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의 이름 론
사람이 사람값을 하려면 얼굴값과 이름값을 해야 한다. 먼저 얼굴값이다. 사람은 생긴 대로 노는가? 아니면 노는 대로 생기는가? 다산 정약용 선생은 〈상론(相論)〉이란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부하는 학생은 그 상이 어여쁘다. 장사치는 상이 시커멓다. 목동은 상이 지저분하다. 노름꾼은 상이 사납고 약삭빠르다. 대개 익힌 것이 오랠수록 성품 또한 옮겨간다. 속으로 마음을 쏟는 것이 겉으로 드러나 상도 이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상이 변한 것을 보고, “상이 이러니 하는 짓이 저렇지.”라고 말한다. 아! 이것은 잘못이다.
결국 사람은 생긴 대로 노는 것이 아니라 노는 대로 생긴다는 말씀이다. 얼굴은 자꾸 변한다. 품은 생각이 표정 속에 깃든다. 사람이 나이 들면서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는 까닭이다.
다음은 이름값이다. 대개 이름 속에는 그 사람에 대한 부모의 바람이 담겨 있다. 사람은 제 이름을 아름답게 지켜 조상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고 제 이름값을 해야 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명실상부(名實相符)해야 한다. 이름과 실지가 따로 놀면 안 된다. 실지가 훌륭한데 이름이 없는 것도 민망하지만, 실지는 없이 이름만 높은 것은 위험천만하다. 《논어》에서는 “소문이 실제보다 지나친 것을 군자가 부끄러워한다. (聲聞過情, 君子恥之)”고 했다. 이름만 크게 났지 이름에 걸맞은 실정이 없다면 의당 부끄러워해야 옳다. 하지만 세상은 실정은 살피지 않고 드러난 이름만 중히 여긴다. 이틈을 타고 가짜가 득세해서, 학력을 속이고 학위마저 속여서 슬그머니 남의 지위를 도둑질한다. 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남긴 이름이 얼마 못 가 들통 나고 말 허명(虛名)이면 얼마나 슬픈 노릇인가?
사람이 사람값을 하려면 얼굴값과 이름값을 해야 한다. 노는 대로 달라지는 얼굴에 책임을 지려면 함부로 놀면 안 되고 제대로 놀아야 한다. 멋대로 놀아서 안 되고 가려서 놀아야 한다. 조상의 이름에 먹칠하는 일이 없도록 제 이름을 소중히 지켜야 한다. 변한 얼굴은 돌아오기 힘들고, 더럽혀진 이름은 회복되지 않는다.
출처: 정민 교수의 옛사람의 이름 론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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