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경쟁/e-book

E-BOOK의 문제점

영원한 울트라 2011. 10. 28. 12:38

ㆍ소통 다변화·표현의 자유 확대 방증…콘텐츠 품질 논란 여전

지난 9월 초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은 <아이패드가 전자책 시장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는 아이패드의 등장에 따른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의 급속한 출판 패러다임 변화를 예상했다. 또한 1인출판 시스템 도입과 개인 창작물의 전자책 보급은 활성화되는 반면, 기존에 콘텐츠 공급자였던 출판사의 영향력은 약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에서도 조만간 아이패드가 선보일 예정이지만, 우선은 미국의 상황을 전제로 한 예측이다.

서점에서 한 여성 독자가 전자책 단말기를 보고 있다. | Weekly경향


국내 정보통신 분야의 대표적인 연구기관 자료이므로 공신력은 높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자책 붐과 관련된 여러 분석들과 대동소이한 이러한 시각은 지나치게 현상을 단순화시켰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과도한 기술결정론 내지는 현실의 이해관계를 무시한 단견이라는 것이다. 왜 그럴까.

첫째, ‘1인출판 대세론’은 종이책 시대는 가고 전자책 시대가 도래했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전자책 붐이 일고 있다는 미국에서조차 아직까지 유료가 아닌 무료 전자책 이용이 압도적이며, 주식 가치를 높이려는 아마존닷컴의 “전자책이 종이책보다 더 팔렸다”는 세부 근거 없는 발표만이 집요하게 인용되고 있다. 미국의 전자책시장 규모는 최대한 늘려 잡아도 전체 출판시장의 5% 미만에 머물러 있다. 다용도 단말기인 아이패드가 독서용으로 많이 활용될지도 미지수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러 문제점으로 인해 지난 1년간 스마트폰, 전자책 전용 단말기를 이용한 전자책시장이 아예 형성되지도 못한 채 사실상 거품으로 판명났고, 태블릿PC에 의한 전자책시장 형성 가능성 역시 매우 불투명한 실정이다.

둘째, ‘1인출판 대세론’은 출판사 없이도 저자가 직접 전자책을 내다 팔 수 있는 시장이 생겼고, 그것이 보다 많은 수익을 저자에게 안겨줄 것이므로 신인 저자뿐만 아니라 유명 저자들까지 대부분의 저자가 경제원리에 따라 서비스업체와 직거래할 것이라고 전제한다. 이것은 전자책 만들기나 판매 구조가 매우 손쉬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또 다른 편견과 맞물려 있다.

종이책 중심의 주류 출판시장 건재
하지만 정확한 교정·교열, 미려한 편집과 디자인, 지속적인 판매관리와 마케팅 등 출판 전문가들이 아니면 제대로 해내기 어려운 일을 개인 저자들이 더 잘 하기는 어렵다. 단순 제작과정에서는 외부 업체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이 경우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만 ‘제법 그럴 듯한’ 전자책 콘텐츠가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또 비용이 수반되는 마케팅 활동이 가능할지도 생각해야 한다. 그냥 서비스업체가 제공하는 기본 포맷에 콘텐츠를 담아 공급만 하면 저절로 알아서 판매가 원활하게 될 리는 없다. 따라서 출판사들의 핵심 역량인 기획·편집과 마케팅의 중요성은 전자책시장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며, 1인출판이 양적으로 증가하는 것과 출판시장의 주도권은 별개라는 점이 인식되어야 한다. 종이책의 위상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한, 유명 저자일수록 단지 전자책의 인세를 높이기 위해 기존 출판사들과 등을 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원고 집필 이외에 판매·마케팅과 관련된 수많은 일을 직접 나서서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1인출판’은 정확히 말해 ‘자가출판’(自家出版, Self Publishing)을 가리킨다.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저자가 직접 자기 책을 발행하는 것을 말한다. 저자가 자기 비용으로 책을 펴내는 자비(自費)출판은 출판사에서 책을 발행하는 것이므로 1인출판과는 구별이 필요하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기존 출판사들 이외에 자비출판을 전문으로 하는 곳들이 상당히 성업 중이다. 근래 저자와 독자의 콘텐츠 직거래 장터인 ‘오픈 마켓’이 연달아 개설되는 것도 1인출판의 활성화를 염두에 둔 서비스업체들의 포석이다.

1인출판은 사실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이미 고려시대 때도 관청에서 펴낸 관판본과는 다른 사가판(私家版)이 다수 발행되었다. ‘1인출판 가이드북’만 해도 무려 2만 종이 넘게 나온 미국에서는 이미 1인출판에 의해 기존 출판사가 발행하는 것보다도 더 많은 책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아이패드의 등장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전자책의 디지털 데이터를 저장해 두었다가 수요자의 주문을 받아 낱권으로 종이책을 만들어 보내주는 주문형 인쇄출판(Print on Demand)이 발달한 데 따른 결과다. 이렇게 나온 책들 가운데 인기 도서들 일부가 정식으로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상업출판사의 목록이 된다. 말하자면 출판시장 측면에서 1인출판은 메이저 리그(상업출판사)로 가기 위한 마이너 리그인 셈이다.

외국에서는 몇몇 작가들이 출판사를 제치고 서비스업체와의 직접 계약을 통해 콘텐츠를 공급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오픈 마켓’ 활성화에 따라 출판사의 역할이나 출판시장에서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라는 출판계의 우려도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아마도 이것은 기우에 그칠 것이다. 항시적으로 신간이 넘쳐나는 다품종 생산이 특징인 출판시장에서 개인출판의 시장 지배력이 커질 것으로 예측하기는 힘들다. 시민 기자들이 주도하는 ‘오마이뉴스’가 언론시장을, 개인들이 주도하는 무료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가 영상시장을 장악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수적으로는 훨씬 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소수인 기관 투자가들을 당해내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개인의 출판활동은 이전에 비해 눈에 띄게 활성화되겠지만, 출판시장의 유력 콘텐츠들은 여전히 자본력과 시스템을 갖춘 출판기업들에 의해 생산·판매될 것이란 함의이다. 출판사는 위축되는 것이 아니라, 다원화·전문화가 가속화되는 지식정보 사회를 맞이하여 특화된 콘텐츠 공급을 통해 그 역할을 유지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디지털 기술 발전 불구 전문성 결여
1인출판이나 자비출판이 탄생한 것은 종이책 시대의 기존 출판 시스템에서 수많은 표현자(저자)들의 원고를 채산성 문제로 출판해주지 않았던 데 연유한다. 판매 가능성이 낮은 책을 펴내려는 상업출판사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1인출판은 ‘시장의 비주류’로 남더라도 표현의 자유와 출판의 자유를 신장시켜 종국적으로 민주주의를 확장시키는 중요한 기제가 될 것이다. 반면, 기본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개인 저작들이 양산됨으로써 전반적으로 콘텐츠 품질이 저하될 것이라는 우려도 높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가운데 l인출판 시대, 아니 전자책을 통한 자기 표현의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백원근<재단법인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