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경쟁에서 길 잃은 LG전자
"고가폰시장에서 스마트폰의 성장이 예상보다 빨랐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장이 급격하게 변화했는데, 제때 대처하지 못했다. 의사결정도 늦었다. 한번 뒤처지다 보니 변화가 빠른 시장 특성상 단번에 회복하지 못하는 것 같다." (LG전자 고위 관계자)
LG전자가 스마트폰 경쟁에서 소외되면서 절치부심하고 있다.
휴대폰업계의 아이콘으로 부상한 스마트폰시장은 아이폰4G를 앞세운 애플과 갤럭시S의 삼성전자,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의 구글이 주도하는 모양새다.
세계 스마트폰시장에서 LG전자의 시장점유율은 1% 미만이다.
LG전자는 지난해 말 관련 부서를 구성하는 등 다급하게 나섰지만, 이렇다 할 히트작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여러 차례 부서 개편과 인력 보강이 있었지만 여전히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후문이다.
LG전자의 한 엔지니어는 "지난해 말 스마트폰 연구인력 개편이 여러 차례 있으면서 우왕좌왕한 게 사실"이라며 "특히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인력보강과 재편 등이 있었지만 아직까지도 자리를 잡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최근에도 LG전자는 휴대폰 단말기와 스마트폰 콘텐츠 기획 부서를 격상시키는 조직개편을 단행한 바 있다. 전무급 조직이었던 'MC(휴대폰) 글로벌 상품기획팀'을 부사장급 조직인 'MC 글로벌 상품전략담당'으로 격상시켰다. 담당 임원에는 기존 디자인경영센터를 맡고 있던 배원복 부사장이 임명됐다.
LG전자는 또 스마트폰의 콘텐츠 및 애플리케이션 차별화를 위해 부장급 조직인 'MC C & S 전략실'을 임원급 조직인 'MC C & S팀'으로 확대했다. 이 팀은 LG전자의 스마트폰과 일반 휴대폰에 적용되는 각종 애플리케이션 기획뿐 아니라 게임·음악·영화·뉴스 등 콘텐츠업체와의 제휴 업무를 맡았다.
앞서 LG전자 고위 관계자는 "조직개편이 이어지고 있다는 게 현실을 반영하는 것 아니냐"면서 "소프트웨어 부문은 인력부족 문제 등이 여전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의 설명.
"얼마 전 선보인 전략폰 옵티머스Q는 구글 안드로이드 1.6을 최초로 달고 나왔다. 이미 4월에 선보인 타사 제품들이 2.0 이상 버전을 탑재한 것을 감안하면 LG전자의 대응이 늦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LG전자 측에서 최근 2.1이나 2.2로 버전업을 약속했지만 이마저도 시기를 결정하지 못하다 최근에야 7월로 확정됐다. 버전 업그레이드를 하려면 스마트폰에 기본으로 깔린 애플리케이션들을 모두 손봐야 하는데 결국 소프트웨어 인력들이 장기적인 프로젝트나 기술개발보다는 이런 일에 매달리고 있는 셈이다."
SW 개발 능력 뒤처진다 평가
소프트웨어 문제는 OS와도 직결된다.
LG전자는 스마트폰시장이 커지자 독자적인 OS나 플랫폼을 포기하고 MS의 윈도모바일과 구글 안드로이드에만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독자적인 플랫폼 '바다'를 보유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업계에선 SW 개발에 뒤처진 LG전자의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본다.
독자 OS의 포기는 애플리케이션 확보와도 직결된다. LG전자 측은 애초 독자적인 애플리케이션 확보가 어렵다는 이유로 자체 플랫폼이나 OS 개발을 사실상 포기했다. 결국 안드로이드마켓 등 외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공고화됐다. LG전자 측도 6월 안으로 LG 앱스의 문을 열 예정이지만, 응용프로그램 60개로 출발한다. 28만개의 응용프로그램을 갖춘 애플 아이폰과는 대조적이다. LG 옵티머스Q에 적용된 기본 애플리케이션 숫자에도 미치지 못한다. 업계에선 구색 맞추기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스마트폰 경쟁력에서 필수적인 독자 사용자환경(UI)도 옵티머스Q에 와서야 적용됐다. 앞서 LG전자 엔지니어는 "애플 아이폰의 성공은 UI경쟁력에서 나왔는데, 이 분야의 경쟁력 강화도 필수적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점들은 실적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휴대폰을 담당하는 LG전자 MC사업부 매출은 지난해 1분기 3조9084억원에서 올 1분기 3조1396억원으로 낮아졌다. 영업이익은 2486억원에서 277억원으로 급락했다. 판매량이 450만대가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이익이 많이 남는 고가시장에서의 부진을 보여준다.
백종석 현대증권 연구위원은 "이 추세대로라면 2분기 영업이익은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라 전망했다.
최대 격전장인 스마트폰시장에서의 부진이 이어지자 사내 안팎에선 경영진의 능력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남용 LG전자 부회장이 업계 트렌트를 쫓아만 가는 '2등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반폰시장에선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지만 새로운 고객과 시장을 창출해야 하는 스마트폰에선 약점을 고스란히 노출했다는 것.
실제 지난해 하반기부터 스마트폰이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했지만 LG전자 측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다. 또 다른 문제는 LG전자가 하이엔드 제품에 집중했다는 데 있다.
초콜릿폰으로 대변되는 고가 일반폰시장은 LG전자의 매출과 영업이익 증가의 일등 공신이었지만 이 시장 자체가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통째로 파이가 줄어드는 모양새다.
전성훈 유진투자증권 연구위원은 "LG전자의 고가 일반폰 전략은 그동안 성공을 거뒀지만, 스마트폰 등장으로 경쟁지형이 완전히 변했다"면서 "LG전자가 유독 타격을 많이 받는 이유는 중저가폰에서도 존재감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등이 고가폰뿐 아니라 중저가폰시장에서도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LG전자는 규모의 경제를 통한 매스 프로덕트(Mass Product)에서의 경쟁력 또한 경쟁사에 비해 뒤처진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LG전자 고위 관계자는 "초콜릿폰 등 고가 일반폰에서 외형 성장을 이루면서 스마트폰 대응이 늦어졌는데, 이와 관련해서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면서 "시장 변화를 주도하고 비즈니스모델을 창출하는 추진력이 약한 상태다. 애플에 밀렸지만 독자 OS를 내놓고 갤럭시로 반전을 꾀하는 삼성전자와 대조적인 모습이다"라고 지적했다.
LG전자가 장기적인 시장창출보다는 선두업체의 유행제품을 따라하는 것에만 급급했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현재 상황이 하반기에도 그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애플이 아이폰으로 주도하고 있는 글로벌 프리미엄 휴대폰시장은 안드로이드OS를 채택한 삼성전자와 구글 등이 뛰어들어 경쟁이 격화하는 모양새다. LG전자가 이 시장에서 히트폰이 절실한 이유다. 한은미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LG전자 측이 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제품을 내놓아야지만 수익성 회복이 가능할 것"이라 분석했다.
LG전자 측은 하반기에는 사정이 나아질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나주영 LG전자 과장은 "옵티머스Q가 하루 1500대 이상 예약될 만큼 인기가 높다"면서 "옵티머스Z 등 후속모델도 잇따라 나올 예정인 만큼 하반기 시장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밝혔다.
반면 증권가 등 전문가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전성훈 유진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주력이던 고가 피처폰시장이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는 상황에서 어느 구석을 봐도 좋아질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면서 "특히 스마트폰 하드웨어 성능의 차별화가 힘든 현실에서 안드로이드OS 등에 의존하는 식으로 이익을 회복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 진단했다.
내부에서도 비상이 걸린 상태다.
LG전자 측은 애초 3분기에 중가 수준의 안드로이드폰을, 11월에는 안드로이드OS와 윈도모바일을 사용한 고가 전략폰을 내놓는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런 계획은 아이폰4G와 갤럭시S가 나오면서 달라졌다.
LG전자 측은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를 뒤엎고 다시 시작하는 수준에서 제품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마트폰 경쟁의 화두가 된 두께와 반응 속도 등 모든 분야에서 아이폰4G와 갤럭시S에 비해 성능이 뒤처지거나 차별성이 없는 스펙의 제품을 개발해오다 뒤통수를 맞았다는 게 LG전자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에 대해 나주영 LG전자 과장은 "하반기 스마트폰 출시는 계획대로 진행된다. 개발 제품을 뒤엎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LG전자의 A임원은 "2~3개 모델의 전략폰 개발을 어느 정도 완료한 상태였는데 애플 아이폰4G와 삼성 갤럭시S의 성능이 예상을 뛰어넘었다"면서 "11월 나올 전략폰의 출시 시기를 10월경으로 당기고 디자인과 성능을 업그레이드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고 밝혔다.
하반기 전략폰 주목
구글과의 제휴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OS 등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떨어지는 만큼 구글과의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이를 만회해보자는 것이다. 이와 관련 시장에선 구글폰인 넥서스Ⅱ를 LG전자에서 생산할 것이란 소문도 돌았다.
A애널리스트는 "뒤떨어지는 경쟁력을 제휴 강화를 통해 만회하자는 취지로 들리지만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면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의 생태계를 키우는 게 목적인 구글이 타사들을 제쳐놓고 LG 측과의 관계를 더 돈독히 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앞서 LG전자 임원은 "구글 OS가 개방형인 만큼 특별한 제휴 관계의 의미는 크지 않다"면서 "하반기 전략폰의 경우 이미 대형 통신사 80여곳에 공급하기로 결정된 상태로 갤럭시S에 못지않은 초반 돌풍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스마트폰 개발이 지난해 말부터 꾸준히 이어진 만큼 늦어도 연말부터는 반전을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LG전자 휴대폰사업부의 부진은 회사 전체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지난해 MC부문은 글로벌 기준으로 매출액의 33%, 영업이익의 43%를 차지했다. 휴대폰 사업부문의 부진은 연구개발과 마케팅비용 축소로 이어질 수도 있다.
TV 등 다른 분야에서의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 애플과 구글 등이 스마트 TV시장을 노리는 상황에서 LG전자의 스마트폰 경쟁력이 TV로도 이어질 수 있다. 당장 스마트 TV 플랫폼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바다 플랫폼의 또 다른 목적은 향후 스마트폰시장에서의 경쟁력과도 관련이 있다"면서 "스마트 TV 플랫폼을 타사에 일방적으로 의존하기에는 리스크가 크다"고 밝혔다. 시장에선 LG가 소니처럼 스마트폰 TV에서 결국 구글과의 협력을 강화하려는 쪽으로 움직일 것이란 시각이 제기된다.
[김병수 기자 bskim@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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