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경쟁/마케팅이야기

좋은 전시를 위한 조건

영원한 울트라 2010. 10. 30. 10:30

좋은 전시를 위한 조건


 
임립미술관 본관 전경


최근 미술계는 표류하는 자본과 권력의 유입으로 열병(病)을 앓고 있는 것 같다. 조금만 부주의하면 치유가 불가능하게 될 지도 모르는 티핑포인트(Tipping Point)의 민감한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미래학자 패트리셔 애버딘은 그의 저서『메가트렌드 2010』에서 미래에 닥칠 커다란 변화는 인간의 깨달음에서 찾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대부분의 미래학자가 미래 트렌드를 외형적ㆍ물질적 요소에서 찾았다면, 패트리셔 애버딘은 인간의 정신적인 면으로부터 미래의 트렌드를 찾아내고 있다. 현대의 물질문명이 자본주의의 승리로 귀결되는 것 같지만 자본주의는 인간의 순수성과 가치를 잃게 하는 물질만능주의를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인간이 인간다워야 함을 망각하고 자본과 권력에 대한 집착으로 인하여 거짓과 부패를 불러왔다고 지적하고 영성의 정화를 통한 인간이 가치와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문화예술에 있어서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할 것 같다. 기업경영에 있어서 궁극적인 목적은 고객만족을 통한 이윤추구이다. 이 말은 고객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기업은 이윤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은 매출이 하락하게 되면 다각도에서 그 원인을 분석한다. 소비자의 니즈(needs)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많은 조사를 하고 소비자의 편익은 물론이며 그 정서적 욕구까지 충족시키기 위하여 사활을 걸고 상품을 개발한다.

대부분의 거대기업은 자체 연구소를 가지고 있으며, 트렌드를 읽고 예측하고 창조하는 일을 하고 있다. 어설픈 이론의 나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경쟁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다양한 흐름과 개성 속에서 공통분모를 찾아내며 그것을 상품생산에 적용시키는 것이다.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절대로 오만하거나 자기도취에 빠져있을 수 없다. 그것은 곧 기업의 몰락을 가져오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소비자의 욕구를 상품개발에 반영하기 위해 소비자가 생산에 참여하는 프로슈머라는 말이 나타나기도 했다. 물론 미술작품의 제작이나 전시기획은 상품개발이나 생산계획과는 차이가 있다.

기업가의 목적과 미술가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현대 기업의 목적은 고객만족을 통한 이윤의 극대화이며 미술가의 목적은 미술작품을 제작하여 많은 사람이 그 작품을 향수토록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관 운영자나 전시기획자는 관객의 만족을 극대화하기 위해 미술가의 작품을 선정하고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여러 가지 필요한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관객이 소외된 노력은 관객을 만족시킬 수도 없고 작가를 만족시킬 수도 없다. 관객의 정서적 욕구, 관객의 특성, 관객의 라이프스타일, 관객의 가치가 무시된다면 관객은 미술관과 작가를 떠나 다른 곳에서 만족을 찾게 될 것이다.
 
현대의 미술상황에 대하여 외면하고 다른 재미와 만족을 찾아서 관객은 떠나고 작품만이 전시실을 지키고 있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관객, 비평가나 이론가, 작가, 전시기획자, 미술관관계자, 미술교육자 등 모두의 책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굳이 말하자면, 시대와 상황의 변화를 읽어내지 못하고 관객의 내적, 외적 변화를 무시한 모두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각자의 세계에 빠져 자기의 것을 주장하고 자기만의 언어로 소통을 시도하려다 보니 문제가 발생하고 단절이 발생한 것이다. 모두가 함께 공통의 소통언어를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임립미술관 본관 전시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들이 있지만 현장에 도입하는 데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다. 그것은 현장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였거나 지극히 지엽적인 조사에 근거를 둔 연구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시나 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데 있어서도 이론과 실체, 부분과 전체를 보는 안목을 가지고 접근하여야 할 것이고, 진정으로 관객과의 소통을 원하는 작가들, 전시기획자, 도슨트, 그리고 작품에 대한 관객의 관심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태도는 바로 겸손과 나눔의 의지에서 시작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이러한 다양한 어려움을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미술관의 전시기획자들은 보다 쉬운 방법을 찾기도 한다.

미술사에서 나타난 국내외의 유명작가의 작품을 ‘미끼 전시품’으로 삼아 수십만의 관객을 동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시는 대부분 국가의 지원으로 이루어지지만, 관객들은 적지 않은 관람료를 기꺼이 지불하고 교과서에 나온 유명한 작품을 보기 위해 모여든다. 이미 역사적으로 검증된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새로운 훌륭한 작가를 발굴하여 그 예술적 가치를 세상에 알리는 것보다 훨씬 쉬울 뿐 아니라 실패의 위험도 적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홍보나 마케팅도 대단히 수월하다.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조차 누구나 한번은 들어본 작가이름, 미술교과서에 나오는 유명한 작품을 감상하러 간다는 것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보다는 감상에 대한 실패의 위험을 줄일 수 있고 명화를 감상했다는 자부심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관객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작품을 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유익하다고 여기게 된다. 아마도 가장 쉬우면서도 성공적인 전시경영전략일 수 있다. 이러한 전시전략은 사립미술관, 특히 미술관 설립자 개인의 경제력에 의존하여 운영되는 지방 소도시의 사립미술관으로서는 꿈에서나 한 번 꿀 수 있는 전략인 것이다. 그러한 전시 보다 훨씬 더 어려운 전시기획의 또 다른 방향이 있다. 이것 역시 지역의 사립미술관으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임립미술관에서 주로 기획되는 전시이다. 새로운 상품을 개발한 기업은 신상품을 구입하는 고객에게 그들이 얻게 되는 물질적, 정신적 만족에 대하여 알려주기 위하여 많은 노력과 자본을 투자한다.

상품의 물적 가치와 편익은 물론이고, 정서적 ? 체험적 만족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심리적 접근을 시도하며 마케팅 전략을 실행해 나아간다. 클래식한 명품이 존재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트렌드가 바뀌면, 최신의 정신과 기술로 만들어진 동시대의 감각이 살아있는 상품이 있어야 한다.

미술전시도 이와 마찬가지로 이미 미술사의 검증을 받은 명작의 전시와 함께 미래에 검증될 동시대성을 가지는 작품전시를 기획하게 된다. 이러한 전시는 더 많은 홍보와 마케팅을 필요로 하게 된다. 미술관 마케팅의 궁극적인 목적은 관객에게 가치 있는 체험, 즉 최상의 체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경영의 최고 목적이 고객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미술경영의 목적은 미술을 창조하고 관객을 창조하는 것이다.

미술관에서의 전시기획은 새로운 미술을 창조하는 것이고 미술관 마케팅은 새로운 관객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관객은 작품의 질적 수준, 정서적 편익, 그리고 친절하고 긍정적인 미술관의 이미지를 당연시하며,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한다. 감각에 호소하여 가슴에 와 닿으며 정신을 자극하는 작품, 그 작품을 통한 커뮤니케이션과 만족과 기쁨을 원한다.

미술관에서 전시를 기획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객이 많이 모여드는 전시 뿐 아니라 관객과 작가가 작품을 통하여 소통하고 상호 만족을 목표로 하여 전시를 기획하고 홍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임립미술관 특별전시관



그러나 혼신의 힘을 기울여 기획한 전시가 작가의 무성의, 인력의 부족, 경제적인 현실에 부딪쳐서 초라한 몰골이 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이러한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극복하기 위해 임립미술관에서는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전시운영 지원을 위한 프로그램으로서 기업메세나 및 기업과 개인 회원제를 통한 스폰서십 등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고객(관객)관계관리(CRM: 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와 작가, 미술관, 후원자, 그리고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파트너관계관리(PRM:partner relationship management) 등 여러 가지 마케팅 기법을 시험적으로 적용하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임립미술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CRM은 관객의 개성, 가치, 생활방식을 포함하는 설문조사를 통하여 관객을 세분화하여 전시나 교육프로그램에 반영하는 것으로, 일종의 프로슈머의 개념을 적용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사이코그래픽 세그멘테이션(Psychographic Segmentation)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사이코그래픽 세그멘테이션을 바탕으로, 프로그램 기획자가 주도적 역할을 하며 특정한 분야에 관심을 보이는 관객을 초대하여 의견을 수렴하고 프로그램 기획에서 진행단계에 이르기까지 함께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그 프로그램을 평가해 보고 다음 프로그램을 위한 제안의 기회를 관객에게 제공하여 미술관이 설립자 개인의 공간이 아니라 관객의 공간임을 확인하도록 하는 것이다.

임립미술관에서 진행하고자 하는 파트너관계관리(PRM)는 고객관계관리(CRM)보다 더 어렵다. 하나의 전시나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4자(者) 즉, 작가 ? 스폰서 ? 미술관의 프로그램기획자ㆍ관객 간의 파트너십을 위한 파트너관계관리를 하는 것이다.

임립미술관의 파트너관계관리는 작가(작품)의 특성, 스폰서의 선호도, 관객의 사이코그래픽스를 연결하여 상호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파트너십을 구축하여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에 적용하는 것으로 고객관계관리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특히 작가의 자긍심이 클수록, 스폰서의 의지가 낮을수록, 기획자의 안목과 열정이 낮을수록 파트너관계관리는 효력을 발생하기 어렵다.

임립미술관에서는 진정으로 관객과 호흡하기를 원하는 역량 있는 작가들 그리고 지역의 미술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지역의 중소업체와의 관계를 맺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또한 미술관 업무에 열정을 가지고 임하는 젊은 인력을 양성하는 일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언제나 지역적 한계에 부딪쳐 인력난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미술관의 PRM이 성공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절실하게 필요한 것들이 있다. 그것은 정말로 훌륭한 미술작품을 감상하기 원하는 소수의 관객을 위해서 성의 있게 작품 준비를 해줄 수 있는 작가의 진정성이 그 첫 번째이고, 미술문화의 흐름과 지역적 특성을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보는 안목을 가진, 학력이 아니라 실력을 갖춘 큐레이터가 그 두 번째이다. 마지막으로 미술문화 발전을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의지와 지원 그리고 지역기업의 부의 사회적 환원으로서의 미술문화 활동지원이 그것이다.




호수를 끼고 있는 임립미술관 휴게실



미술문화에 대한 가치와 중요성에 대한 의식이 약한 지방의 소도시에서 사립미술관을 운영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러나 누가 억지로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닐 진데, 무엇인가 말하고 표현하고 싶어 하는 작가들과 그 진정한 의미를 알기 원하고 그것으로 채워지기를 원하는 관객들이 있기에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을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술관경영은 기업경영전략의 도입만으로 난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술문화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고양시키기를 원한다면, 인간에 대한 예술의 가치와 관객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나친 겉치레와 자아도취 그리고 자본과 권력에 대한 성공의 미몽에서 깨어나 현실을 인정하고, 가장 순수하고 가장 진실할 수 있는 것이 예술이라고 믿으며, 겸손한 자기 성찰을 통하여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면 어려움은 아름답게 극복되어질 것으로 믿는다.


글ㆍ사진=신은주 임립미술관 기획실장
2007. 8.13 ⓒArt Museum


'무한경쟁 > 마케팅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과해독설  (0) 2011.11.02
메시지란?  (0) 2010.11.01
미술을 커뮤니케이션 하다  (0) 2010.10.30
모바일로 통하는 다양한 당선 전략   (0) 2010.08.31
소셜미디어와 SNS의 개념  (0) 2010.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