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삶의등대▲

영웅부모

영원한 울트라 2007. 9. 27. 14:30
최근 발표된 한 조사결과는 우리를 놀라게 한다. 미국 AP통신과 MTV가 13∼24세의 미국 젊은이 1280명을 대상으로 행복에 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73%가 부모와의 관계에서 행복을 느낀다고 답했으며, 절반 이상이 자기 부모를 최고의 영웅으로 꼽았다는 것이다.

행복의 조건이 돈이나 명예보다 가족관계라는 대답도 ‘미국은 개인주의 사회’라는 우리의 일반적인 이미지와 맞지 않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은 자신의 부모를 영웅시하는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이다. 영웅의 의미가 퇴색했는가? 아니면 젊은이들이 환상에 사로잡혔는가?

영웅이란 누구인가? 영웅 하면 나폴레옹이나 칭기즈칸 같은 정복자가 먼저 떠오르며, 이런 전쟁영웅이 아니라도 각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룬 인물들이 연상된다. 그리스인들은 영웅을 반은 신이고 반은 인간인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로 보았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나 오딧세이가 그런 인물들이며, 플루타르크영웅전에 나오는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모두 비범한 능력의 소유자들이다. 영웅예찬으로 유명한 토머스 칼라일은 영웅이란 고결한 도덕성과 숭고한 이념과 탁월한 지도력을 겸비한 인물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영웅을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부류로 분류하면서 영웅만이 역사의 창조자라는 영웅사관을 주장하기도 했다.

비코는 모든 민족의 역사가 세 단계를 거치면서 순환한다고 주장한다. 신들의 시대, 영웅의 시대, 인간의 시대가 그것이다. 여기서도 영웅은 신보다는 못하지만 보통 인간보다는 뛰어난 자들이다. 이데올로기의 갈등을 다룬 이문열의 ‘영웅시대’나, 해방 전후의 격동기를 다룬 드라마 ‘영웅시대’가 모두 비코의 이론과 비슷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전통적인 영웅관에서 볼 때, 미국 젊은이들의 영웅관은 어떤 의미를 함축하는가? 먼저 영웅이 철저히 대중화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전통적인 영웅관에서 보면, 보통의 부모는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거나, 혹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일 수는 있어도, 최고의 영웅일 수는 없다. 대다수의 부모들이 그토록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대중들이 권력을 행사하면서 역사를 창조해가는 현대적 상황에서 보면, 영웅의 의미도 대중화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들,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용기의 소유자들,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들은 모두 영웅이라 불려서 안 될 이유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통적 의미에서 보면 현대는 영웅이 없는 시대지만, 대중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영웅들의 시대인 것이다.

동시에 미국 젊은이들의 부모 영웅관은 부모에 대한 높은 존경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된다. 기러기아빠가 늘어나고 맹모가 판치는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에게 똑같은 조사를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우리 사회는 최근 몇 년 동안 권위주의를 타파하는 데 지나치게 몰두하면서 정당한 권위까지도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적 분위기에 휩싸여 왔다. 뿐만 아니라, 가족이 어떤 사회보다 빠르게 해체되는 듯이 보인다. 이 점은 우리에게 깊은 반성의 과제를 던진다.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도 영웅부모가 존재하는지 물어보고 싶다.

'행복한 삶 > 삶의등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뇌 경쟁력  (0) 2007.09.27
존엄死의 제도화  (0) 2007.09.27
얼굴값과 이름값  (0) 2007.09.27
대중의 두 얼굴  (0) 2007.09.27
단일 민족의 두 얼굴  (0) 2007.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