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랑/그림 이야기

아들을 잡아 먹는 광기

영원한 울트라 2006. 6. 18. 10:47

만년의 고야에게는 검은 그림의 시기가 있었다.
그의 작품 인생에서 중요한 무게가 실려 결정적인 종지부를 찍은 시기였다 할 수 있다. 장식적으로 치장한 작품보다 인간의 어두운면을 부각하여 그 근본이 지닌 본성을 과감하게 드러냈던 고야였다.

작품의 제목은 "Satern"
얼핏 본다 해도 호러 영화에나 나올법한 장면이다. 검은 어둠 속에서 괴물 한 마리가 우적우적 사람을 잡아먹는 그림. 어쩌면 목젖을 넘기는 뼈마디 마디가 부서지고, 살점이 뜯어 먹히는 소리가 들리는듯하여 더욱 기분 나쁘고 소름끼치게 한다.
고야는 왜 이러한 그림을 그리게 되었을까. 또 고야의 계몽주의에서 이 작품은 어떤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을까.

서양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있어 많은 부분들이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를 배경으로 전개되고 있다. 따라서 이 고야의 작품도 신화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가 발생된 것이 그 유명한 트로이 전쟁이었다면 로마는 그리스를 모체로 하는 신흥 문화였다. 그들 사상의 근본이 그리스의 헬레니즘 문화인만큼 로마 문화의 초석은 그리스의 신화와 같이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로마인들은 폭력적이고 대담하며 용감하였다. 하지만 그렇게 자긍심이 강한 그들에게 이들이 섬기는 신의 형태란 그리스에 비하여 시시하고 볼품없는 영(靈)인 '누멘(Numen)- 사물이나 장소에 내재하는 신령'에 불과하였고 구체적으로 인격화 되어 나타나는 인격신(人格神)을 섬겼던 그리스의 신화를 접목하는 것은 어쩌면 중요한 문제였기도 하였다.
혹자는 로마의 발생이 트로이에서 살아남은 일족인 아이네이아스가 세운 나라라고도하고, 또 혹자는 한니발의 포에니 전쟁에서부터 강성한 국가가 되었다고도 한다.
어찌되었건 이러한 시도는 매우 성공적이었고 오늘날 우리들이 ‘신화’를 들먹인다면 항상 그리스와 로마를 일컫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중 가장 어렵게 완성된 것이 바로 그리스의 새트루누스(Saturnus) 신화였다.
새트루누스(Saturnus)는 곧 새턴(Saturn)이라 불리우는데 당시 그리스의 이 새턴신과 접목할 대상이 같은 농업의 신인 로마의 크로누스(Cronus)였던 것이다. 크로누스는 그리스어 크로노스(Cronos-시간)와 유사하기 때문에 이후에 시간의 신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구차하고 우선 이 새턴에 대하여 좀 더 알아보자.

새트루누스는 아버지 우라노스(Uranos)를 거세하여 왕좌에서 몰아내고 신들의 왕이 된 2대 천신(天神)이다. 우라노스와 가이아(Gaia) 사이의 자식으로 티탄 12신의 막내였던 것이다.
그뒤 새트루누스는 누이인 레아(Rhea)를 아내로 맞아 헤스티아·데메테르·헤라·하데스·포세이돈을 낳았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이 왕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가이아(Gaia-대지의 여신)’의 예언때문에 이들을 모두 삼켜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쥬피터가 태어나자 아내 레아는 쥬피터를 크레타에 숨기고 남편을 속여 대신 돌을 먹게 한다. 이후 성장한 쥬피터(Jupiter=Zeus)는 예언과 같이 전쟁에서 승리하여 새트루누스를 타르타로스에 보내게 되고 이후 새트루누스는 황금시대(Gold Age)의 왕이 되었다는 신화이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있는 토요일(Saturday)은 이 새트루누스(=새턴 Saturn)를 기념하기 위한것이었고 12월 중순에는 1주일간에 걸쳐서 열렸던 '사투르날리아 Saturnalia(농업제)'는 크리스마스의 기원이 되었다 한다.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 보자.
고야는 세상의 어두운 면을 그리고자 한 작가이다. 그리고 그  반작용은 우리에게 무게 있는 의미를 던져준다. 그림은 암흑에 휩싸여 있고, 어쩌면 어둠 속 저 너머 어딘가에 있을 세상의 한 단면 속에 웅크리고 있을 우리네 삶 자체가 암흑 속은 아닐까.
그가 검은색의 시기를 지나는 것은 그런 고야에게 당연한 귀결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그 어둠 속 한켠에서 못할 짓하다 들켜버린 표정의 한 사람은 어쩌면 나의 모습이거나 내 이웃의 이웃을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

신화에서는 새트루누스가 아들을 삼켜버렸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고야의 그림에서는 육신이  잘려나간 잔혹한 광경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새트루누스 역시 그 찬란한 황금의 시대를 연 영웅적인 신이라고는 전혀 생각되어지지 않는다.
다만 그림 속에선 광기에 미쳐버린 괴물일 따름이다.
자신의 안위와 사리사욕을 채우고 그것을 지켜나가기 위해 돌아오지 못할 먼 강을 건너버린 악귀.
자신의 자식을 잡아먹으면서까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이며 무엇이 사람을 변하게 하는지, 얻은 것은 무엇이며 또 취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성을 잃어버리고 분노와 공포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가련한 아집에서 흘러나오는 광기.


고야는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과 배워야 할 것을 잘 포장된 화려함이나 가식적인 세련됨이 아니라 거칠고 투박하며 사실적인 직설로 우리에게 고하고 있음을 알아야겠다.
그리고
20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세계는 여전히 암흑과 같음은 변함없지 않은가.

 

출처:howcolo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