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랑/그림 이야기

모딜리아니

영원한 울트라 2005. 10. 20. 08:05


 

모딜리아니

 


요절한 천재 화가, 모딜리아니는 독특한 그의 그림 만큼이나 잘생긴 외모와 독특한 삶의 방식, 그리고 가슴아픈 사랑으로도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22세에 파리로 건너온 이탈리아의 청년 모딜리아니는 그림으로 성공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내재해 있는 예술에 대한 열정이 제대로 표현되지 못하는 것 때문에 그는 평생을 방황하며 힘들어 해야만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허약했던 몸과 스스로 만족할 수 없었던 작품에 대한 열망들, 그리고 많은 파리파 화가들이 겪어야 했던 지독한 가난, 이런 것들이 그의 작품 속에 방랑하는 보헤미안으로 녹아 있습니다.

모딜리아니가 처음 파리에 왔을 때는 아틀리에 안에 피아노를 놓을 정도로 여유가 있었답니다. 그래서 그는 당시 가난했던 피카소에게 돈을 빌려주기도 했구요. 후에 부자가 된 피카소는 어려운 시절의 친구에게 그 돈을 정확히 갚았죠. 하지만 계속된 방황과 자존심 강했던 그의 본성은 쉽게 그의 이름을 파리의 화랑가에 올리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조각을 하기 위해 돌을 훔쳐야만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또 화가의 일생을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또한 그들만의 열정적인 사랑 이야기입니다. 혹자는 모든 화가들 중에 모딜리아니가 가장 잘생겼다고 평하기도 하는데요. 지독히 외로워 보이는 그의 큰 눈을 보기만 해도 많은 여자들은 모성본능을 일으켰답니다. 그에게는 모델이 되어주겠다며 찾아오는 여자들이 끊이지 않았으며, 그를 사랑하는 여자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못했던 그는 지독한 외로움으로 술과 마약에 빠져 들었으며, 성격 또한 점점 괴팍해져만 갔습니다.

그런 그에게 천국에서도 부인이 되어주겠다는 진실한 여자, 잔느 에뷔테른느가 나타나게 되었고 그녀로 인해 그는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33살의 모딜리아니는 자신보다 14살이나 어렸던 잔느로 인해 그의 생애 가장 큰 행복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1920년 겨울 어느날, 36세의 모딜리아니는 사랑하는 부인을 옆에 두고 피를 토하며 얼음장 같은 방바닥에서 쓰러지게 되었습니다. 모딜리아니가 죽은 그 다음날 그의 부인도 임신 9개월의 몸으로 뱃속의 아이와 함께 부모님의 집 6층에서 뛰어내려 그의 뒤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1917년 모딜리아니는 평생 단 한 번의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나체화가 미풍양속에 저해된다는 경찰관들의 지시에 따라 금방 철수해야 했습니다. 그 한 번의 개인전 또한 제대로 본 사람이 몇 되지 않았죠. 이렇듯 그의 그림은 그가 살아있을 때는 제대로 평가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죽은 후, 특유의 긴 목선과 눈동자가 없는 초상화에게 많은 이들은 눈을 고정시키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 속 인물을 보게 되면 작가가 느꼈던 모델에 대한 감흥에 무작정 빠지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고독한 그의 삶을 반영하는 듯 하지만 결코 부드러움을 잃지 않는 선과 색, 그리고 세잔에게서 인지, 아프리카 원시미술에서 인지 흘러 들어온 듯한, 단순하지만 우아한 형태들은 아직도 그림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에게 독특한 감상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세잔의 기법이 엿보이는 모딜리아니 초기 작품입니다. 유태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모딜리아니는 같은 민족 사람을 작품 속에 형상화 하면서 다시 한 번 그림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약간은 음울하고 고독해보이는 작품을 보면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었는 지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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