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대중들에게 읽혀지지 않는, 이해되지 않는 현대미술을 보는 관점 의
역사들을 강의와 책을 보며 읽고 느낀것을 기억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글로 정리해본다.
칸트의 형식미학
사진의 발명으로 그림이 현세계의 '재현'의 의무에서 벗어나고
더이상 그림은 철학과 종교에 종속되지 않을 때에 칸트의 형식미학이 등장한다.
캔버스안에 대상성이 파괴되고 형과 색은 진리를 말하는 의무에서 벗어나 그자체의
자유로운 유희를 하게 된다. 이제 그림은 모든 진리적, 종교적인 측면을 벗어나고
그림 자체 아름다움의 '미적 자율성'을 주장하게 된다. 예술을 위한 예술...
이 세상 모든 사물들은 그 목적에 의해 만들어지고 제작되지만 형과 색의 자유로운 유희는
오로지 그 아름다움의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
고로 그림을 감상할 때는 그속에 무언가를 찾기보다는 그림자체의 구성과 색의 배열에
주목하고 그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감상하라는 말씀.
아도르노의 아방가르드미학
자본주의사회는 모든것들을 수적인 측면으로 계량화한다.
사물들의 고유성은 간단히 화폐의 양적가치로 환원되어 버리고 관리된다.
왜 그렇지 않는가...우리들도 태어날때부터 13가지의 번호가 매겨져 관리대상이 되고
입시미술은 자기의 고유적 그림위에 점수가 매겨져 웃고울고.. 무슨일을 하던간에
그사람의 일년연봉에 따라 우러러보기도 하고 그저그렇게 보이기도 하고..
모든것들이 숫자로 추상되고 보편화된다. 체인점 음식처럼 인간조차도 표준화되고
획일화되고...'평균코드'를 가진,공통분모를 가진, 인간상을 사회에서 강요한다.
이런 사회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바로 예술이다.
예술이란 자연과같이 끝없이 법칙화, 동질화되기를 거부하고 끝없는 타자로 남는다
이런 동일성의 폭력으로부터 유일하게 고유적인 인간상으로 남는 예술의 방법은
끝없이 새로움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때문에 인간다워지는 유일한 길인 예술의 진리는
그 새로운 형식속에 이미 들어가 있는 것이다.
때문에 예술이란 더이상 아름다움의 추구보다는 단지 '새로움'의 추구이다.
그래서 현대예술은 대중들과의 소통이 쉽지않는 것이다. 모두들 자신들만의 새로운코드를
매일매일 세상에 내놓고 있으니.
뒤샹의 황당한 변기사건도 이러한 관점에서 해석될수 있겠다.
뒤샹은 예술이라는 개념자체의 새로운 코드의 지평을 열어놨으니..
<말레비치 - 검은 사각형 >
뉴먼의 숭고미학
'예술이란 가시적인것을 재현하는게 아니라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한다'
라는 파울클레의 말처럼... 하지만 파울클레의 그림조차 가시화되는 그 대상속의
형을, 공간성을 보게된다. 하나님이 형상금지를 시켰듯이,
뉴먼이 보기엔 인간에겐 이세상엔 중요한 것은 유한한 형 속에 갇힐수 없는
표현될수 없는 중요한 것들이 있다.
그러한 우리 지각밖의 초월적이고 거대한 것들이 처음 우리가 마주쳤을때에는
공포스럽고,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마침내 그것을 극복하면 더없이 기쁜 열락의 쾌감을
맛보게 된다. 그것을 바로 '숭고(嵩高)'라 부른다. 숭고의 감정은 더이상 아름다움이란 '미'
안에 종속될수 없는 것이다. 이로써 '미'가 파괴되고 '형'이 또다시 해체된다.
그럼으로 그림은 최소한의 평면성만을 유지하게 되고 오늘날의 설치미술처럼
그 장소에서만 느낄수 있는 '아우라'를 뿜는 종류의 미술이 탄생하게 된다.
<뉴먼 - 서약>
워홀의 시뮬라크르미학
옛날에는 회화가 '재현의 수단'이었다. 재현이란 원본가 얼마나 똑같이 그리느냐 하는
수직적 유사성과 관련이 있었으나 디지털복제시대에 들어옴으로서, 복제세상이 된다.
더이상 복제물은 원본과의 수직적 차이를 거부하고 조금씩 조금씩 변형되고 변주되어
원본과 닮음의 차이를 두지않는, 때로는 원본을 넘어선, 아예 원본자체가 사라져버린 복제들.
이것들을 '시뮬라크르(simulacre)'라 한다.
워홀의 캠벨깡통이나 마릴린몬로가 얼마나 원본과 닮았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주목해야 할 점은 그것들이 얼마나 미묘한 뉘앙스속에 풍기는 이미지이다.
이걸 깨닫고보니...세상은 온통 시뮬라크르천국이다. 간단한 예로 ..
디지털시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포토샵실력이 탁월하다 -_-;;;
일단 자신의 얼굴(원본)을 사진(복제)으로 찍고 포토샵의 마법의 힘으로 얼짱으로 변신한뒤
인터넷 싸이월드(복제의 복제)에 자신의 시뮬라크르를 온세상에 노출한다.
그 사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미지의 놀이가 된다.
또 한번은 내가 좋아하는 ..항상 책이나 컴퓨터로 봐왔던 렘브란트의 그림을 직접 창덕궁에서
몇년 전에 볼 기회가 있었다.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작품앞에 직접 마주하면 거대한 아우라를
체험할줄 알았는데.. 이거 뭐 별 느낌도없고 작품도 생각보다 작은것 같고...
복제품이 오히려 원본의 이미지에 영향을 가했던 나의 체험이었다.
이건 좀 안좋은 예지만...얼마전 뉴스에 보니 한 사기꾼들이 외국유명브랜드라고 비싸게 판 고액의 시계가 사람들에게 아무런 의심없이 많이 팔렸다고 한다.. 이것은 아예 원본없는 복제의 시뮬라크르다. 현대에선 이런 시뮬라크르의 놀이를 주제로 삼는 작가들이 많다
현대 디지털사회에선 원본과의 유사성은 더이상 중요하지가 않고 수많은 복제들의 다양한
변주곡의 놀이를 즐기면 된다. 이것이 바로 시뮬라크르 미학.
<워홀 -체게바라>
내가 써놓고도 헷갈리고 뭔말인지도 모를 단어들을 지껄인것 같다-_-;;;
진중권의 현대예술론에 따르면 .. 수많은 복제들 사이에 여전히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것 지속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처럼... 현대예술의 숭고와 시뮬라크르는
뗄수없는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 개념적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완벽히 내 머릿속에 들어오진 않았다
더욱더 파봐야겠다. 숭고와 시뮬라크르에 대해..
글:아티스트 오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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