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ng Hong-Goo: Play with Landscape'
강홍구展
'풍경과 놀다'
그린벨트 시리즈-고사관수도 1999~2000, 디지털 사진 인화, 80×215cm
2006년 6월 9일 ~ 8월 6일 (59일간, 월요일 휴무)
로댕갤러리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 2가 150번지 삼성생명빌딩 1층 (100-716) T.02-2259-7781~2(ARS) F.02-2259-7795
그린벨트 시리즈-세한도 1999~2000, 디지털 사진 인화, 80×222cm
회화, 조각, 설치, 사진, 디자인, 공예 등 미술의 여러 장르를 선보이며 현대 예술에 대해 열린 태도를 지향해 왔던 로댕갤러리가 합성 사진을 이용하여 한국 사회의 디지털 풍경을 조명하는 강홍구의 개인전,『강홍구: 풍경과 놀다』를 6월 9일부터 8월 6일까지 개최한다.
작가 강홍구는 1956년 전라남도 신안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으며, 광주 비엔날레 등 다수의 전시와 개인전을 가졌고, <미술관 밖에서 만나는 미술 이야기>등 미술 관련 대중서적을 집필 한 바 있다. 몇 년간의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정리하고 화가를 꿈꾸며 미술대학에 진학한 강홍구는 처음에는 회화를 전공했지만 곧 광고나 영화 스틸 이미지를 활용한 합성 사진으로 자신만의 작업 방향을 찾기 시작하였다. 스스로를 천재 작가인 A급이 아니라 한급 떨어지는 B급 작가로 자처하면서 대중매체에서 빌어온 이미지를 가지고 초현실적인 합성 사진을 만들었다. 손으로 그리는 수공적인 회화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들을 활용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작가는 기계로 인화지를 출력해서 벽에 꽂는 전시방식을 택함으로써 컴퓨터 사진의 가볍고 일회적인 특성을 강조해왔다. 초고속 근대화를 이룬 한국사회의 특수한 현실을 직접 겪은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합쳐서 이 사진들은 작가의 첫 사진전 제목처럼 ‘위치, 속물, 가짜’를 탐구하는 연작을 이루었다.
제도와 현실의 무게에 눌려서 고민하면서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는 작가의 이번 전시는 90년대를 지나 계속되는 강홍구의 풍경연작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서 <그린벨트>나 <드라마 세트>같은 인공적인 환경에서부터, 재건축을 앞두고 눈앞에서 사라지는 강북의 폐허까지 작가가 디지털 카메라로 ‘만들어 낸’ 다양한 사진을 볼 수 있다. 작가 작업실 주변의 재건축 철거 가구에서 주은 게임 캐릭터 인형으로 연출한 폐허의 장면을 천하를 들썩이게 하는 수련자의 무공으로 비약시키는 강홍구의 사진은 세상의 변화나 제도의 견고함에도 불구하고 돈키호테다운 여정을 계속해 온 작가의 내공을 보여 준다.
10여 년에 걸친 강홍구의 디지털 사진의 탐구 결과인 이번 전시는 B급 작가가 결국은 A급이 된다는 속설의 또 다른 예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B급 작가가 찍은 디지털 풍경을 보여 주는 이번 전시가 기존의 미술에 대한 저항이 미술사와 제도 안에 통합되는 예정된 수순이라기보다 성실한 B급 작가가 지나쳐온 풍경을 가감없이 보여 주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현대 미술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미술관 밖에서 만나는 미술 이야기>, <시시한 것들의 아름다움>등의 미술관련 저서를 집필해 온 작가의 독특한 경력은 작품으로 뿐 아니라 글로도 이야기를 풀 수 있는 작가의 능력을 보여 준다. 기존 저서 외에 전시 중에 발간될 <디카들고 어슬렁>은 작가의 전반적인 작품 세계와 전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미키네 집-구름 2005~2006, 디지털 사진 인화, 100×250cm
이번 전시는 90년대 중반부터 작가가 보고 느낀 시간과 기억, 역사가 얽힌 매끄럽지 않은 한국사회의 현실을 디지털 사진의 왜곡을 통해서 일그러진 채로 보여 준다. 초기의 작업 일부부터 최근까지 전개된 작품들의 흐름을 알 수 있도록 시간 순으로 배치하여 작가의 작품세계를 전반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초기작을 이루는 스캐너 합성사진에서 가부장제의 억압아래 괴물이 출몰하는 가정(행복한 우리 집), 분단상황에 대한 공포가 일상에서 드러나는 장면 등은(전쟁공포)은 갑작스럽게 피어난 경제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은 불안과 갈등을 드러내 보여 주고있다. 한편 작가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영화스틸 시리즈들은 노골적으로 폭력과 섹스를 남용하는 영화 속 주인공으로 자신을 연출하며 나르시시즘과 자기연민이 얽힌 드라마를 보여 주고 있다. 심각하고 엄숙하여야 할 미술은 싸구려 장르영화와 상업광고의 상투적인 장면으로 변환되고, 그 속에서 감독이자 주연인 작가는 고민과 절망들을 조잡하게 위조한 사진으로 삐딱하게 선보여 웃음거리로 만든다.(나는 누구인가) 창의적이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거칠게 만든 합성사진 이미지들은 실상 세련되고 고상하지 못한 우리 현실을 그럴듯하게 재현하여 보여 주고 있다. 스캐너로 여러 이질적인 요소를 결합한 초현실적인 몽타지풍의 연출 방식은 디지털 카메라를 손에 넣은 시점에서 점차 작가가 직접 촬영한 한국 사회의 풍경과 결합하며 현실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디지털 풍경사진으로 바뀌어 갔다. 그러나 이는 현실의 부조리함이 작가가 연출한 부조리함보다 더 크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변화이기도 하다.
디지털 카메라가 갓 상품화되어 대중에게 소개되던 시절, 부족한 용량 때문에 여러 사진을 이어 붙여서 만든 풍경들은 좌우로 긴 파노라마를 이룬다. 그러나 이 풍경들은 넓은 시야를 일관되게 포착하여 현실을 충실하게 재현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일그러진 풍광들을 조각조각 이어 붙인 조합들이다. 작가가 이야기한 것처럼 전근대를 배경으로 시작해서 한 세대를 지나기도 전에 곧바로 정보화 사회로 진입한 한국에는 건너뛴 시간과 공간을 반영하는 다양한 모순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강홍구의 디지털 사진에서 보이는 풍경들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진화된 인류가 지배하는 미래사회가 아니라 파시즘적 군사문화와 집단이기주의 같은 근대화 과정의 잔재들이 가라앉은 풍경들이다. 압축성장의 와중에서 자본주의와 상업화로 왜곡되고 삐뚤어진 현실은 보이는 대로 찍는 것이 아니라 파편들을 이어 붙여 위조한 사진에서 더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는 것이다.
수련자-우탁천근 2005~2006, 디지털 사진 인화, 100×220cm
일관되고 매끈한 표면을 유지하지 못하는 현실의 파편들을 조합한 디지털 사진은 현실의 모순을 그대로 보여 주는 가장 적절한 방식이 될 수 있다. 서울 근교 개발제한구역인 그린벨트의 풍경을 찍은 사진들은 도심 속에 남은 마지막 자연의 보루라기보다 갑작스러운 개발열풍 속에서 뒤쳐진 쇠락과 노후의 흔적들을 보여 준다. 촌락을 중심으로 한 농경사회는 도시화의 필연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무너졌고 그 과정에 남은 잔재들은 녹색의 이상향이 아니라 회색조의 우울한 풍경을 만든다.(그린벨트)
가짜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의 풍광 속에서 "진짜 가짜"인 드라마 세트는 역사와 맥락을 무시하고 세워져 실체없이 허울만 존재하는 배경막으로서 현실을 일깨워 준다. 현실과 가상이 뒤섞인 드라마 촬영 세트 위에 오려 붙인 인물들이 이루는 풍경은 일제시대부터 현재까지가 한 공간에 담겨 있는 가짜 풍경의 허구성을 돋보이게 한다.(드라마세트)
김포공항 근처 소음피해 보상지역이자 주민 이주 후 폐허가 된 지역인 오쇠리에서 찍은 사진에서는 경제개발의 희생양이 된 도시 근교에서 작가가 느낀 무력감이 절실하게 드러난다. 사람들은 떠나고 쓰레기와 텃밭만 남은 동네의 지금도 진행 중인 비참한 사연을 알지 못해도, 색감를 조절하여 일부러 부조화하게 만든 풍경은 유령마을 특유의 음산함과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과거의 유령들을 느끼게 한다. 도시의 고층건물과 고속도로 밑에 숨은 어두운 그림자처럼 오쇠리의 황량한 풍경은 우리 사회의 발전상을 위해 버린 것이 무엇인지 보여 준다. (오쇠리 풍경)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이르러도 우리의 주변을 이루는 환경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작가가 살고 있는 불광동 재개발 지역의 풍경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집은 더 이상 사람이 사는 주거 공간이 아니라 투기와 유랑의 장소가 되었으며 북한산 자락을 끼고 옹기종기 모여있던 집들이 재개발을 위해 허물어진 풍경은 자연과 인공이 맞닥뜨리는 초현실주의적인 전쟁터가 된다. 산등성이를 따라 언덕을 파고들며 세워졌던 자그마한 집들이 다 허물어진 후에는 자연친화적인 환경과 참살이를 광고하며 하늘을 가리는 아파트들이 들어설 것이다. (미키네 집, 수련자)
마지막으로 전시장을 나서기 전에 관람객이 직접 풍경 속에 들어가서 놀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기존의 주택을 허물고 난 빈터를 찍은 사진 위에 집을 그려 넣는 관객 참여프로그램으로 관객들은 불광동의 폐허에 새로 집을 세우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텅 빈 공허 위에 새로 희망을 쌓는 사람들의 참여는 앞으로 더 나은 세상을 기대하는 작가의 비전을 관객이 채워 나가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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