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요즘세상!

나도 이런 스승 있었으면”…멘토 찾는 현대인 마음 움직인 박칼린

영원한 울트라 2010. 9. 12. 22:53

KBS-2TV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 Mnet의 ‘슈퍼스타K’ 속 전문가들이 남긴 것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요즘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웃음을 분비하는 엔도르핀이 아닌가 보다. 최근 화제가 되는 예능 프로그램들은 모두 오락 프로인지 다큐멘터리인지 모르게 진지한 것들이다. 일요일 저녁엔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이 거제 합창대회 출전을 목표로 5개월간 하모니를 연마해온 과정을 방영 중이다. 케이블 채널 Mnet의 ‘슈퍼스타K’는 시즌2에 와서 더 엄정해진 심사로 연일 눈물의 탈락자를 속출시킨다. MBC 대표 예능 ‘무한도전’은 1년여에 걸친 레슬링 도전을 10주간 방송하면서 부상에 대한 우려를 부를 정도로 몸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 프로그램 안에는 언제나 쓴소리와 시범을 서슴지 않는 전문가들이 있다.

존재가 곧 권위가 된 전문가들
전문가의 TV 출연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SBS ‘솔로몬의 선택’이나 KBS ‘비타민’처럼 법률ㆍ의학계의 전문가들이 나와서 일반인의 상식을 교정해주는 프로그램은 셀 수도 없을 정도다. 이들은 프로그램의 ‘지식’을 채워주고 시청자에겐 정보 제공 창구 역할을 했다. 아예 ‘엔터테이너형 전문가’로 활약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런데 요즘 예능 프로그램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전문가는 그런 보조적 역할을 넘어선다. 연예인들의 아마추어 야구 도전기를 그리는 KBS ‘천하무적야구단’에서 김성한ㆍ선동열 감독은 웃기러 나온 것도, 해설하러 나온 것도 아니다. 그들은 멤버들에게 현역 시절의 비법을 전수해주며, ‘야구의 전설’로서 ‘명불허전’을 입증한다. 지난해 봅슬레이, 올해 레슬링에 도전한 ‘무한도전’ 7인에게 직접 시범을 보인 선수ㆍ감독들은 지금도 현역에서 승부를 벌이는 이들이다.

상대적으로 방송 노출이 많은 가요 전문가들도 이들 도전프로에서만큼은 ‘예능감’이 아니라 프로페셔널리티를 과시한다. ‘슈퍼스타K’에서 깐깐한 논평으로 진출ㆍ탈락자를 가름하는 윤종신이 대표적이다. MBC ‘라디오스타’나 엠넷 ‘비틀즈코드’에서 깐죽대는 진행자와는 180도 다르다. 온스타일 채널의 디자이너 리얼리티쇼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나 QTV의 서바이벌 요리프로 ‘에드워드 권의 예스! 셰프’가 보여주는 세계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프로이고, 선배이고, 실력자이며, 리더이자, 선생님으로 자리매김한다. 해당 분야에 대한 확신과 열정, 자기만의 스타일로 무장한 실력, 그리고 세상을 먼저 치열하게 산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도도함이 빛난다. 존재가 곧 권위인 셈이다.

칼마에 혹은 박칼라스의 탄생
실력파 전문가들의 따끔한 한마디가 ‘권위 부재의 시대’ 시청자를 사로잡는다. Mnet ‘슈퍼스타K’의 본선 심사위원들(사진 위)과 KBS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사진 아래)에서 카리스마를 발산 중인 박칼린 음악감독(큰 사진).
요즘 가장 화제는 ‘남자의 자격’(이하 ‘남격’) 합창단을 이끌고 있는 박칼린(43) 음악감독이다. 리투아니아계 혼혈의 이국적 외모에 독특한 이름으로 시선을 끄는 그는 원래 뮤지컬계의 입지전적인 음악 감독이다. 1995년 ‘명성황후’ 이후 국내 뮤지컬 1호 음악감독으로서 수십 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핑클’ 출신 옥주현을 뮤지컬계로 발탁한 것도 그다. 그러나 그것은 ‘업계’나 아는 얘기. 시청자의 눈에 낯설기 그지없는 그는 근래 보기 드문 혹독한 조련사의 모습을 보여주며 방송 때마다 검색어 1위를 오르내린다.

일반인ㆍ연예인이 뒤섞인 오디션 때부터 그는 엄정한 청음 능력으로 분위기를 압도했다. 실제 합창단 연습에 들어가선 곡(‘넬라 판타지아’와 만화주제가 메들리)에 대한 거침 없는 해석과 매서운 호통으로 좌중을 리드했다. 34명 중 한 명이라도 음이 처지면 어김없이 “플랫!”(음이 처지지 않게 유지하라는 뜻)을 외친다. 시선 처리가 미숙하고 몸을 자꾸 움직인다며 솔리스트 배다해를 아예 벽에 세워 놓기도 했다.

배다해는 끝내 눈물을 보였지만 누구도 그 눈물에 항의하지 않는다. 제자를 깊이 사랑하는 ‘무서운 선생님의 진심’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불호령과 대비되는(혹은 짝을 이루는) 음악에 대한 무한한 경외감은 또 어떤가. ‘넬라 판타지아’ 가사에 실린 이상향에 대한 갈망을 설명하는 표정은 강력한 흡입력으로 시청자의 마음을 빨아들였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김명민)에 빗대 그가 ‘박마에’ ‘칼마에’로 불리는 이유다. 그러면서 마지막엔 “I love you. 그리고 Thank you.(사랑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인사를 잊지 않는 푸근함도 있다. 최근 KBS 음악프로그램 ‘음악창고’에 제자 최재림과 동반 출연해 풍부한 성량을 과시하는 모습에 네티즌들이 ‘박칼라스’라는 애칭을 붙여준 것은 그를 지지하는 대중의 심정을 잘 보여준다.

다큐 같은 예능 속 ‘진짜’의 무게감
이런 현상은 최근 TV 예능이 리얼 버라이어티를 중심으로 ‘장기 다큐’화하는 경향과 맞물린다. 연예인들이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1년씩 한 분야에서 숙련을 거치는 과정을 ‘아마추어의 프로 도전기’로 방송하는 식이다. 일반인의 경우엔 패션 디자이너ㆍ모델ㆍ요리사 등 전문 분야에서 서바이벌 리얼리티쇼를 벌이는 과정이 중계된다. 자칫 주먹구구 인생 극장이 될 수 있을 프로그램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힘은 전문가에게서 나온다. 그들의 조언과 집념, 카리스마, 프로의식은 출연자와 시청자를 팽팽하게 긴장시킨다. “음악은 하고 싶으면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프로는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절대 아닙니다”라는 이승철의 TV 광고로 대표되는 메시지다.

그렇기에 프로그램은 아마추어의 아마추어성과 프로들의 전문성ㆍ권위ㆍ정통성을 극단적으로 대비시킨다. ‘슈퍼스타K’에서 심사위원들은 선배 김추자ㆍ윤시내의 가창력과 파워풀한 무대 매너를 회상하며 그들의 권위를 좇아 걸어온 길을 회상한다. 그리고 앞에는 또 그들을 추앙하는 신참들이 서 있다. 무대 위 초짜들과 감정이입된 시청자들은 “아직 우리가 모르는 세계가 많다. 나는 더 배워야 한다”며 심사위원의 꾸짖음을 달게 받아들인다. 몸 개그, 독설, 사회풍자가 아니라 풋내 나는 아마추어들이 혹독하게 조련당하는 모습에, 전문가들의 신랄한 지적에 오히려 위안을 받는다.

그러니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웃음이 아니라 감동인지 모른다. 지도자들이 특혜를 대물림하고, 황우석ㆍ신정아ㆍ민홍규 같은 ‘가짜’ 권위자들이 판을 치는 시대. 리얼 버라이어티, 리얼리티쇼의 ‘리얼한 도전’에서 존중받아 마땅한 ‘진짜 권위’를 보면서 사람들은 새삼 현실을 아쉬워한다. 피땀 어린 각고의 노력으로 쌓아 올린 ‘권위’에 납득당하고 싶은 사람들은 현실에서 이렇게 말할 대상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I love you. 그리고 Thank you.”

글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