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블록버스터 전시 누가 기획했나 | ||||||||
2006 11/20 뉴스메이커 701호 | ||||||||
이번 ‘루브르박물관전’과 같이 교과서에서나 보던 해외 유명 작가의 진품을 국내 전시를 통해 보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2000년 10월 26일부터 이듬해 2월 27일까지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프랑스 오르셰미술관 한국전’이 처음이다. 이후 ‘밀레의 여정전’(2002년 12월 24일~2003년 3월 30일), ‘렘브란트와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전’(2003년 8월 14일~11월 9일) ‘샤갈전’(2004년 7월 15일~10월 25일) ‘서양미술 400년전’(2004년 12월 21일~2005년 4월3일), ‘마티스와 야수파전’(2005년 12월 3일~2006년 3월 5일), ‘피카소전’(2006년 5월 20일~9월 3일) 등이 잇따랐다. 관람객의 반응도 뜨거웠다.
지엔씨미디어 홍성일 대표 “경제학 공부하러 프랑스 갔다가 그림에 매료” 홍 대표는 미술 전공자가 아니다. 미술과는 거리가 먼 경제학 공부를 위해 1983년 프랑스로 건너갔고, 93년 프랑스 국립 파리 5 대학교에서 국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유학 시절 시간 나는 틈틈이 루브르, 오르셰, 랭스, 쉘부르 등 세계적인 미술관을 찾아 명작의 향기에 빠져 지낸 게 오늘날 그를 있게 했다. “10년 간 프랑스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취미 삼아 미술관을 자주 다녔어요. 하지만 그때만 해도 제가 미술 관련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치 못했죠. 공부를 마치면 귀국해 경제학 교수가 되려고 했거든요.” 계획과 달리 그는 92년 귀국 후 얼마 안 돼 ‘임프리마코리아’라는 회사를 차렸다. 국내 서적에 대한 해외 수출 및 해외 서적의 국내 저작권을 관리하는 회사다. 방대한 서적을 접할 수 있던 프랑스와 달리 국내 서점에서 만날 수 있는 책은 많지 않다는 사실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 일이 확장돼 96년에는 전 세계 미술 및 사진작가의 저작권을 국내에서 관리하고 한국 작가의 권익 보호와 작품을 세계에 알리는 일까지 했다. “미술 저작권 일을 하면서 의구심이 들었어요. 가까운 일본만 해도 오르셰, 루브르 등 유명한 해외 미술관의 작품을 자국민에게 보여주는 대규모 전시가 자주 열리는데 우리는 왜 그런 전시가 열리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었죠. 리스크가 커 투자에 대한 확신을 가진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누군가는 나서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97년부터 오르셰미술관 한국전을 준비한 겁니다.” 모든 사람이 ‘망할 것’이라고 만류했으나 홍 대표는 성공을 확신했다. 무엇보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작품을 망라한 오르셰미술관에는 밀레의 ‘만종’이나 ‘이삭줍기’등 한국인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이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오르셰미술관장이자 지금은 루브르박물관장인 앙리 루아레트는 그가 유학시절 친분을 나눴던 사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IMF 환란이다. “전시가 무산될 수 있는 위기였어요. IMF 경제위기는 오르셰미술관이 한국에 작품을 주지 않겠다고 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니까요. 하지만 오르셰는 저를 끝까지 믿어줬어요. 뿐만 아니라 작품 대여에 따른 모든 지불을 전시 직전에 하는 걸로 배려해줬어요. 덕분에 위기를 극복하고 2000년 성황리에 전시를 열 수 있었죠.” ‘오르셰미술관 한국전’은 당시 30만 명의 관람객이 들었다. 국내 전시 관람객이 10만 명을 넘어선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기록적인 사건이다. 잇따라 그가 탄생시킨 ‘밀레의 여정전’은 28만 명, ‘서양미술 400년전’은 45만 명을 기록했다. 그동안 그가 기획한 전시에 출품된 작품은 모두 프랑스 국공립미술관 소장품이다. 그는 이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피력한다. 국공립미술관이 소장한 작품이야말로 명품 중 명품이라는 설명이다. 차기 전시는 내년 4월 예술의전당에서 밀레의 ‘만종’과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 고흐의 ‘아를르의 방’ 등 70여 점이 전시되는 또 한 번의‘오르셰미술관전’. 이 외에도 2008년 ‘프랑스 국립 현대미술관전’ 등 2010년까지 전시 계획이 이미 짜여 있다. “미술이야말로 가장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고급예술”이라고 말하는 홍 대표는 “보다 많은 대중이 미술의 향취를 느낄 수 있도록 공공미술관의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제규모에 비해 우리나라는 여전히 볼 만한 전시가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에요. 한정된 예산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긴 하겠지만 예술의전당을 비롯한 공공미술관이 한해 클래식을 포함한 공연 쪽에 쓰는 예산과 미술전시에 쓰는 예산을 비교해보면 미술전시가 얼마나 소외받고 있는지 알 수 있어요. 단순 비교하기는 뭣 하지만,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는 클래식 음악회는 일주일간 공연한다고 할 때 최대 관객 2만 명 수준이에요. 그러나 전시는 한 번 하면 최소 20만 명 이상이 보게 되죠. 클래식이 소수의 인원이 널찍한 땅에서 누릴 수 있는 골프라면 미술전시회는 공 하나 가지고 20여 명이 넓지 않은 공간에서 즐길 수 있는 축구에 비교할 수 있어요.” 미술평론가 서순주씨 “전시테마 잡히면 치열한 조사·섭외 시작해요” 그의 첫 블록버스터 전시는 60만 명이 관람해 역대 최다 관람 기록을 세운 2004년 ‘샤갈전’. 이듬해 ‘마티스와 야수파전’, 올해 ‘피카소전’도 그가 기획한 블록버스터 전시다. 그는 전시 테마가 결정되면 그에 맞춰 외국의 국공립미술관, 사립미술관, 화랑을 샅샅이 뒤진다. 그 결과 전시된 작품 중에는 개인소장품도 적잖기 때문에 일반인이 접할 수 없는 작품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특정 작가를 전시의 테마로 삼으면 그 작가의 작품이 어디에 있는지 조사해 섭외를 시작해요. 유명 작품은 보통 수년 전부터 대여 예약이 돼 있어 작품을 가져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경쟁이 치열해요. 때문에 발로 뛰어다니며 일일이 설득을 해야 해요. 다행히 오랜 기간 외국생활을 하고 외국의 미술계에 몸담고 있던 것이 그들을 설득시키는 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시가 어떤 테마를 갖고 있고, 어떻게 구성되느냐에요.” 몇 차례에 걸쳐 연 전시회마다 적잖은 난관에 부딪쳤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올 여름 개최된 ‘피카소전’을 준비하면서 겪은 일이다. 하마터면 작품 가격만 500억 원인 명작 ‘솔레르씨의 가족’이 전시회에 못 올 뻔했기 때문이다. “솔레르씨의 가족은 피카소의 청색시대 걸작이에요. 이 작품은 벨기에 리에쥬 근대미술관 소장품인데 제가 기획한 피카소전에 빌려주기로 약속이 돼 있었어요. 그런데 전시를 4개월 앞두고 갑자기 빌려줄 수 없다고 통보해 왔어요. 부리나케 달려가 언론 보도를 통해 한국인은 이 작품이 전시 내용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작품을 꼭 빌려줘야만 한다고 설득했어요. 신뢰가 무너져선 안 된다고요. 그러자 리에쥬시장을 만나보라고 하더군요. 시장을 만나 결국 협상에 성공했어요.” 그는 원래 미술작품은 작품대여료를 따로 지불하지 않고 무료로 빌려주는 게 관례였으나 최근 몇 년 사이 환경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우리보다 전시문화면에서 30년 앞선 일본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10년 전부터 일본이 경쟁적으로 해외 유명 작가의 걸작을 기획, 전시하면서 외국 미술관에 물질적 보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영향으로 문화교류 차원에서 무료로 작품을 빌려주던 관습이 점차 줄고 있는 상황이다. “샤갈전을 할 때만 해도 100여 점에 달하는 거의 모든 작품을 무료로 빌려왔어요. 하지만 요즘은 그 비율이 점차 줄고 있죠. 그래도 일본은 도쿄만 해도 1년에 수십 종류의 대형 전시가 열린다는 점에서 부러워요. 그들은 수익을 목적으로 전시를 하는 게 아니에요. 대부분 방송사나 신문사가 공익과 자사 이미지 제고를 위해 돈을 써가며 좋은 전시를 유치하려고 노력하죠.” 그는 국내에서 더 많은 양질의 전시가 열리려면 국제 전시를 유치할 수 있는 미술관 확보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시립미술관, 예술의전당, 국립중앙박물관, 덕수궁현대미술관 외에는 국제 규모의 전시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국제 규모의 전시를 하려면 그림 보존을 위해 온도와 습도가 잘 유지되고 완벽한 보안이 이루어지며 그림을 저장하고 관리할 수 있는 수장고 기능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어야 한다. 큐슈에서 삿포로까지 각 지방마다 미술관이 있고, 소장품도 많은 일본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좋은 전시를 자주 접하면서 대중의 문화적 소양과 수준도 높아지는 거예요. 동시에 저변도 확대되죠. 안타까운 점은 우리나라 대다수 국공립 미술관이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점이에요. 국가나 시에 종속돼 있다보니 사고도 고착돼 있죠. 미술관은 특수한 목적을 지닌 공공 문화시설로 그에 맞는 운영과 지원을 뒷받침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거든요. 유럽에서는 큐레이터로 미술관에 들어가면 평생 그곳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고 관장도 30년 간 바뀌지 않는 경우가 상당수예요. 그만큼 책임감을 가질 수 있어요. 국제 전시는 보통 수년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처럼 자주 사람을 바꾸면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없어요.” “좋은 전시는 책상에 앉아 이메일을 보내는 것으론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하는 서순주씨. 그는 내년엔 수년 전부터 준비한 ‘모네전’을 한국 관객에게 선보인다. <글/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사진/김세구 기자 k39@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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