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랑/그림 이야기

에곤쉴레

영원한 울트라 2006. 2. 7. 10:19

 

에곤쉴레

<이중자화상>-1915,종이에 구아슈,수채와 연필,32.5x 49.4cm

혜안을 가진 열명을 포함한 천명의 학자가 있습니다.
그들중에는 한명의 천재,한명의 발명가,한명의 창조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식을 가진 사람은 몇천명이나 됩니다.
이 세상에는 셀수없이 많은 훌륭한 사람과 앞으로 훌륭하게 될 사람
들이 있겠지요.그렇지만 나는 나의 훌륭함이 마음에 듭니다."
-에곤 쉴레<페슈카에게 보낸 편지,1910>

<이중자화상>-1915,종이에 구아슈,수채와 연필,32.5x 49.4cm

오스트리아 빈,합스부르크 왕가가 몰락하기 직전 화려함과 불안감
이 뒤섞인 도시를 무대로 에로틱과 육감적인 그림들로 활동했던
화가 에곤 쉴레는 1890년 도나우강변의 툴른에서 태어났다.
에곤 쉴레의 어린 시절은 지극히,어린 시절이라기 보다 그의 주변환
경은 우리가 대체로 알고있는 그 어떤 화가들보다 평범했으며 그를
시련에 빠지게 하고 해하고자 하는 무리는 거의 없었다.

예를 들어 굶주림과 고독,번뇌와 말그대로 자애의 결핍으로
태어남과 동시에 죽기전까지 불행했던 빈센트 반고호에 비하면...
(직업이 화가인 고호는 화가임에도 불구하고 그 살아생전 몇몇의
간단한 스케치를 제외하고는 그의 그림을 사려는 이가 없었다.
그림 한점이 땔감과 빵한조각인 그 당시를 생각하면 그의 굶주림과
그보다 더한 모욕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비참함이었다.)

그림의 소질을 살려 예정이나 된듯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쉴레는
진정 행복한 사람이었다.
'신 예술가'그룹을 이끌며 활동하던 명예,연애에 대한 자유와 방종,
결혼,모든 위상을 쉽게 내려다보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쉴레는 스스로가 쳐 놓은 그물에서 스물여덟이라는 불꽃이
라고 말하기조차 안타까운 그 짧은 생을 마감할때까지 그가 가진
고독과 욕망,솔직하고 대담한 에로틱의 혼란에서 벗어날수 없었다.
자신을 아끼는 것 이상의 나르시시즘적인 자애(自愛)는 쉴레를
늘 혼란에 빠뜨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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