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청장 “매입해 문화재 지정 추진하겠다”
-
박수근의 ‘아틀리에’가 국밥과 호프집으로 사용되면서 방치되고 있다.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 393-16. 큰 길가에 자리한 단층 구옥(舊屋). 양철 지붕 아래로 목재가 듬성듬성 보여, 예전에는 한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집 벽체에는 언제 칠했는지도 모를 페인트가 색 바랜 채 남아 있다. 집 가운데로 시멘트벽을 친 뒤 한 편은 국밥집으로, 다른 한 편은 호프집으로 영업 중이다. 가게 실평수는 각 4평 남짓. 가게 주인들은 알고 있었다. “박수근씨가 살던 곳이라지요. 15년전 제가 처음 올 때만 해도 한옥이었는데 비만 오면 지붕이 새서 기와를 걷고 양철을 덮은 뒤 내부를 수리했어요. 그림 한 점이라도 나올까봐 눈에 쌍심지를 켰는데, 붓 한 자루 나오지 않더군요.” (유희문 국밥집 주인·54)
지난 22일 가게 앞에서 만난 박씨의 유족인 장녀 인숙(62)씨와 장남 성남(59)씨도 “이곳이 아버지가 자기 이름으로 소유한 첫 집이자, 화실이었다”고 했다. “1·4 후퇴 즈음 고향(강원도 양구)에서 월남했던 아버지가 용산 미군부대 PX에서 그림 그리시며 모은 돈으로 1952년에 샀던 집입니다. 1963년 11월 동대문구 전농동 477번지로 이사하기 전까지 살았죠.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뛰어논다고 생각하니 집 용마루를 멀찍이서 보아도 행복하다’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인숙·성남씨)
인숙씨와 성남씨는 “미군들에게 그림이라도 한 점 팔리면 온 동네에 소문이 났다”며 아버지를 회상했다. “아버지는 돈벌이를 못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이 집 저 집에서 쌀을 빌려서 먹고 살았죠. 6년 전 돌아간 셋째 성민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입니다. 선생님이 물으셨대요. ‘너희 집은 뭘로 먹고 사니.’ 성민이는 ‘꿔다 먹고 살아요’ 했답니다. 어머니가 쌀 꾸러 다니는 모습만 보고 자란 성민이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겠죠.”
- ▲박수근 화백의 작품은 도화지 한 장 크기도 안되는 그림 한 점이 10억원을 넘을 정도지만, 그의 숨결이 남은 유일한 공간은 국밥집과 호프집으로 변한 상태다. 작가의 고택이자 화실이었던 창신동 393-16의 현재 모습이다. /오종찬 객원기자 ojc1979@chosun.com
-
유족은 “그래도 이 집에서 행복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하모니카로 ‘뻐꾸기 왈츠’를 불면 어머니가 노래를 하셨어요.”
명확한 기록을 얻기 위해 종로구청과 창신1동사무소를 찾았다. 1962년 이전의 ‘동적부(洞籍簿)’가 동사무소에 남았는데, 주소지는 ‘창신동 393-16’이 아니라, ‘창신동 393-1, 9통 4반’으로 돼 있었다. 유족과 동사무소측은 “주소지 변경이 그간 있었다”고 했다. 동적부 직업란에도 ‘화가’가 아니라 ‘상업’으로 적혀 있었다. 유족은 “당시 자신의 직업을 ‘화가’라고 밝힐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됐겠느냐”고 되물었다.
미술품을 ‘시장 원리’로만 본다면 2006년은 박수근(朴壽根·1914~1965)의 해였다. 지난 2월, 그의 그림 ‘시장의 여인들’이 회화작품 경매 사상 최고가인 9억1000만원에 팔린 데 이어, 12월 13일 경매에서도 역시 그의 작품 ‘노상(路上· 가로 세로 30×13㎝)이 10억4000만원에 낙찰돼 회화작품 최고가를 경신했다. 그러나 정작 보존돼야 할 그의 자취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가고 있다.
‘박수근 화실(고택) 보존 운동’을 펴고 있는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작가의 그림 한 점이 10억원에 팔리는데, 그를 기릴 수 있는 유일한 공간 하나 보존할 수 없다면 문화국가로서 수치”라고 했다. 박수근 고택은 18평 남짓. 근처 부동산중개소에 문의한 결과 “평당 4000만원 정도니까 8억원이면 살 수 있다”고 했다.
유홍준 문화재청장도 25일 “박수근선생 고택은 우리 근·현대 미술사의 한 획을 영원히 장식할 공간으로 반드시 보존해야 한다”며 “서울시와 협의해서 매입은 물론 근대문화재나 서울시 유형문화재 등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다.
'미술사랑 > ART 뉴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경민의 미술품투자 노하우 10선 (0) | 2007.01.10 |
---|---|
국새 확정 (0) | 2006.12.28 |
국립미술관 ‘올해의 작가’ 정연두씨 30代론 첫선정 (0) | 2006.12.19 |
2006년 미술계 빅뉴스 결산 (0) | 2006.12.19 |
미술시장 '파이' 커지고, 공공미술 '새싹' 트고 (0) | 2006.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