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경쟁/3D 산업

지상파 3DTV 실험방송이 불러올 것은

영원한 울트라 2010. 6. 1. 18:04

지상파 3DTV 실험방송이 불러올 것은
MMS 포기와 시청자 차별은 불가피
채수현 언론연대 정책위원 webmaster@mediaus.co.kr

작년 말 개봉한 제임스 카메룬 감독의 영화 아바타는 국내 최다 관객을 모았다. 영상 미디어를 아바타 이전과 이후로 나눌 만큼 아바타가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은 스토리보다 3차원 입체영상이라는 시각효과가 큰 몫을 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지난 1월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가전전시회(CES)에는 세계적 가전사들이 3DTV를 내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국내에서도 삼성전자가 지난달 25일 세계 최초로 풀HD 3D LED TV를 출시했고 3월에는 미국 시장에도 출시하여 올해 200만대 이상을 판매하겠다고 하는 등 이제 3D 영상은 대세다.

방송통신위원회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3DTV 방송 활성화와 세계시장 선도”를 목적으로 올 10월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지상파방송에 풀HD(Full High Definition) 3DTV 실험방송을 계획하고 ‘3DTV 실험방송 추진단’을 출범시켰다. 디지털 TV로 세계시장을 석권한 국내 가전사들이 국내 3DTV 방송시장 확대에 힘입어 디지털TV 수신기 시장에서 우위를 유지하고 소니, 파나소닉 등 일본 가전사가 선점한 3DTV 시장을 석권하겠다는 의지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지상파 텔레비전의 디지털 전환을 방해하는 섣부른 결정일 뿐만 아니라 공중에게 보편적 서비스를 제공할 지상파방송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구 방송위원회가 실패한 유료방송 편향 방송정책의 답습이란 오해를 받을 수 있다.

 

 

 

 
  ▲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방송통신위원회 주최의 "3DTV 실험방송 추진단 출범식" ⓒ 방송통신위원회  

우리나라 지상파 방송이 풀HD 3D 영상을 보내기 위해서는 6MHz 대역폭의 총 19.39Mbps 데이터 전송 대역 중 왼쪽 영상은 12Mbps로 MPEG2 코딩을, 오른쪽 영상은 5.5Mbps로 MPEG4 AVR(H.264)로 코딩하여 전송한다. 3DTV를 소유한 시청자는 좌우 영상을 모두 수신하여 입체영상을 시청할 수 있고 일반 DTV 시청자는 왼쪽 영상만 수신하여 현재와 같은 HD 영상을 시청할 수 있다. 결국 전체가구의 절반은 이미 구입한 DTV로는 입체영상을 시청할 수 없고 H.264 수신이 가능한 3DTV를 따로 구매해야 한다.

우리사회가 지상파에 공적 서비스 의무를 부과할 때는 시민 모두에게 디지털 방송이 제공하는 이익이 불편부당하지 않게 고루 제공되어야 한다는 함의가 있다. 시청자는 선명한 화질, 다양한 디지털 서비스를 경제적, 지리적, 세대 간 차별 없이 제공 받을 권리가 있다. 프리미엄 서비스로서 3DTV 방송은 경제력을 갖춘 소수 시청자만이 수신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지상파 3DTV 방송은 누구나 차별 없는 품질의 방송을 수신할 수 있어야 하는 지상파 방송의 정체성을 훼손한다.

지상파 3DTV 방송은 아날로그 방송의 디지털 전환을 혼란스럽게 한다. 현재 우리나라 지상파 텔레비전 디지털 전환은 보급률과 인지율 모두 50%를 넘지 못하는 등 지상파 텔레비전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는 국가 중 꼴지에 속한다. 2013년 아날로그 TV 종료를 위해 디지털 TV 구입이 어려운 가구에 셋탑박스를 제공해야 한다. 여기에 3DTV 기능을 추가한다면 엄청난 비용이 발생할 것이고 아직까지 디지털 TV를 구입하지 않은 시청자는 기술적으로 완전한 수상기가 생산 될 때가지 기다릴 수 있어 수신기 보급은 그만큼 늦어진다.

방송사의 부담도 이중으로 커진다. 3DTV 제작과 송출 시설을 추가로 설치해야 하고 HD 프로그램 보다 더 많은 제작비를 투여해야 한다. 추가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 3DTV 방송을 강제하면 방송사는 규제기관의 눈치를 보며 미적대거나 소극적인 실험방송에 그쳐 이도 저도 이룰 수 없다. 아날로그 방송을 종료하고 전면 디지털 전환에 집중할 때에 자원과 시간을 분산시키는 것은 방통위가 애초 의도했던 산업효과는커녕 예정된 디지털 전환 일정도 지킬 수 없게 된다.

지상파 3DTV 실험방송 결정은 방통위가 지상파 디지털 방송에서 MMS(멀티모드 서비스) 포기를 공식 선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3DTV 방송을 하는 경우 DTV 전송 대역에는 표준화질(SD)의 MMS를 수용할 공간은 없다. 결국 디지털 방송의 강력한 가시적 효과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디지털 TV가 제공하는 이익은 선명한 화면과 MMS로 일컫는 디지털 부가서비스다. 비싼 값에 단순히 선명한 화질은 시청자에게 별로 매력적이지 못하다. 더 많은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하는 MMS는 하나의 콘텐츠를 단지 형태를 달리하는 3D 입체영상보다 더 큰 이익을 시청자에게 준다. 따라서 MMS는 디지털 전환을 촉진시키는 추동 인자로써 시청자의 DTV 구매를 촉진시키고 무료방송의 프로그램 공급 채널을 확대시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그동안 방통위는 지상파방송의 MMS를 불허했다. 초기에는 기술적 문제로 반대하다가 독일 월드컵 MMS 실험방송을 계기로 기술을 더는 문제 삼을 수 없게 되자 “전반적인 매체환경과 디지털 전환 일정 등을 고려하여 결정하겠다”며 시간을 끌었다. 결국 아바타 열풍과 CES에서 3DTV 이슈를 기회로 상당기간 실현 가능성도 불투명한 3DTV 방송을 지상파에 강제함으로써 MMS 거부를 선언해 버렸다. 방통위는 케이블 SO가 다채널방송 독과점 유지를 위해 줄곧 반대해온 지상파 MMS를 3DTV로 대체함으로써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유료방송 사업자의 손을 들어 주었다.

국내에서 3DTV가 활성화 되어야 삼성, LG 등 가전사가 세계 3DTV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진다는 것도 핑계다. 지금 우리나라는 디지털 전환율은 꼴찌에 머물고 HD 콘텐츠도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삼성, LG는 이미 세계 디지털 TV 수신기 시장에서 1, 2등을 다투고 있다. 국내 3DTV 방송 활성화를 통해 가전사의 세계시장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은 변명이다. 그뿐 아니라 지상파 TV는 뉴스, 시사교양, 오락 등 3D 영상이 필요 없거나 오히려 시청하기에 불편한 분야를 매일 상당 분량 편성한다. 따라서 3D 영상이 영화, 스포츠, 애니메이션 등 특정 장르에 한정되는 점을 고려하면 3D 영상을 전달할 매체를 잘못 선택했다. 프리미엄 방송 서비스를 지향하고 전문편성 채널로 구성된 유료 다채널 방송에 적용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다.

방통위가 마땅히 취해야할 지상파 디지털 방송 정책은 산업이익 보다 시청자가 행복한 공공서비스 실현에 충실해야 한다. 지상파 방송사에 송출편성 자율권을 보장함으로써 시청자 모두에게 품격 있는 디지털 기술이 제공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더 많이 최소비용으로 동등한 방법으로 수신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방법이다. 지상파 방송에 풀HD 방송, MMS, 3DTV를 방송사와 시청자가 합의하는 조건으로 필요한 시간과 내용에 따라 편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방통위가 지상파 디지털 전환을 절반도 넘기지 못한 때에 별다른 논의 없이 갑자기 지상파 풀HD 3DTV 실험방송을 들고 나온 것은 가전사와 유료 방송사업자의 산업적 이해 때문이란 의혹을 지울 수 없다. 온 국민에게 강제로 검은 안경을 씌워 TV 앞에 앉히기보다 이미 진행하고 있는 디지털 전환에 집중하고 오프라인 시청용 3DTV 콘텐츠 제작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오히려 방송산업 발전에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