히 아좌태자가 그렸다고 하는 '성덕태자급이왕자상'의 모사본이 현존하여 백제 시대 인물화의 수준을 짐작하게 한다.

 

신라의 회화

신라의 회화는 삼국 중 자료가 가장 빈약하다.

그러나 최근 발견된 단편적인 화적들과 기록을 보면 고구려, 백제와 마찬가지로 회화 활동이 활발하였으리라 짐작된다.

지금까지 알려진 신라시대의 벽화로는 영주 순흥면의 어숙묘의 내부에 그려진 인물상과 연화문,

그리고 고분 내부의 역사상, 산악도 등이 있는데 대부분 상태가 좋지 않지만 고구려 고분 벽화의 영향을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고분의 부장품 중에서 나타나는 화적으로는 경주 155호분 천마총 출토의 천마도와 기마인물도서조도 등과

98호분 황남대총 출토의 칠기편에 남아 있는 우마도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공예품의 장식화로 당시 회화의 진면모를 보여준다고 할 수 없으나,

이것을 통해 신라 회화의 수준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이 밖에 '삼국사기'는 후대의 도화원과 같은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측이 되는 신라시대 채전이 기록으로 남아 있어 주목된다.

 

이렇게 발전된 삼국 시대의 회화는 일본 고대 회화의 발달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늦어도 6세기 후반부터는 백제에서 건너간 화공들이 두드러진 활동을 전개하였고

이어서 7세기초부터는 고구려 출신의 화공들도 괄목할 만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백제의 백가, 아좌태자, 안사라아, 고구려의 담징, 가서일, 자마려 등은 일본에서 활약한 삼국 시대의 대표적인 화가들이다.

이 밖에 황문화사, 산배화사, 책진화사 등도 이시대 우리 나라 출신의 전문화가들이며

일본에서 9세기에 활약한 뛰어난 화가 하성(781~853)도 백제의 후손이다.

이러한 예들만 보아도 삼국 시대의 우리 나라 회화가일본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아좌태자의 쇼토쿠태자상

'미술사랑 > 그림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돈ㆍ행운 부르는 모란의 미학   (0) 2010.08.20
창조적 예술가란?  (0) 2010.07.05
천일의 앤의 주인공  (0) 2008.08.20
[스크랩] 피카소의 여인들  (0) 2008.07.20
[스크랩] 레오나르도 다빈치  (0) 2008.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