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졸업 20년 만에 ‘화가’ 꿈 이룬 최수지의 ‘사랑이 꽃피는 나무’ | |
[레이디경향 2005-12-15 21:18] | |
무릇 세상살이는 혼자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셋이 힘이 되는 법이다. 97년 결혼과 함께 한국을 떠났다 미국서 딸 진아를 낳고 3년 전 돌아온 탤런트 최수지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식구가 늘더니 좋은 일만 계속된다. 삼성현대 미술대전 특별상을 수상한 데 이어 초대 개인전을 열더니, 급기야 얼마 전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20년 만에 06학번 새내기로 대학생의 꿈까지 이뤄냈다. 톱스타에서 평범한 가정주부로, 화가에서 학생으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탤런트 최수지의 거꾸로 사는 인생.
전시회장에는 딸 진아와 남편 백진씨를 비롯, 최명길, 이응경 등 연예인 동료들이 대구까지 내려와 그녀의 용기 있는 선택에 박수를 보냈다. 특히 최재성의 방문은 깜짝 이벤트. ‘사랑이 꽃피는 나무’ 커플의 곰삭은 우정은 갤러리에 모인 많은 사람들의 마음까지 훈훈하게 만들었다.
화가로 변신해 첫 개인전 열다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니도 기뻐해주시겠죠?” 지난 11월 7일 최수지(37)의 생애 첫 개인전이 있던 날, 대구 동아갤러리 안은 꽃향기가 진동했다. 최수지의 그림을 향한 오랜 짝사랑이 마침내 결실을 맺는 순간이다. 탤런트 최수지의 전성기 대표작이던 ‘사랑이 꽃피는 나무’와 동명의 작품이 벽에 걸렸다. 남편 따라 건너간 미국생활에서 소재를 가져왔다는 ‘샌프란시스코’도 화사한 기운을 더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 ‘진아’의 초상화에선 엄마의 사랑이 물씬 배어난다. 그림만 봐도 화가의 생각이나 기호, 성격 등을 알 수 있다더니 그 말이 꼭 맞는가 보다. 사랑하는 남편, 딸과 함께하는 행복한 생활은 그녀의 작품 곳곳에서 묻어난다.
사실 최수지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미술품 컬렉터. 그림에 대한 그녀의 관심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녀가 직접 붓을 잡은 건 뜻밖의 일. 관심은 컸을지 몰라도 체계적인 교육은 받아본 적이 없는 그녀다. 초지일관 그림에 대해 짝사랑만으로 일관해오다 갑작스레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나 했더니 역시나 ‘사랑의 힘’은 위대했다.
“우선 남편의 적극적인 지원이 큰 힘이 됐어요. 자신이 바라던 일이 결실을 맺었을 때의 만족감과 희열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면서 더 늦기 전에 ‘시작해보라’더군요. 그 말에 용기를 냈죠. 처음엔 겁도 났는데 이젠 참 잘했단 생각이 들어요. 오늘 제 그림에 옷이 입혀져 걸려 있는 걸 보니 가슴이 어찌나 뭉클하던지요.”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는 유명세를 치르느라 마음을 살필 겨를이 없었고, 결혼해 주부로 살면서는 남편과 아이 챙기기에 바빠 자신의 욕심을 차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런 그녀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3년 전의 일. 대구 국제부인회(TIWA)에서 뜻 맞는 사람들과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 처음에는 단순히 취미 삼아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그림에 대한 욕심은 커져만 갔다.
“어느날 주윗분들의 추천으로 공모전엘 나가게 됐어요. 좋은 경험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당시 출품작이 ‘여름 속으로’라는 제목의 풍경화였는데 정말 상까지 받을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그러더니 어느 날인가는 초대전 제의가 들어왔어요. 겁 없이 ‘하겠다’고 말해놓고는 수개월간 전시회 준비하느라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죠. 그런 만큼 보람도 컸지만요.”
호사다마라는 말도 그녀에게만큼은 통하지 않는 듯하다. 숨돌릴 틈도 없이 연신 웃을 일만 계속되고 있다. 미술대전에서 상을 받고, 넉달 만에 첫 개인전을 열더니, 이번엔 2006학번으로 예비 대학생이 됐다는 소식까지 들려온다. 고교 졸업 직후에도 공부에는 크게 뜻이 없었던 그녀가 대구예술대학교 서양학과 수시모집에 합격,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20년 만에 다시 학업을 잇게 됐다. 최수지는 무엇보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뒤늦게나마 효도를 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했다.
“얼마 전에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더니 그러시대요. ‘기특하다’ 하시면서 ‘엄마도 하늘나라에서 많이 기뻐하고 계실 거다’라구요. 코끝이 찡해지더군요. 학창시절 미술을 전공하려 했을 땐 엄마가 반대해 제가 포기했고, 엄마가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야지’라고 했을 땐 제가 말을 듣지 않았죠. 조금 늦긴 했지만 하늘나라에 계신 엄마도 기뻐해주시리라 믿어요.”
코끼리 피부처럼 갈라지고 터진 화가의 손 “내 인생의 기준은 언제나 가족”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 타고난 재능만큼 중요한 건 미술에 대한 열정이다. 최수지의 화가로서의 앞날이 기대를 모으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 인터뷰 도중 목격한 최수지의 손에선 그녀의 화가로서의 불타는 열정을 읽을 수 있었다. 갈라지고 터진 상처가 가득하다. 손바닥 곳곳, 아니 전체가 다 굳은살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마치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을 연상케 하는 최수지의 손은 가슴 속에 묵직한 감동 하나를 새기게 한다.
“보셨어요? 완전히 작전 실패네요. 오른손 상태가 워낙 심해 좀 감춰볼까 싶어 왼손에 커다란 반지까지 꼈는데.(웃음) 유화를 하다 보니 어쩔 수가 없더라구요. 그래도 주부인데 그림 그린다고 집안일을 미뤄둘 수가 있어야죠. 부엌 세제를 손에 한가득 짠 다음 철수세미로 빡빡 문질러야 깨끗이 지워져요. 그렇다고 장갑을 끼자니 붓을 잡았을 때의 느낌이 둔해서 그건 또 싫고, 방법이 없었어요.”
최수지는 받는 사랑보다 주는 사랑에 더 익숙해 보인다. 생애 첫 전시회를 준비하는 그 바쁘고 정신없는 기간에도 그녀는 좋은 아내, 최고의 엄마이기를 잠시도 포기해본 적이 없다. 그녀의 삶을 움직이는 기준은 언제나 가족. 최수지의 하루 일과는 새벽 5시, 딸아이의 도시락을 싸는 일로 시작된다. 아토피가 있어 학교 급식을 먹지 못하는 딸을 위한 엄마의 배려다.
그림을 그리느라 번번이 뜬눈으로 밤을 지새면서도 가족을 위한 세 끼 식사 준비만큼은 걸러본 적이 없는 그녀다. 때문에 가족들이 느끼는 아내, 그리고 엄마의 자리는 그 어떤 가정보다 클 수밖에 없다.
최수지가 MBC-TV 아침 드라마 ‘빙점’으로 연기활동을 재개했을 때였다. 태어나서 엄마와 한 번도 떨어져 생활해본 적이 없는 딸 진아는 당시 바깥일로 바빠진 엄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원형탈모증이 생길 정도였다고. 아이 상태가 이러한데 남편 백진씨의 마음이라고 편했을 리 만무하다. 엄마, 아내의 빈자리가 확연히 눈으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고.
“사람 일은 모르는 거지만 당분간 연기하긴 힘들 거 같아요.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기도 하구요. 그림, 연기 그 어떤 것도 우리 가족보다 소중할 순 없거든요. 물론 하나님이 주신 천직이 연기자라는 건 너무도 잘 알아요. 하지만 연기는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팬들이 저를 잊지 않고 기억해주기만 한다면 말이죠. 그림은 연기와 달리 집안일과 병행할 수 있어서, 우리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일이라 더 좋은 것 같아요. 당분간은 학업에만 충실할 생각입니다.”
헌신적인 엄마이자, 책임감 있는 아내의 자리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내고 싶다는 천생 여자 최수지. 당분간 그녀의 연기하는 모습을 TV에서 보긴 어려울 듯하다. 남편 백진씨의 근무지가 미국으로 옮겨지면 언제 또 다시 작별을 고하고 떠나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고 내년부터는 학교까지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딸 진아는 초등학교 2학년으로 아직은 엄마의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 여간 괜찮은 작품이 아니고선 그녀 마음을 꺾기 어려울 게 뻔하다.
결혼과 함께 한국을 떠났던 그녀가 5년간의 미국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돌아온 건 3년 전. 당시 귀국 결정은 전문의 자격증을 딴 남편 백진씨가 한국 근무를 희망하면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막상 최수지는 썩 내키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이 싫어서가 아니에요. 5년 동안 미국생활에 적응하느라 무척이나 힘들었거든요. 남편은 군인이고 치과의사지만 미국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일을 할 수 없어요. 어차피 2년 후면 가야 하는데 고국에서 편히 지내다 다시 돌아가기 싫어지면 어쩌나, 그게 가장 두려웠죠. 그런데 요즘엔 그때 결정을 참 잘했단 생각이 들어요. 우리 가족 모두 이렇게까지 행복했던 적이 또 있었나 싶은걸요.”
처음에는 2년 계획으로 한국에 왔다.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최수지는 미국 땅에 있어야 옳다. 하지만 두 번째 결정을 앞둔 시점, 이번엔 딸 진아가 발목을 붙잡았다. 미국에 가기 싫다며 엄마, 아빠를 조른 것. 내성적인 딸 진아는 대구 생활 3년 만에 왈가닥 대구 소녀가 다 됐다. 딸 진아를 위해서도 고국행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남편 백진씨는 현재 아내 최수지가 대학에 합격하자 또다시 한국 파견근무 연장 신청을 해둔 상태. 그녀는 이 모든 기분 좋은 변화가 감사할 따름이다.
화가로 변신한 최수지가 화폭에 즐겨 담는 대상은 ‘꽃’이다. 워낙 꽃을 좋아해 집에도 자주 꽂아두는데 일주일도 안 돼 시들어버리는 것이 늘 안타까웠다. ‘아름다운 꽃을 영원히 간직하자’는 심정으로 꽃을 그린다는 화가 최수지. 그녀의 캔버스 위에 그려진 영원히 시들지 않는 형형색색의 꽃들처럼 그녀의 인생도 늘 활짝 피어 있기를 기대해본다.
글 / 최은영 기자 사진 / 이상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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