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세상과 새로운 시대를 향한 뜨거운 열망이 지구촌 곳곳에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9월 17일, 자본주의의 심장부 뉴욕 맨해튼에 있는 주코티 공원에서 빈부격차와 분배의 불평등에 항의하는 반 월가 시위가 시작되어 한 달째 계속되는 가운데 10월 15일엔 전 세계 82개국 1500여개의 도시에서 동시다발적 양상으로 발전하면서 지구촌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2011년은 지구촌 전역이 시위로 점철된 한 해가 되고 있습니다.
2010년 12월 18일 북아프리카 튀니지의 노점상 모하메드 부아지지가 경찰의 노점상 단속에 항의하여 분신함으로써 촉발된 일명 ‘재스민 혁명’을 기점으로 시작된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시위, 지난 1월 영국을 시작으로 여름까지 유럽 각국에서 일어난 대학 등록금 인상 반대 시위, 9월 초 영국 주요 도시에서 발생한 ‘묻지마식’ 약탈 방화 폭동, 그리고 2008년 12월 6일 이래 현재까지 그리스 정부의 재정긴축에 반대하는 시위가 여전히 진행형인 상황에서 이번에는 뉴욕 맨해튼 월가에서 시작된 반 월가 시위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들 시위대의 목소리와 지향점은 각기 달라도 크게 두 가지 성격으로 분류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재스민 혁명은 집권 세력의 부정 부패와 장기 독재에서 비롯된 것으로 민주화 시위의 성격을 띠고 있는데 비해서, 그리스 정부의 긴축 재정에 반대하는 그리스 시위, 영국의 ‘묻지마’ 폭동, 유럽 각국의 등록금 인상반대 시위 그리고 반 월가 시위는 글로벌 경제 위기와 신자유주의 정책의 확대로 인한 피해를 가장 심각하게 받고 있는 계층과 집단의 절망감이 표출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그리스 시위와 반 월가의 시위에 대해서 주목해 보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그 자체에 썸씽 디퍼런트가 있기 때문입니다.
“삶도, 돈도, 아무것도 없다” “무관심은 끝, 이제 우리가 직접 민주주의를 하자” “국회는 없애버리고 그리스 국민을 하나로 묶자”라고 물결치는 그리스 시위대의 현수막 문구들과, “여야의 현 정치인들은 더 이상 고통에 빠진 그리스 국민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그리스 정부의 긴축에 반대하는 시민연합체 ‘신타그마 비상총회’의 아티 쇼티리스 공동대변인이 금년 6월 19일 한국의 동아일보와 가진 인터뷰 발언에서도 볼 수 있듯이, 기성 모든 정치인과 정치세력에 대한 강한 불신이 표출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 정치제도 자체에 대한 강한 불신, 즉 천재정치의 필요성이 막연하게나마 제기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관련 기사 : http://news.donga.com/Inter/EU/3/0218/20110620/38156910/1)
그리스 시민들이 정부와 현 정치인들을 이렇게 불신하게 된 것은, 지난해 EU와 IMF에서 1100억 유로를 빌려왔지만 순식간에 돈이 바닥나고 다시 손을 내밀게 된 원인이 부패한 정치인들의 무책임과 무능에서 비롯된 것임을 그리스 시민들이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과거 철인정치를 주창했던 플라톤의 후예들답게 낡은 정치를 타파하여 그리스 시민 스스로 새로운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1993년부터 2008년 사이 미국 상위 소득계층 1%가 소득의 52%를 차지했음을 보여주는 미국 국세청 자료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나듯이, 빈부 격차 심화와 분배 불평등에 항의하는 반 월가의 시위는 신자유주의 금융 세계화에 대한 비판을 넘어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강한 불신이자 자본주의의 탐욕과 모순에 대한 절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반 월가 시위의 베이스 캠프인 맨해튼 주코티 공원의 시위 현장에서 연설했던 슬라보예 지젝이라는 어느 철학자의 목소리를 소개하겠습니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공산주의 시절의 농담을 인용했다.
시베리아로 끌려간 남자가 있었다. 그는 그의 편지가 검열될 거라는 사실을 알았고 친구에게 말했다. “내가 보낸 편지가 파란 잉크로 적혀있다면 거기 적힌 내용이 사실이지만 빨간 잉크로 적혀 있다면 거짓이다." 한 달 후 편지가 왔다. 파란색 잉크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여기에서 모든 게 훌륭하다. 가게에는 좋은 음식들이 가득 차 있고 영화도 마음껏 볼 수 있다. 아파트는 크고 호화스럽다. 그런데 여기서 살 수 없는 유일한 물건이 빨간 잉크다."
지젝은 말한다. “지금 여러분이 할 일은 우리에게 빨간 잉크를 나눠주는 일이다. 뭐가 잘못됐는지 우리가 어떤 세상을 원하는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가 마주쳐야만 하는 진정 어려운 질문들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 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지를 모른다. 문제는 부패나 탐욕이 아니라 자본주의 그 자체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결혼은 끝났다. 변화는 가능하다.”
(관련 기사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7911 )>
물론 반 월가 시위 현장의 목소리는 다양합니다. ‘생계비와 일자리 걱정을 하지 않게 해달라’는 요구부터서 ‘메디케어와 사회안전망을 지키자’는 호소도 있고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목소리, 반전과 여성의 권리 향상, 인종차별 반대, 종교의 자유, 등록금 인하, 그리고 ‘자본주의의 탐욕을 버려야 한다’는 주장과 “연방준비제도이사회를 해체하라”는 상당히 과격한 구호 등등.
이렇듯,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모순을 제기하고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의 필요성까지도 피력하는 지젝의 주장이 시위 현장의 모든 목소리를 모두 대변하고 있지는 않지만,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반 월가 시위에 대한 전 세계의 반응 또한 다양합니다만, 시위가 한 달 동안 지속되고 있고, 뉴욕 소재 퀴니피악 대학이 최근 뉴욕 시민을 대상으로 월가시위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 시위대를 지지한다고 답한 응답자가 67%에 달했다는 1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의 보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뉴욕 시민들로부터서도 큰 호응을 받고 있으며, 또 10월 15일엔 전 세계 1500여개의 도시에서 동시다발적 양상으로 발전하는 것을 보아도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전 세계적 광범위한 지지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해 볼 때, 향후 전망은 불확실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금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위대가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시위대의 구심점이 부재하고 통일된 지향점이 없다는 점입니다.
또한, 1%의 지배 세력들은 시위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는 있을지라도 위에서 언급한 반 월가 시위대가 안고 있는 한계로 인하여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시위대의 세력이 약화되어 소멸될 뿐만 아니라 대중들의 이목을 끄는 새로운 국면이 형성되면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리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시위대의 주장에 대해서 그리 크게 신경쓰지는 않을 것입니다. 설령 시위의 기세가 얼른 꺾이지 않고 장기화될 경우, 매우 형식적인 조치를 통해서 무마하려고 하든지 아니면 그들의 주특기인 국면 전환을 위한 엄청난 음모를 획책할 것이고, 대중들은 그들의 술수에 또 넘어가게 되겠지요.
그리고, 머지않아 겨울 추위가 뉴욕 맨해튼 주코티 공원에 닥치게 될 텐데, 그럴 경우 공원 맨 바닥에서 텐트와 침낭으로 버티고 있는 시위대의 대열이 자연 와해되리란 것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월가의 시위대가 와해되면 전 세계의 동조 시위 또한 흐지부지 될 것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많은 점에서 월가의 시위대가 넘어야 할 산은 너무나 험난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월가 시위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 이렇게 급속하게 전 세계 동시다발적으로 확산된 사례는 인류 역사상 최초라는 점이며, 무엇보다도 자본주의가 한계점에 봉착하면서 단순히 금융자본에 대한 반대만의 성격이 아닌 자본주의 자체를 부정하고 새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단초를 반 월가 시위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지만 반자본주의적인 성격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과거 이념대립 시대의 계급투쟁적인 성격과는 차이가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시위가 시작된 지 한 달 정도 지났지만 비교적 평화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점, 그리고 급속하게 전 세계로 확산되는데 있어서 인터넷과 SNS 등 과학 기술이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 역시 우리의 특별한 관심을 끌게 하는 요소입니다.
그리고, 앞서의 우려와 같이 이 번 시위가 불발로 끝난다고 할지라도, 자본주의의 모순은 그대로 존재하기에 시위의 불씨 또한 항상 상존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후 전개 양상에 따라서는 향후 인류의 미래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엘로힘 대사관 건설과 연계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엘로힘 대사관 건설을 통해서 이 지구를 새로운 사회, 새로운 은하문명의 시대로 이끌어야 할 참으로 중대한 사명을 부여 받고 있는 라엘리안인 우리가 주목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서, 전 세계적으로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는 이 시위는, 아직은 미약하지만 인류의 의식이 서서히 깨어나고 있음을, 그리고 언젠간 활짝 피어오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멋진 사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주쳐야만 하는 진정 어려운 질문들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 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지를 모른다.”라는 철학자 지젝의 지적처럼 반 월가 시위에서는 자본주의를 혐오하는 목소리, 그리고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의 필요성만이 제기될 뿐, 어느 누구도 구체적으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 라엘리안의 시대적 역할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인류에게 구체적 방향과 방법을 제시해야 할까요?
먼저, 현재의 평화적인 시위가 폭력적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절대적으로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야 할 것입니다. 어떠한 지고지상의 목적을 위해서도 결코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또한, 시위가 계급투쟁적인 성격으로 변질되지 않을 것을 촉구해야 합니다. 시위대 주장의 타당성은 충분히 있으나, 지구는 하나의 운명 공동체로서, 1% 세력의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99% 세력만의 것도 아닌 지구 인류 모두의 터전으로서 모든 인류가 조화롭게 공존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직접적인 시위의 도화선이 된 세계적 차원의 경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마이트레야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세계정부의 수립과 단일통화를 만들어야 함을 인식시켜야 할 것입니다. 완전히 꼬인 실타래는 어느 한 부분의 꼬임만을 푼다고 해서 풀리는 것이 아니라 실타래 전체 차원에서 꼬인 것을 풀어내야 함을 분명히 이해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세계정부와 단일통화를 통해서 세계경제를 활성화시키고 분배정책의 수정을 통해서 빈부격차와 분배의 불평등이 완화될 수 있고 국가별로 분리되어 있음으로써 야기되는 문제들이 부분적으로 해소될 수는 있겠지만 완전히 해소될 수는 없으며, 더군다나 온갖 사회적인 갈등과 폭력, 자본주의적인 탐욕, 비인간화는 그대로 존속될 수밖에 없는데, 이런 근본적인 문제들은 다수결 선거제도에 의해서 뽑힌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인들이 통치하는 원시적인 정치제도와 화폐의 존재에서 비롯되는 것으로서, 지성의 천재들에 의한 천재정치를 행하지 않고선, 그리고 화폐가 사라지지 않고서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음을 알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화폐는 재화의 교환이나 거래의 수단입니다. 교환과 거래가 없어지지 않고는 화폐는 사라질 수 없습니다. 교환과 거래는 재화의 공급부족에서 기인하는 바, 재화의 교환과 거래가 소멸하기 위해서는 재화의 공급부족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생산이 로봇에 의해 대체될 수 있어야 하며, 모든 생산이 로봇에 의해 대체되기 위해선 고도의 로봇공학과 나노기술 그리고 생명공학까지도 발전해야 함을,
그런데, 현재 지구의 과학기술로는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지구 자체의 과학기술이 그런 수준에 도달하려면 앞으로 최하 수십년에서 백년은 걸릴 거라는 것을,
설령, 지구 자체의 과학기술이 그런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이전에 지구는 핵전쟁으로 파멸하든지 또는 원전 방사능 오염 등으로 인하여 인류의 생존이 불가능한 환경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을,
그럼 이대로 수십년 이상 체념하면서 고통 속에서 신음하든가 또는 파멸해야 하는지, 아니면 또 다른 선택은 없는지를,
그리고 그 선택은 인류를 창조한 엘로힘의 도움을 받는 것이 유일한 희망임을 알려야 하겠지요.
물론, 우리의 이런 대안 제시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사람들은 우리에 대한 잘못된 편견 때문에 귀기울이지 않을 것이고, 설령 어느 정도 관심은 갖는다 할지라도 허무맹랑하다느니 현실성이 없다느니 하면서 무시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금은 우리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고 무시할지라도, 이후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서, 마이트레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자본주의의 모순이 극에 달하고 인류의 생존 자체가 기로에 놓이는 상황이 될 경우, 인류는 반드시 지금 우리가 한 말을 다시금 상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하는 말이 아무런 반향이 없다 할지라도, 그 때를 위해서 이 순간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떻게?
인터넷과 SNS를 통해서,
그리고 우리의 사랑을 가득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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