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경쟁/경영경제

당파싸움

영원한 울트라 2010. 6. 22. 02:11

서인 -----노론-------벽파

         |                 |

         |                 |---시파

         |

         |---서론

 

 

동인 -----북인

          |

          |-- 남인

 

 

1. (선조 초기) 사림파 기성세력과 신진세력의 갈등으로 붕당 탄생.

- 심의겸 중심 기성세력 : 서인

- 김효원 중심 신진세력 : 동인


2. (선조 중기) 정여립 모반사건 처리에 대한 갈등으로 동인 분열.

- 강경파 : 북인

- 온건파 : 남인


3. (선조 말기) 선조의 후사 문제로 인한 갈등으로 북인 분열.

- 영창대군 지지 : 소북

- 광해군 지지 : 대북


4. (숙종 말기) 남인 처단 방법에 대한 갈등으로 서인 분열.

- 모두 처단하자. : 노론

- 약간 남겨두자. : 소론


5. (영조 중기) 사도세자를 죽인 영조의 처분에 대한 입장차이로 노론 분열.

- 죽이는 건 심했다. : 시파

- 죽어도 싸다. : 벽파

 

대략 이런 과정으로 붕당 항쟁이 진행됩니다.

붕당이 어떻게 탄생해서 어떻게 분열하고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아래 내용에 설명해 두었습니다.

 

 

 

 

 

1) 붕당형성 이전. (훈구파 vs 사림파)

 

고려 말기에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어떻게 되살리느냐 하는 문제에서 신진사대부는 크게 2가지 입장으로 갈라집니다. 두 세력 모두 친명외교를 펼치는 점에서는 입장이 같았지만, 아래와 같은 차이가 존재했지요.

 

온건개혁파(사림) - '고려왕조'라는 큰 틀을 유지한 채 점진적으로 문제점을 시정하자.

                          - 조선건국에 협조 X, 고려멸망 후 지방으로 내려가서 지방 중소지주로 세력기반을 닦음.

                          - 훗날 사림파로 발전함.

                          - 중심 지도자는 조광조, 길재 등이 있음.

 

급진개혁파(훈구) -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전면적인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 조선건국에 협조, 개국공신 세력으로서 권력을 독점하고 중앙의 대지주로 성장.

                          - 훗날 훈구파로 발전함.

                          - 중심 지도자는 정도전, 한명회 등이 있음.

 

훈구파는 조선건국에 협조한 개국공신들입니다. 당연히 그들에게 부와 권력이 보장되겠지만, 조선건국에 협조 안 한 사림파는 아무 것도 받지 못하지요. 그러다보니 조선 초기... 즉 15세기에는 훈구파가 권력을 독점하지요.

 

그런데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것인지... 훈구파 대신들은 그 넓은 땅을 다 차지했으면서 아직도 만족하지 않고 땅을 더 가지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지방의 토지까지 눈독들이게 됐는데, 위에서 사림파는 지방의 중소 지주들이라고 했지요? 즉, 지방에서 작은 땅 부쳐먹고 사는 사람들이죠. 그런데 훈구파가 그 땅까지 빼앗으려고 달려들었단 겁니다!!! 이렇게 되면서 훈구파와 사림파 사이에서 반감이 싹트게 됩니다.

 

15세기까지는 훈구파의 세력이 강해서 사림파는 드럽고 아니꼬아도 별 수 없었죠. 그러다가 16세기에 사림파에게 기회가 옵니다. 강대한 공신세력(한명회 등등..)을 견제하기 위해 성종이 사림세력을 등용하게 된 것이죠. 이 때 진출한 사림파는 연산군 때 사화를 입어 전멸했지만... 중종 때에 조광조가 등용되면서 다시 조정에 진출합니다. 그랬다가 기묘사화를 계기로 또 전멸하고.... 명종 때에 다시 한 번 사화를 입었지만 예전처럼 전멸하지는 않았습니다. 16세기 중반으로 가면서 사림파는 서원과 향약을 기반으로 계속 강해지고, 훈구파는 국왕의 견제 때문에 점점 약해지면서, 결국 선조 때에는 사림파가 훈구파를 제압하고 정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자, 이 어려운 투쟁을 통해 승리자가 된 사림파.....

그러나 한 번 권력맛을 본 사림파 선비들은 서로 다투더니 결국 갈라서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동인과 서인의 분열이요, 붕당의 탄생입니다.

 

 

2. 붕당 전기(동인 vs 서인)

 

 

아까 사림이 명종 때 사화를 입었지만 완전히 전멸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죠? 그리고 선조 때 사림파가 본격적으로 정권을 장악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서부터 사림파 분열의 싹이 자라납니다.

 

사림파는 훈구파 대신들, 외척세력(윤원형 일파) 등을 어떻게 처단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합니다.

이 때 사림파 내부에서 의견이 둘로 나뉘는데요...

 

 

심의겸 지지파(서인) - 명종 때부터 정치에 참여해왔던 기성 세력( 대체로 나이 든 사람들이죠.)

                               - 훈구파, 외척세력 처단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임.

 

 

김효원 지지파(동인) - 선조 때부터 새로 정치를 시작한 신진 세력(대체로 젊은 사람들이죠.)

                               - 훈구파, 외척세력 처단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임.

 

 

 

초기의 싸움에서는 동인이 우세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주장이 원칙에 맞는《바른 말》이었으니까요.

그러다보니 선조 중기로 가면서 동인이 서인을 제압하고 정국을 주도했는데요.......

 

모든 건 너무 커지면 분열되는 게 이치인가 봅니다.

너무 커진 동인은《정여립 모반 사건》을 계기로 온건파인「남인」과 급진파인「북인」으로 분열됩니다.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분열될 조짐을 보이던 선조 중후기....

결국 임진왜란이 벌어지고 말지요.

 

 

3. 붕당 중기(북인 -> 대북,소북.  그 후의 정세...)

 

 

임진왜란이 끝난 직후, 정권을 잡은 붕당은 동인 급진파 출신인 북인입니다. 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운 사람들이 대체로 북인이었고, 이들이 종전 이후 군권을 쥐고 포상을 받으며 정권을 장악하지요.

 

그런데, 이번에도 너무 거대해진 북인은 《대북》과 《소북》으로 분열됩니다.

(동인에서 갈라져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ㅉㅉ)

 

갈라지게 된 계기는.... 선조의 적통대군인 영창대군이 탄생한 것이죠. 당시 세자였던 광해군은 후궁의 아들로서 적통대군(왕비의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선조가 일방적으로 영창대군을 편애하며 광해군을 견제하려 들자, 북인의 분열은 더욱 가속화됩니다.(그냥 곱게 죽지, 다 늙어가지고 이 무슨 추태인지... ㅉㅉ)

 

 

북인의 분열 ☞ 영창대군 지지파(소북) vs 광해군 지지파(대북)

 

 

이 싸움에서 대북파가 승리하면서 광해군이 즉위합니다.

선조 초기부터 지금까지 동인, 북인에게 쳐발리며 살던 불쌍한 서인들......

 

하지만 서인에게 인생역전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바로 광해군의 중립외교 정책과 인목대비 유폐 사건이지요.

이 사건을 빌미로 서인 세력은 광해군을 몰아내고 능양군을 왕으로 추대합니다. 그가 인조입니다.

 

인조가 정권을 잡고나서 서인 세상이 왔지만....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에서 쳐발리며 서인 정권은 위기에 몰립니다. 전쟁하자고 박박 우겨댔던 건 서인이니, 그들이 패전의 책임을 져야 할 판이죠. 그래서 서인 정권은 패전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북벌론을 주장합니다.

 

하지만 효종의 갑작스런 죽음 때문에 북벌마저도 무산되고.... 서인의 기가 한풀 꺾이게 되지요. 서인이 뭘 하자고 해서 제대로 된 게 없으니.... ㅎㅎ 이 때, 동인 온건파 출신인 남인이 등장하면서 현종 때에 서인과 예송논쟁을 벌입니다. 도전장을 내민 거죠.

 

부자는 망해도 3년은 먹고산다는 말이 있지요. 서인이 한풀 꺾이긴 했어도 여전히 강했기 때문에, 1차 예송논쟁에서는 기존 집권층인 서인이 승리합니다. 하지만 2차 예송논쟁에서는 그 동안 서서히 체력단련을 한 남인이 승리하게 되지요.

 

 

4. 붕당 후기( 서인 -> 노론,소론 /  노론 -> 시파,벽파 )

 

이렇게 다시 남인이 정권을 장악했을 무렵.......

장희빈과 인현왕후로 유명한 그 임금 숙종이 즉위합니다.

 

숙종은 남인의 힘이 너무 강성해진 걸 두려워한 나머지... 《유악 사건》을 빌미로 환국을 일으켜서 남인을 완전히 아작내 버립니다. 그리고서 서인을 등용하죠. 이 때, 서인의 대표 브랜드마크(?)로 들어온 여인이 인현왕후입니다.

 

그런데, 서인이 정권을 잡더니 또 왕한테 깝치기 시작합니다. 맘 먹자는 거죠. 숙종은 그걸 참다못해 결국 또 환국을 일으켜 서인을 싸그리 몰아내고 남인을 등용합니다. 이 때, 서인의 대표 브랜드마크 인현왕후는 쫓겨나고.... 대신 남인의 대표 브랜드마크 장희빈이 중전자리를 꿰차고 앉지요.

 

그랬더니 또또 남인이 깝치기 시작하고.... 숙종은 또 환국으로 남인을 아작내고 서인을 데려옵니다. 장희빈 쫓겨나고 인현왕후 복위되죠.

 

자, 이 때..... 제대로 정권을 잡은 서인이 분열되기 시작합니다.

핵심 쟁점은《패배자인 남인을 어느 정도로 아작내야 할까?》입니다.

 

 

남인을 완전 전멸시키자.(노론) - 노장세력.. 나이 든 인간들...

                                              - 대의명분, 민생안정 강조

                                              - 중심인물 : 송시열

 

 

세자를 봐서 좀 살려주자.(소론) - 신진세력.. 처음 들어온 애들...

                                               - 실리 중시, 적극적 북방개척 강조

                                               - 중심인물 : 윤증

 

 

 

이 때, 소론이 남인을 좀 살려주자고 주장한 건.... 소론이 착해서(?) 그런 게 아니라...... 당시 세자가 남인 대표브랜드 장희빈의 아들이니..... 장희빈도 죽은 마당에 남인에게 너무 가혹한 보복을 가하면 결국 세자가 왕이 됐을 때 똑같이 보복받는다는 주장이었지요.

 

그러다가 숙종이 죽고, 장희빈의 아들이 즉위하니 그가 경종입니다. 경종 때에는 소론이 더 우세한 상태로 정국이 주도됐지만.... 경종은 장희빈의 죽음 때문에 너무 충격받은 탓인지 일찍 죽어버리죠. 그리고 연잉군이 즉위하니 그가 영조입니다.

 

영조는 각 붕당 사람들을 골고루 등용하는 탕평책을 실시했지만.....

이 소론 애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이인좌의 난) 결국 노론이 소론을 제압하고 권력을 독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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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이제 마지막 시파,벽파 차례군요.

노론이 권력을 독점하고 있을 때.... 영조가 덜컥 사도세자를 죽여버립니다..ㅡㅡ;

 

그 처분에 대해 노론은 또 둘로 분열됩니다.

 

- 사도세자가 잘못은 있지만, 죽이는 건 너무 심했다.(시파)

- 사도세자를 죽인 영조의 처분은 정당했다.(벽파)

 

이 싸움에서 벽파가 승리하면서 조정은 노론 벽파의 세상이 됩니다. 인기 드라마 이산에서 조정 중신들의 대다수가 바로 이 노론 벽파입니다. 하지만 정순왕후의 죽음 이후에 노론 벽파도 김조순 일파의 안동 김씨 세력에게 제압당하죠. 그 후 풍양조씨가 가세하면서 그 유명한 세도정치가 펼쳐지고, 그걸 끝낸 게 흥선대원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