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 부는 중화바람
중국이 주도하는 세계 문화지배 및 재편 현상
펑정지에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지 30년 만에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으로 성큼성큼 다가서고 있는 중국의 기세가 무섭다. 차이나 달러의 위력을 앞세워 세계 곳곳의 주요 광산이나 유전을 사들이고 자국에 항공, 반도체, 철강, 시멘트 등 다국적 기업들을 속속 유치함으로써 글로벌 차이나를 실현시키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세계 금융계의 거부로써 막대한 차관정책을 도모하고 최대의 채권국으로 세계경제에 으름장을 놓고 있기도 하다. 그야말로 '대국굴기(大國崛起)'요, '팍스 시니카(Pax sinica)'의 점진적 실천이다.
중국의 지배에 의해 세계의 평화질서가 유지되는 상황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인 '팍스 시니카(Pax sinica)'. 그러나 이와 같은 개념이 정치, 경제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니다. 문화예술부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최근 몇 년 간 세계현대미술의 흐름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현대미술의 텃밭으로 급작스럽게 부상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의 문화질서 재편 양상이다. 이중 급속한 경제적 팽창을 바탕으로 한 브릭스(BRICs) 국가들의 저력이야 이미 오래된 이야기에 해당하지만 갈수록 가속도를 더하고 있는 중국의 행보는 여전히 눈여겨봐야할 대상으로 존재한다.
22조원에 달하는 시장, 콜렉터만 7천만명
인구 13억을 자랑하는 중국은 그 덩치에 걸맞게 세계현대미술계가 깜짝 놀랄 만큼 커다란 성장세를 보여 왔다. 22조원에 달하는 미술시장, 남북 인구 모두 합친 수를 넘어서는 7천만 명에 달하는 콜렉터의 규모란 듣기만 해도 입이 떡 벌어지게 한다. 미술인구를 아무리 넓게 잡아도 500만명을 넘지 못하고 수천억 원에 불과한 미술시장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비교자체가 되지 않는 셈이다.(땅덩어리며 인구 수, 자원 등 근본적으로 두께와 넓이가 다르니 당연히 그렇겠지만)
경제에 비례해 중국 미술시장의 규모가 방대해지고 미술향유층의 증가가 눈에 띄자 시설의 증설이 요구됐다. 10년 전부터 불어나기 시작한 자체 미술인구의 확산과 유입은 여러 시설을 필요로 했고 이에 최근 중국은 500여개에 달하는 미술관을 짓겠다고 선포했다. 이와는 별도로 중국정부는 자신들의 나라가 세계적인 현대미술의 집산지로 각광받도록 하기 위한 사전조치로 기존 군수시설을 개조한 공간들을 우후죽순 설치하는 등 베이징과 북경을 중심으로 한 문화시설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에게도 익히 잘 알려져 있는 북경 내 자생적 공동예술지구인 ‘따산즈 798 예술구’를 탄생시킨 것도 그것의 연장이랄 수 있다.
위에 민준--->
이밖에도 '22세기 문화태동의 발원지로써의 중국'이라는 국가적 슬로건에 확실히 부합하는 결과들을 도출시키기 위해 중국은 다양한 시장부양책을 펼치고 있다. 그들은 우선 국제적인 미술행사의 개최를 통해 문화적 관점에서의 팍스 시니카를 실현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상해컨템포러리 아트 페어, 베이징 아트페어와 같은 굵직한 미술축제들을 연이어 열어 제끼며 세계의 눈길을 중국으로 끌어 들였고 반대로 '장 샤오강(zhang xiao gang)'을 위시한 '위에 민준(yue minjun)', '쩡판즈(zeng fanzhi)', 그리고 차세대 작가 '인쥔', '팡쩡지에', '하오준', '종비아오', '아이 웨이웨이', '팡거진', '쨩 샤오타오', '츠 펑', '티에하이', '루오형제', '천웬보', '류웨이' , '쉬베이훙' 등의 걸출한 자국 작가들을 베니스비엔날레 등 유수의 국제전에 전진 배치, 중국미술의 우수성을 입증하려 했다. 그 결과 이들의 작품은 소더비를 비롯한 세계 미술시장에서 엄청난 가격에 거래되고 있으며 자의반 타의반 'Chinese Fever'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문예병사로써 손색없는 역할을 맡아 오고 있다.
쟝 샤오강
중국발 문화 재편 현상에 세계가 주목
2007년까지 최근 5년간 드러난 경제성장, 현대화, 도시화 지표를 보면 중국은 불과 수년 사이에 급속한 성장세를 보였으며 이는 중국의 문화 재편 현상을 가시화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두드러진 징후에 많은 국가들이 중국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장차 20~30년 후면 미국이나 유럽연합과도 대등한 관계를 가질 것이라는 낙관론과 함께 세계문화예술의 중심지가 될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유보치 않게 했다. 최근에 만난 한 중국미술전문가는 “중국의 내재적 성장속도가 눈에 띄게 빠르다는 것을 염두에 둘 때 중국이 세계경제는 물론 문화의 중심국으로써의 지위를 누린다는 것이 허구는 아닐 것”이라며 “훗날 중국이 경제대국이 되었을 때 문화예술의 부흥은 부수적으로 동반 상승할 것이라는 가정은 단순한 가정이 아닐 수 있다.”고 피력했다. 즉 굳이 문화예술에 대한 진흥책을 쓰지 않더라도 경제가 활성화됨으로써 문화예술에 대한 새로운 수요가 창출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라는 것이다. 허긴, 돈이 모이고 있는 중국에 세계문화예술이 집중되는 것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 쩡판쯔
오는 8월에 열리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엑스포를 계기로 세계미술 흐름의 방향을 완전히 자국 내로 바꾸는데 성공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중국. 그 밑바탕에는 자본력을 위시한 위에서 언급한 여러 요소들이 응집되어 있다. 그중 핵심은 단연 자본이다. 그러나 아무리 자본이 미술을 잠식하고 자본의 가치가 미술의 가치를 대신하는 현실이라고는 하지만 그들의 작품성이 세계현대미술계에 올곧게 투영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는 별개의 것일 수 있다. 현재까지의 결과만 놓고 보면 중국 작가들의 작품은 별다른 거부감 없이 수용되고 있는 듯하다. 지난해처럼 마이에미 등 일부 아트페어나 비엔날레에서 생각보다 못한 성적을 거둔 감은 없지 않으나 이것이 중국의 행보에 큰 장애가 되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일단 중국작가들은 세계현대미술진출에 거부감이 없을 만큼 미술시장의 흐름을 재빠르게 받아들이고 있을 뿐 아니라 여타 아시아권 국가와는 달리 미래 세계최대의 문화강국을 위한 인적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 어떠한 특정한 경향에 대해 언제든지 다변화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계 문화 중심 중국'이라는 대원칙의 원천적인 에너지가 되고 있는 중국 작가들은 세계현대미술의 흐름에 맞춰 짧은 시간에 여러 단계의 변화를 수용해 왔다. 과거의 중국미술이 미술의 방법론에 대해 골몰했고 '레드 아트' 따위의 '중국적 이미지' 자체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면 현재는 후기 자본주의의 급물살을 타면서 소비문화의 유입을 체험하고 자신의 일상을 더욱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모션을 유감없이 피력하고 있다. 이들은 냉소적이든 무엇이든 더 이상 정치적 구호나 거대담론에 집착하지 않으며 '서구에서 요구하는 이미지'에 골몰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새로운 세대들은 역시 '세계 문화 중심 중국'이라는 국가적 목표에 의해 자발적, 비자발적인 행태에 관계없이 이미지가 아닌 새로운 중국적 현실과 현실문화적 컨텍스트를 찾는데 주력하고 있다. 다시 말해 오늘날의 중국 작가들은 독특한 중국 특유의 특성을 반영하면서도 역사와 정치의 격변 속에서 느끼는 정체성을 화두로 개인의 내밀한 감정과 사회적 비판의식 등을 새로운 토픽으로 끌어내는 것을 넘어 비디오게임, 컴퓨터, 소비문화 등의 이미지를 자신의 일상과 자아에 오버랩 시키는 작업들을 통해 세계시장으로 나아가거나 세계를 중국으로 끌어 들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준
앞으로 중국이 주도하는 세계 문화 질서 재편 현상이 종국엔 어떠한 결과를 맞을지, 그것이 흔들림 없이 전개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어쨌든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잘 보존되고 있는 유구한 문화적 전통과 그것을 떠받치는 예술인구,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미술을 세계의 미술로 각인시키려고 부단히 애를 쓰고 있는 중국은 여러 경제적 전망과 활동지표를 종합할 때 세계문화와 미술의 중심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즉 중국의 지배에 의해 세계의 문화질서가 유지되는 상황이 생각 보다 훨씬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글ㅣ홍경한, 월간 퍼블릭아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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