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딘스키 [1866.12.16~1944.12.13]
20세기 추상 미술을 개척한 칸딘스키<1866∼1944>는 초기 사실주의풍부터
인상파풍, 표현주의를 거쳐 추상주의로까지 그의 작품세계는 상당히 변모했다.
소련에서 예술 혁신을 위해 애썼던 칸딘스키는 희망을 찾아 베를린으로 옮긴다.
바우하우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창조하는 이상적인 생활을 하지만 나치의
압박때문에 유태인이었던 그에게 베를린은 천국이 아니었다.
독일 내에 있던 그의 작품이 ‘퇴폐예술’로 낙인 찍혀 나치 정부에 몰수되는
수모를 겪지만 프랑스에서 살고 있던 그는 거기에 굴하지 않고 의욕적으로
작품활동을 한다. 그의 작품세계는 원숙의 극치를 이루 고 있다.
풍부한 상상력에서 솟아 나오는 그의 작품이 다채로운 것은 칸딘스키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데서 나온다.
모스크바 출생. 1939년 프랑스에 귀화하였다. 현대 추상미술을 창시한 한 사람이며 처음에는 법률과 경제학을 배웠으나, 1895년 인상파전을 보고 모네의 작품에 감명을 받고 이듬해인 1896년 뮌헨으로 옮겨 아즈베와 F.슈투크에게 사사하여 화가로 전향하고 1905년 살롱 도톤의 회원이 되었다. 그 전후에 이탈리아 ·튀니지 ·프랑스 등지를 여행하고, 1908년 이후 뮌헨 ·무르나우에 살면서, 1910년에 최초의 추상회화를 제작하였다.
또한 표현파인 프란츠 마르크와 함께 뮌헨에서 예술가집단인 ‘청기사(靑騎士)’를 조직하여(1911), 비구상 회화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 후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모스크바로 돌아가, 1918년 미술학교 교수가 되었으나 1921년 다시 베를린으로 가서 이듬해부터 1933년까지 바우하우스의 교수(처음 바이마르, 1925년부터 데사우)로서 후진지도와 신예술 개척에 힘썼다. 만년에는 1933년부터 프랑스에 정주하여, 여행 이외에는 파리 교외의 누이쉴센에 살았으며, 1937년 나치스가 퇴폐예술가라고 지적하여 작품이 몰수당한 적도 있다.
그는 현대 추상회화의 선구자로서, 대상의 구체적인 재현에서 이탈, 선명한 색채로써 교향악적이고도 다이내믹한 추상표현을 관철한 후 점차 기하학적 형태에 의한 구성적 양식으로 들어갔으나 P.C.몬드리안과는 또다른 독자적인 발전의 자취를 남겼다. 주요작품으로는 《푸른 산》 《즉흥 14》 《검은 선들》 《가을》 《콤포지션 7》 등이 있으며, 또 추상미술 이론가로서도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 Uber das Geistige inder Kunst》(1921) 《점 ·선 ·면 Punkt und Linie zu Flache》(1926) 등의 저술도 남겼다
'미술사랑 > 국내작가소개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리의 사랑 이야기 (0) | 2005.09.30 |
---|---|
달리1 (0) | 2005.09.30 |
망갱 [1874 ~ 1949] (0) | 2005.09.29 |
마르케 (0) | 2005.09.29 |
마르케 (0) | 2005.09.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