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삶의등대▲

빈손(空手)의 미학

영원한 울트라 2007. 9. 27. 12:45
빈손(空手)의 미학
1.
아름다운 삶을 위한 ‘삶의 미학’에는 어떤 법칙이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 찌꺼기를 남기지 않는 삶, 남김없이 살다가는 완전연소의 삶이 최고의 삶이고 아름다운 삶이다. 바꾸어 말하면 찌꺼기를 많이 남길수록 잘 사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소풍을 가도 그렇다. 놀다간 자리에 ‘쓰레기’를 남기지 않아야 한다. 인생살이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살다가는 세상에 쓰레기를 남기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이것이 삶의 미학, 그 기본법칙이다.

그러나 우리는 ‘남기지 않는 인생’이 아니라 ‘남기는 인생’을 살려고 발버둥 친다. 남아도 보통 남는 정도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사업을 해도 그렇고 장사를 해도 그렇고 공부를 해도 그렇다. 적은 돈으로 떼돈을 벌고 노력은 적게 하고 성과는 엄청나게 큰 것을 거두려한다.

이제는 너도나도 ‘대박’이 아니면 눈에 차질 않는다. 대박이라는 단어가 일상 언어가 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도둑이 되어가고 있다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2.
재물이든 지식과 기술이든 많이 갖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많이 갖는 것만으로 인생의 성공을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가령 음식을 먹어도 그렇다. 다 먹지도 못할 음식을 잔뜩 퍼 담아서 먹지 못한 채 버리면 그것이 쓰레기가 되어 세상을 오염시킨다. 더구나 잔뜩 먹고서 먹은 값을 못하고 무위도식이나 한다면 먹은 것은 죄다 인생의 쓰레기가 된다.

재물이나 지식기술도 마찬가지다. 갖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세상과 사람에게서 거두어들인 재물은 세상과 사람을 위해서 쓰고 가야 한다. 또 세상에서 얻은 지식과 기술들은 아낌없이 남김없이 전하고 돌려주고 가야 한다. 그것이 인생의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것이다. 인생이 사는 길이다. 그것이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의 법도다.

그렇지 않고 그 많은 재물을 갖고 일신의 쾌락을 쫓는데 탕진하고 제 자식에게 남기기 위해서 탈법과 불법을 마다한다면 제 길을 잃은 재물들은 모두 쓰레기가 된다. 그렇게 세상에 쓰레기를 남긴 인생은 그 자체가 세상의 쓰레기가 되어갈 것이다.

지식과 기술도 마찬가지다. 세상에서 배운 지식과 기술을 자기 것으로 오로지 하면서 끌어안고 죽어간다면, 제대로 쓰지 못한 지식과 기술은 쓰레기가 될 것이고 그 인생 또한 그럴 것이다.

3.
불교에서 업(業)이라는 용어를 자주 슨다. 그것은 다른 의미가 아니다. 인생의 쓰레기, 삶으로 연소되지 않은 쓰레기들이란 의미다. 미쳐 인생에서 정리하지 못한 것들이 다 죄업이다. 그러니 가지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들, 바로 쓰지 못하는 것들이 다 업이다.

세상이 혼탁한 것 다른 이유가 있는가? 가진 것은 많은데 가진 값을 못하기 때문이다. 권력을 쥔 인간이 권력의 크기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치는 타락한다. 부자가 재물의 크기를 감당할 인간이 못되기에 경제는 타락한다. 존경받는 부자가 되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리고 지식인과 기술자들이 그 지식과 기술을 가질만한 사람됨됨이가 못되기에 학문과 과학이 타락한다.

가진 것은 많은데 가진 값을 못하기 때문에 권력의 잉여, 재물의 잉여, 지식기술의 잉여가 생기고 이 모든 것들이 세상의 쓰레기가 되어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이다. 우리가 남기고자 발버둥친 그 모든 것들, 그러나 사람과 세상에 돌려주지 않은 재물도 지식도 기술도 다 업이고 쓰레기가 된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잘 살았느냐 잘못 살았느냐의 가치판단은 ‘남김(=잉여)’에 달려있다. 남김(=잉여) 없이 살았다면 정말 잘 산 것이다. 그리고 남긴 것이 많다면, 쓰레기를 많이 남기고 갈수록 잘 사는 것과는 멀어질 것이다.

정말 아름다운 삶이란 것, 멋지게 살다가는 것은 어떤 찌꺼기도 남기지 않는 무잉여(無剩餘)의 삶일 것이다. 반면에 남기려고 발버둥 칠수록 삶은 조잡하고 추악해질 수밖에 없다.

누구나 빈손(空手)으로 가지만 그에 맞게 산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게 산 사람이 있다. 남김없이 살았다면 빈손이 되어 있을 것이고 남기고 살았다면 빈손이 아닌 채 잔뜩 움켜쥐고 죽어갈 것이다.
--배영순/영남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