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랑/그림 이야기

[스크랩] 빛과 물의 화가 모네

영원한 울트라 2008. 1. 31. 14:25
 

 

» 모네는 빛의 비밀을 열기 위해 전 생애를 걸어 싸웠다. 빛을 받아 시시각각 달라지는 사물의 표정에 매혹됐고, 그 매혹적인 장면을 포착하는데 열중했다.<인상, 해돋이>(1873년) 그림출처:<클로드 모네>(열화당 펴냄)
교과서 미술기행/ 빛과 물의 화가 모네

  누구나 햇살 가득한 빛의 기억이 있다. 이를테면 한 사람에게 온통 마음이 기울어져 미세한 떨림에도 그 사람을 느낄 수 있는, 오감이 살아있는 시간. 사랑에 대한 기대와 파릇한 예감 때문에 익숙하다고 느꼈던 대기의 빛과 풍경들이 새롭고 싱그럽게 다가오는 때. 빛나는 시간들에 대한 애틋한 추억이 연초록 봄을 부른다. 겨우내 봄을 기다리던 생명들은 빛을 함뿍 받고 싱싱한 새잎과 함초롬한 꽃송이들을 부지런히 피워 올린다. 이 신비롭고 산뜻한 풍경은 밖으로 나가 직접 느껴야 한다. 모네식으로!

  우리가 흔히 ‘그림 같은 시절’이라고 말할 때 떠오르는 그림은 (어떤 미술 교과서에나 실려있는) 인상파의 그림이다. 눅눅하고 일그러진 어둠이 아닌 생기와 즐거움으로 반짝이는 화사하고 꿈결 같은 풍경. 그곳에서는 증오나 배신, 가난이나 불우 대신 신선한 공기와 기쁨만이 부드럽게 우리를 끌어안는다. 빛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봄의 현이 떨리고 빛의 산란으로 더없이 파란 하늘도 우리와 공명한다. 그 아래 빛의 스펙트럼을 따라 무수한 파장이 자연과 만나면 맺혔던 응어리도 풀어지고 마음에도 사붓사붓 봄물이 든다.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마법에 사로잡힌 화가가 끌로드 모네다. 삶이란 예측할 수 없고 붙박여 있는 것은 살아있는 게 아니다. 우리의 눈과 마음을 단번에 압도해버린 저 눈부신 빛의 아우라.

 

 

» <카미유의 임종>(1879년)그림출처:<클로드 모네>(열화당 펴냄)
  그러나 그것은 쓸쓸하게도 아름다운 것들이 그렇듯 짧고 덧없으며 휘발성이다. 빛의 비밀을 열기 위해 모네는 전 생애를 걸어 싸운다. 오로지 자신의 눈을 믿으며 밝은 것이 어두운 것을 제압하는 진실의 표정을 증명하려 한다.

  그의 작품 <인상, 해돋이>(1873년)를 보고 비평가 르루아는 조롱한다. “인상이라고? 어딘지 방자하고 미적지근하다. 미숙한 벽지조차도 이 그림보다 완성적일 것이다.” 이 그림 덕에 모네는 ‘인상파’의 수장이 되고 뛰어난 색채주의자가 된다. 생각해보면 세상의 조롱이나 비난이 영광의 이름이 되는 경우는 많다. 죽음의 상징인 십자가가 구원의 상징이 되었듯이….

  모네는 검투사처럼 붓을 들고 싸워나간다. 가난도 멸시도 그를 꺾을 순 없다. 그럴수록 그의 그림은 더욱더 섬세해지고 유연해진다. “나는 첫 번에 쉽게 오는 것들에 대해 매우 분개한다”고 했던 모네. 그의 치열한 예술정신이 훗날 칸딘스키 같은 추상화가들에게 세잔과 함께 회화의 현대성이란 새로운 세기의 포문을 열어젖히게 한다.

  그러던 중 사랑하는 아내 까미유가 죽는다. <까미유의 임종>(1879년). 이 그림은 절망과 슬픔으로 떨리는 모네의 붓이 차갑게 누워있는 아내의 모습을, 제 심장을 그어 피로 그려낸 가슴 아픈 그림이다. 이제 다정하고 속 깊던 아내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너무나 가난해서 좋은 옷 한 번 해주지 못한 아내의 몸을 새벽빛이 흐느끼며 어루만진다. 모네는 눈물 섞인 붓으로 자신의 영혼에 까미유의 마지막 모습을 새긴다. 그래서 나는 이 그림을 볼 때마다 꾹꾹 눌러놓았던 슬픔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다.

 
 
  차갑게 식어버린 아내에게 그는 첫새벽의 따뜻한 햇살과 꽃다발을 안겨준다. 다시 만날 때까지 혼자 추워하지 말라고. 햇살이 비출 때마다 내 마음이 당신을 감싸 안을 거라고.

  그 뒤 모네의 그림에서는 사람보다 풍경이 더 많이 등장하게 된다. 사람에 의해 마음을 많이 다친 사람들이 자연에게서 위로와 희망을 느끼듯이.

  그는 빛에 의해 ‘그렇게 보이는’ 다양한 찰나의 표정을 그리기에 집중한다. 그가 사랑한 빛의 정령인 흰색과 순결한 순색들, 그리고 빛을 받아 시시각각 달라지는 빛과 사물과의 황홀한 교감. 이 환상적인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그는 집요하리만큼 반복하며 연작을 그리기 시작한다. 연작시를 쓸 때가 있다. 그것은 너무 깊이 와서 박힌 감정이라서 쉽게 끝나지 않기 때문에 쓰고 또 쓰는 것이다. 이렇게 연작은 한 외로움이 또 다른 외로움의 내면 풍경까지 보아냈을 때 가능하다. 이 그림들은 모네에 의해 살아 움직이며 청신한 빛과 아름다움을 내뿜는다. 그리고 마침내 시간과 시대를 초월한 ‘영원한 순간’이 된다.

  모네는 빛과 물의 화가다. 물에서 빛을 밀어올린 힘이 모네 그림의 전반부였다면, 지베르니의 정원과 함께 한 그림들은 찰나적인 것 속에서 영원성을 묵상하는 물과 꽃의 순례기다.

  그가 맨 처음 느꼈던 신성한 빛. 모네는 벅차고 가슴 뛰던 순간들에 불멸의 화관을 씌운다. 이루지 못한 것, 돌이키기엔 너무 늦어버린 안타까운 기억들이 자신 안에 물처럼 흐르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안다.

  모네의 물은 여성성이다. <수련, 물에 비친 풍경, 구름>(1903년)에서 연못은 수련을 잉태한 양수다. 그 충만한 사랑의 물이 수련을 키운다. 그리고 흔들리는 물그림자로 내려온 구름과 나무와 풀들이 자장가를 들려준다. 빛을 가득 받은 연못이 만삭으로 부풀어 오를 때면

흰 물의 딸 수련이 피어난다. 모네에 의해 수련은 고귀한 빛의 영혼을 받는다.

빛이 간절한 사람은 오랫동안 추워본 사람이다. 수많은 색들이 혼합될수록 빛은 희고 투명해진다. 모네가 꿈꾼 삶도 이렇게 더없이 맑고 빛나는 세상이 아니었을까.

  빛의 숨결로 세상이 환해보이는 날 모네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얼마나 찬란할까? 그런 날이면 나도 모네처럼 꽃의 안부를 묻는다. 정지원/시인

 

 

출처 : Artist 엄 옥 경
글쓴이 : 스카이블루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