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야기/중국역사

진나라의 몰락

영원한 울트라 2017. 8. 20. 19:46

김학철과 진나라의 몰락.

 

김학철 충북도의원이 물난리속 외유 사건 인터뷰에 레밍(lemming)이란 낯선 단어로 국민의 울분을 또한번 터뜨린 사건을 접했다

 

레밍이란 단어, 고백컨데 이번에 처음 들었다. 가방끈도 짧긴 하지만 본시 영어에 취약하고 알레르기가 있어 모름이 부끄렵지는 않지만, 찾아보니 들쥐 혹은 나그네쥐라는 이름도 있는데 애써 레밍이란 표현을 했는지도 의아스럽다.

 

그와중에도 글로벌 마인드의 발로였는지 아니면 배운자(찾아보니 그는 고려대 정외과 출신이다)의 고급스런(?) 언어선택이였는지는 모르나 어째든 영어단어 하나 또 배웠다. 이래저래 어리석은 백성을 어여삐 여겨 손수 어려운 단어를 쉽게 가르쳐주니 이얼마나 고마운 정치인 인가.

평생 레밍이란 단어, 잊어먹을일 없을듯 싶다

 

그런데 레밍이 쥐라는 것을 듣자 나는 엉뚱하게도

李斯 (이사)라는 인물이 떠올랐다.

고대중국 땅, 기원전 200년 저쪽. 그러니까 대충 셈해도 2200년 전 사람이니 까마득한 옛사람이다.

 

중국 역사서의 아버지 사마천의

'사기'를 읽으면서 '이사열전'의 쥐와 관련된 일화를 인상깊게 읽은 탓이다.

 

결론을 말하면 이사는 진시황이라 일컫는 진나라 왕 政(정)을 도와 춘추정국의 어지러운 중국대륙을 하나로 통일시키는데 결정적 일을 한 뛰어난 정치인이다.

 

통일시킨 이후 처음으로 황제라 칭하니

'시황제 '가 되고 진나라의 첫번째 황제,

즉 '진시황'이 된것이다.

우리가 흔히 아무렇지 않게 진시황, 이라고 부른는 이면에는 이런 숨은 사연이 있다. 진시황제라는 '황제'의 명칭도 설명하자면 길다.

'삼황오제'라는 중국 고대신화를 검색하면 자세히 나올터.

검색해보시길 부탁드린다.

 

이사는 본시 초나라 사람으르 가난했다.

그가 초에서 말단관리로 있던 시절.

그는 관청 변소의 쥐와 넓은 곳간의 쥐를 목격하고 큰 깨달음은 얻는다.

 

이렇게 기록돼있다

"(어느날 이사가) 관청의 변소에서 쥐가 오물을 먹다가 사람이나 개의 인기척이 나면 깜짝놀라고 겁을 먹는 모습을 보았다. 또 어느날인가는 창고에 들어갔는데, 곡식을 먹는 넓은 창고의 쥐들은 사람이나 개를 겁내지 않았다"

 

이에 이사는 "사람의 잘나고 못남도 쥐와 다를바 없으니 스스로 어떤 상황을 만드느냐에 따라 달라짐이로다"

 

하고는 출세길을 찾아 제나라로와서 당대의 유명한 사상가 荀子순자의 문하에든다.

배움을 마친 뒤 그는 뛰어난 재능으로 진나로 진출해 客卿객경이라는 최고위직에 올라 진나라 왕 '정'을 도와 진이 천하를 통일시킬수 있도록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제부터가 문제다.

그의 정치철학은 다름아닌 출세와 부귀영화. 진나라로 진출하며 스승 순자에게 던진 한마디는 다음과 같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비천함이 가장 큰 수치요, 곤궁함이 가장 큰 슬픔입니다. 빈곤하고 비천함에 처하면 세상사람들이 비웃습니다.

명리를 아끼지않고 아무것도 하지않는것은 배운사람의 태도가 아닙니다. 그래서 진나라로 갑니다."

 

출세하고 싶다는 것이다.

 

결국 뜻대로 그는 출세했다.

그러나 명리와 이익만을 쫒는 그의 정치철학은 결국 비극의 종말을 맞게된다.

 

그는 천하의 간신이 되고

길이길이 욕된 이름을 남긴다.

 

사연은 다음과 같다.

 

천하를 통일하여 스스로 황제라 칭한 진시황은 자신의 제국을 살펴보는 순행길을 나섰다가 사구지방에서 객사한다. 50세. 불로장생을 꿈꾸던 황제의 객사다. 허무한지고.무엇을 위한 천하통일이였던고? 인생사 참 모를 일이다.

 

진시황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이사와 함께 일으킨 분서갱유때 자신에게 반대했던,

결국 변방으로 내쫒은 큰아들 부소를 후계자로 삼으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옥새를 관리하던 내관 조고가 진시황제의 작은 아들 호해와 짜고 유언장을 변조한다.

이로인해 어리버리한 아들 호해는 이세 황제로 등극한다.

 

그러나 진나라는 여기서 끝난다. 어리버리한 호해는 주색에 빠져든다. 통일이후 37년.

천하의 진나라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다시 어지러운 세상이 된다.

 

이사는 여기에 가담한다. 조고의 가짜 유언장은 이사의 승인으로 완성된다.

결국 이사는 조고와 호해와 결탁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듯하나

이후 혼란에 빠진 진나라는 멸망한다.

 

그러니 당연히 그 끝은 비극적.

이사는 결국 조고와도 갈등, 끝내 요참형을 당해 죽는다. 자신이 만든 법령에 의한 허리잘림으로 죽은것이다. 그의 아들 이유를 비롯 모든 가족도 몰살됐다. 부귀영화의 정치철학의 끝은 당대를 넘지 못하고 멸문됐다.

 

이후 우리가 잘아는 항우와 유방,

그들의 천하를 두고 다투는 초한지의 무대가 펼처진다.

여전히 2200년전 이야기다.

 

2200년전과 지금.

과연 얼마나 달라졌나?

 

김학철은 누가봐도 똑똑하다.

지방의 고등학교 (충주고)를 나와 소위 SKY대라 일컫는 고려대 정외과를 진학했으니 그 기대와 자부심이 오죽했으랴.

거기에 정치인의 그늘에서 키워졌으니 어떻게 해야 정치적 출세가 가능한지를 이미 알았을터.

 

국민들의 불만 불평은 지나고 나면, 들쥐처럼 자신의 먹을거만 찾는,

적당한 먹거리를 던져주면 사라질거라는 사고가 자신도 모르게 자리했지 싶다.

실패를 모르는 똑똑한 자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이다.

그는 이미 기득권 문화에 깊이 빠져있는듯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도의회의 상임위원장이라는 자가 이 난리에 일행을 거느리고 외유길을 떠날수 있겠는가.

물론 이유와 핑계는 있을수 있다.

가고 싶었을 것이다. 몇번이나 미뤘다니 오죽했겠는가.이번이 지나면 시기적으로도 선거가 코앞이라 더어려운 일. 마음이 앞서니, 욕심이 앞서니 비난이 보이지 않았던 게다.

 

그러나 한 가정에서도 큰일이 닥치면 행사를 미루는 법.

그는 자신의 명리와 이익에 눈이 어두웠다.

이사가 부소와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호해를 도와 진나를 멸망케 하고 자신마저 멸문지화를 당한 것처럼,

이익과 명리에 눈이 어두우면 큰 그림이 안보이는 법이다.

 

고로 이사의 비극적 종말은 이후 이익에 눈먼 자들의 교훈이 된다

 

김학철을 다시 생각한다.

레밍, 들쥐, 혹은 나그네 쥐.

47년을 살아온 당신의 뇌속에는 혹시 백성은, 민초는, 국민은 자신처럼 이익만 쫒는 정치인의 희생양들이라 생각하지는 않는가!

무의식속의 잠재언어가 당황스런 상황에서 그야말로 '무의식적으로' 나온 건 아닌지?

 

진나라의 멸망,

결국은 자신의 이익만을 쫒던 이사와 조고 때문이었다.

쥐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던 옛시대의 정치인과 국민을 쥐로 생각하는 오늘날의 한 지방 정치인.

2천년이 지나도 정치인의 뇌구조는 여전히 연구대상이다.


출처: http://blog.daum.net/gyouke/45 해오름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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