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랑/그림 이야기

김홍도와 일본의 천재화가 샤라쿠는 동일인물?

영원한 울트라 2006. 5. 6. 10:22
김홍도와 일본의 천재화가 샤라쿠는 동일인물?

김홍도(金弘道, 1745∼1806)는 18세기 후반에 활동한 조선의 대표적인 궁중화가로서 본관은 김해, 호는 단원(檀園)이다. 일반적으로 김홍도는 풍속화를 잘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모든 장르에 걸쳐 탁월한 기량을 발휘한 천재 화가였다.



김홍도가 활동하던 시기, 일본에서는 토슈사이 샤라쿠(東洲齊寫樂), 키타가와 우타마로(喜多川歌麻呂, 1753?-1805), 카츠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齊, 1760-1849) 등 풍속화(우키요에=浮世繪)를 그리는 화가들이 이름을 날렸다. 그 중에서도 샤라쿠(寫樂)는 1794년 5월 어느 날 에도(江戶, 지금의 東京)에 홀연히 나타나 10개월간 140여점의 그림만 남기고 사라졌다. 샤라쿠(寫樂)의 우키요에는 마네, 모네, 드가 등 전기인상파를 비롯해서 고흐의 후기인상파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회화에 크게 영향을 끼친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 화가다. (일례로 고흐가 파리에서 그린 '탕귀영감의 초상화'의 배경이 우키요에로 꽉 채워져 있다. 그 정도로 일본의 우키요에는 당시 유럽 화가들을 매료시켰다.)



샤라쿠(寫樂)의 명성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01년 독일의 유리우스 쿠루트가 쓴 『Sharaku』」에 의해서이다. 유리우스 쿠루트는 이 책에서 "샤라쿠(寫樂)는 렘블란트, 베라스케스와 함께 세계 3대 초상화가의 한 사람"이라고 평가하였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이 샤라쿠(寫樂)가 어디에서 출생하여 누구로부터 그림을 배웠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지금까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샤라쿠(寫樂)에 대한 연구서가 100여권이나 나와 있고, 샤라쿠(寫樂)로 추정되는 사람이 30여명이나 된다. 그 중에서 『만요슈(万葉集)』의 재해석으로 잘 알려진 이영희씨(한일비교문화연구소장)는 샤라쿠(寫樂)와 김홍도가 동일인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영희씨는 샤라쿠(寫樂)와 김홍도가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5년간 연구하여, 그 성과물로  『또 한 사람의 샤라쿠=もうひとりの写楽 』(河出書房新) 라는 책을 내놓고 있다. 이 책에서 이영희씨는 샤라쿠(寫樂)의 정교하고 해학적인 화풍, 붓의 터치, 그림 속 글의 내용 등*1)에서 김홍도가 틀림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김홍도가 연풍현감으로 지내던 무렵(1792-1795), 임금(정조)의 밀명(密命)을 받아 일본의 군사정보 등을 수집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1764년 이후 30년간 통신사의 왕래가 없었고 임진∙정유 왜란을 겪은 조선으로서는 일본의 정황을 파악할 수 있는 정보가 필요했다), 거기에서 활동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풍속화(浮世繪)를 그려 팔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김홍도는 1789년(44세)에 정조의 명에 따라 츠시마(對馬島) 지도를 그려오기도 했던 적도 있다.



 몇 해 전에 샤라쿠와 김홍도의 동일인물 여부에 대해서 KBS TV, 일본의 아사히 TV(1996. 9. 16)에서 다룬 적도 있지만, 아직까지 사실로 확인된 바는 없고, 이영희씨의 추리소설 같은 추측*2)과 가설만 있을 뿐이다.





*1) 그림 속에서 샤라쿠(寫樂)와 김홍도가 동일 인물로 추측하는 몇 가지 특징



(1) 샤라쿠(寫樂)의 그림 중에는 일본어로 해석하기 한시(漢詩)가 있는데, 이것을 이두(吏讀) 식으로 해석해야 뜻이 통하는 경우가 있고, 또 글 속에 자신의 호인 '단원(檀園)'을 가르키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점

(2) 김홍도의 그림 중에는 발가락 6개의 부처가 많은데, 샤라쿠(寫樂)의 부처 그림에도 발가락 6개의 부처가 있다는 점

(3) 샤라쿠(寫樂)와 김홍도의 필선(筆線)의 특징으로 붓 끝이 꺾여 올라간다는 점 등등



*2) 필자는 이영희씨의 추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은 평소 한일고대사에 대한 이영희씨의 해석에는 지나칠 정도로 민족우월적 사관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93∼94년 조선일보에 연재한 <노래하는 역사>와 2000년 <속 노래하는 역사>에서 한・일 고대어 분석을 통해 『만요슈(萬葉集)』는 왜로 건너간 가야계・백제계・고구려계 한민족이 왜에서 벌인 패권다툼을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영희씨는 <노래하는 역사>에서 일본의 39대 천황 천지(天智)는 백제 무왕(武王)의 아들이고, 40대 천황 천무(天武)는 고구려의 제상이자 장군인 연개소문(淵蓋蘇文)이고, 41대 천황 지통(持統)은 천무 천황의 비(妃)이고, 42대 천황 문무(文武)는 신라의 문무왕 ... 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이영희씨의 해석은 추리소설의 소재로서 재미있을 지 몰라도 사실적(史實的) 고증은 부족하다.



■ 위의 그림: 왼쪽부터 이영희『또 한 사람의 샤라쿠=もうひとりの写楽』河出書房新), 김홍도 자화상, 샤라쿠의 대표적 우키요에 스모선수


자료출처: 네이버 nobopark 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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