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키예프 출생. P.C.몬드리안, V.칸딘스키와 함께 추상예술의 개척자이다. 처음에는 후기인상파의 영향을 받았으나, 나중에 M.F.라리오노프 및 러시아의 전위파(前衛派) 시인들과 친교를 맺고, 쉬프레마티슴(절대주의)을 주창하였다. 1911년 다이아의 잭’이라는 그룹에 참가하여 러시아의 입체파운동을 추진하였다. 1912년 파리 여행 후 레제풍(風)의 기하학적 추상화를 발표하였으며, 그 이후로는 급속히 자기 방법을 발전시켜, 1912년의 《흰 바탕에 검은 네모꼴》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어 원 ·십자 ·삼각형을 추가하고, 그러한 기본형태에 의한 추상예술을 이론화하여 쉬프레마티슴이라 이름 짓고, 1915년 V.V.마야코프스키와 함께 선언문을 작성하였다.
혁명 직후의 소비에트정부에 의해 모스크바의 국립응용미술학교 교수로 임명되었으나, 1921∼1922년의 미술정책의 반동적 전환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겨졌으며, 자유를 잃은 채 지냈다. 그 동안 1926년에는 독일에 가서 쉬프레마티슴선언을 상세히 설명한 《비구상의 세계 Die gegenstandslose Welt》를 바우하우스를 통해 간행하였다. 이 밖의 작품에 《흰색 위의 흰색 White on White》(1918) 등이 있다.
나뭇꾼 (1912) ]
로봇과 같은 모습의 이 나뭇꾼은 너무나도 유명한 말레비치의 대표작입니다. 그는 스스로 이 작품에 대해서 역동적 구성이라 칭하기도 하였는 데요. 따뜻한 색의 느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날카롭게 떨어진 선과 빛의 각도가 입체주의의 영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소 경건한 분위기가 밀레의 만종을 연상시키기도 하죠.
폭풍 후 마을의 풍경 (1912) ]
다소 산만한 듯 한 빛의 방향과 빨강, 파랑, 흰색의 강렬한 색이 인상적입니다. 지난 밤의 폭풍우가 마을을 눈으로 뒤덮고, 아침 햇살의 강렬한 빛이 마을을 덮은 눈 위에서 반사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시기의 말레비치는 모든 물체를 분해하는 입체주의와 차가운 금속미의 미래주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흰 바탕에 검은 네모꼴 (1912) ]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회화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 처음 전시되었을 때 파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 그림은 러시아정교의 성상과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해요. 그래서 말레비치가 죽은 후 러시아 미술가 연맹에 안치되었을 때 그의 머리 위 벽에 이 그림이 걸렸다고 합니다. 십자가 대신으로 말이죠.
붉은 땅의 수확자 (1913) ]
러시아 민족주의의 감정을 실은 이 작품은 앞의 나뭇꾼과 같은 스타일의 그림이죠. 말레비치는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고향의 농부들의 생활을 단순하고 장엄하게 그려내었습니다. 명암대비와 원색으로 강조된 곡면의 입체감이 앞의 나뭇꾼보다 훨씬 단순화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비행사 (1914) ]
말레비치 특유의 명암대비 인물표현이 엿보이네요. 물고기, 문자, 카드 등 다소 비행사와는 상관없을 듯한 여러가지 물체들을 산만하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입체주의 영향이 남아 있는 듯 하네요.
모스크바의 한 영국인 (1914) ]
나뭇꾼과 흡사하게 그려진 인물을 뒤에 두고 재미있는 물체들이 화폭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단어들, 물고기, 촛불, 총검, 교회, 칼 등이 일관성없이 나열되어 있는 데요, 이는 영국인의 도시에 대한 경험을 묘사한 것이라고 하네요.
날으는 비행기 (1915) ]
당시 러시아는 혁명으로 인해 물질주의 세계관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말레비치의 초기 절대주의 작품인데요, 물질주의적인 제목이 붙어 있네요. 하지만 예술의 효용성만을 따지고, 추상적인 것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만을 추구하는 당시의 사회흐름에 그는 부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나타나게 되는 절대주의 스타일의 그림에는 <절대주의>라고 제목을 붙이죠.
절대주의 No.58 (1916) ]
오페라 <태양에의 승리>의 무대디자인을 하면서 말레비치는 위의 그림과 같은 절대주의 스타일을 활발히 전개시켜 나갔습니다. 대비적인 색채들과 다양한 크기의 물체들을 명확한 공간감을 가지고 배치시키고 있습니다.
절대주의 (1917) ]
절대적 감각의 추구와 새로운 기호의 창조에 자신의 예술세계인 절대주의를 설명한 말레비치는 위의 그림과 같은 스타일을 시리즈로 그려내었습니다. 훗날 이 절대주의 감각은 바우하우스를 통해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전해졌고, 아직까지도 그 감각적 흐름은 현대 디자인의 주류가 되고 있습니다.
노란 옷의 반신상 (1932) ]
그의 초기작품에서 많이 보았던 명암대비의 물체 표현이 약간 보이지만, 그동안 추구해왔던 절대주의 스타일의 그림과는 사뭇 다른 작품입니다. 하지만 감각적인 원색의 대비는 그의 디자인 경향을 느끼게 하고 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집 한 채를 바라보고 있는 외로운 사람의 뒷모습은 고독한 말년의 말레비치 자신을 연상시키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