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02년 5월 23일
獨 에밀 놀데, 1913년 한국방문 인물화 그렸다
독일의 표현주의 화가 에밀 놀데(1867~1956)가 세계적인 서양 화가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를 방문, 노인 소녀 등의 인물화를 그렸던 것으로 밝혀졌다. 놀데는 우리나라를 방문하기에 앞서 이미 장승을 소재로 한 유화도 그렸던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미술대 강사인 김혜련(金惠蓮ㆍ38)씨는 22일 출판한 ‘낭만을 꿈꾸는 표현주의 화가 에밀 놀데’(열화당 발행)라는 책에서 놀데가 1913년 부인 아다 등과 함께 독일의 식민지였던 뉴기니를 여행하기 앞서 시베리아를 횡단, 우리나라를 방문해 펜과 잉크로 노인, 소녀 등을 그렸다고 밝혔다. 저자는 세계적인 화가가 우리나라를 방문한 것은 놀데가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일행은 우리나라의 이국적 풍경에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부인 아다는 자서전에서 “하얀 옷을 입은 아름다운 사람들, 황홀하게 아름다운 색동옷의 아이들, 연꽃이 피어나는 궁전의 연못…부드럽고 고상하며 매력적이며 순수한 여인들이 있던 서울”로 표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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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데는 우리나라 여행중 틈틈이 스케치를 했는데 그가 그린 노인 인물화는 식민 지배를 받고 있던 당시의 암울한 시대 상황을 반영한 듯 절망스런 표정을 담고 있으며, 소녀의 얼굴에서는 순수함과 사랑스러움이 엿보인다고 저자는 설명했다. 이들 그림은 현재 독일 북부 제빌에 있는 ‘아다와 에밀 놀데 재단’에 소장돼 있다.
놀데는 이에 앞서 1912년 독일 베를린민속학박물관에 보관돼있던 장승을 소재로 유화작품 ‘선교사’를 그리기도 했다.
저자는 “놀데는 장승이 정확하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숭배의 대상이라는 사실만은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며 “당시 기독교가 아프리카에서 선교 활동을 한다며 토속 신앙을 몰아내는 등 나쁜 행동을 많이 했는데 놀데는 순박한 아프리카 사람에 군림하려는 선교사를 장승의 뻣뻣한 모습에 빗대 표현했다”고 말했다.
저자는 1998년 독일 베를린공과대학에서 ‘에밀 놀데의 이국적 정물화와 독일어 접두사 ur과의 관계’ 로 예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번 자료는 논문 수집과정에서 찾아낸 것이다.
에밀 놀데는 독일 표현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히틀러가 ‘퇴폐 예술가’로 분류하며 더욱 유명해졌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독일 표현주의 미술의 거장 에밀 놀데 에밀 놀데(Emil Nolde, 1867-1956)는 20세기초의 독일 표현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인물로, 강렬한 색채와 거친 형상으로 동시대인들에겐 거의 ‘원시적’이라고 여겨질 작품들을 그렸다. 경제적 궁핍과 동료들의 몰이해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던 그는 ‘원초적 존재’를 꿈꾸며 이국적인 정물화를 그렸고, 멀리 남태평양의 열도까지 기나긴 여행을 떠났다. 시베리아를 횡단해 뉴기니로 향하던 1913년 서울을 방문함으로써, 서양미술사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한국을 방문한 최초의 현대화가가 되었다. 이후 1930년대에 나치로부터 퇴폐적·반게르만적인 예술가로 낙인찍혔으며, 작업 금지령을 받은 후에도 비밀경찰의 눈을 피해 ‘못다 한 그림들’이라고 불리는 수많은 수채화를 남겼다.
놀데의 매력은 아무래도 그의 삶을 관통하는 인간적인 ‘모순’에 있지 않나 싶다. 이는 작품 속에서 쉽사리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주제가 극히 다양할 뿐만 아니라 기법들도 빠르게 변화하며, 또 한 시기 안에서도 다양한, 때로는 서로 완전히 상반되는 기법들이 공존한다. 또한, 그의 자서전들을 읽게 되면 이러한 모순적인 모습들이 작품의 주제와 기법에서 그치지 않고 인물 자체로까지 확장됨을 알 수 있다. 편협한 민족주의적 정서를 주장하는가 하면 이국의 예술을 열렬히 칭송했고, 스스로 속세를 떠나 있음을 표방하는가 하면 베를린 분리파의 거두 막스 리버만에 대항해 미술계에 스캔들을 일으키기도 했다. 극단적인 반문명주의적 주장을 고수하면서도 함부르크의 항구 풍경이나 대도시 베를린의 밤 풍경에 본능적으로 매료되어 그 주제로 연작을 제작하기도 했다. 심지어 나치당에 참여한 적도 있었고 반유태주의적 주장을 공공연히 드러낸 적도 있었다. 놀데라는 인물은 이렇듯 확실히 자기 분열적인, 모순에 가득 찬 인물이었으며, 많은 모순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통해 삶을 초극하려 노력했던 한 명의 낭만주의자였다.
<자화상-파이프를 물고 있는 얼굴>
1907. 석판.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뮤지엄 오브 아트.
1913년 한국을 방문한 세계적 화가
놀데는 남태평양 여행 중에 한국을 방문했으며 그와 관련된 작품들을 남겼다. 이러한 사실은 특히 우리에게는 비교미술사의 입장에서 논의될 수 있는 흥미로운 사건이다. 1913년 가을 베를린을 출발한 놀데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몽골을 지나 서울에 도착했다. 그의 자서전에는 이에 관한 기록이 실려 있는데, 특히 그의 부인은 한국인과 한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글로 남겨 놓기도 했다.
놀데는 여행 중에 틈틈이 스케치를 했는데 한국 사람을 펜과 잉크로 속기처럼 그려 놓은 작품들도 있다. 간결한 표현 속에서도 강렬한 느낌을 전달하고 있는 소묘인 노인의 얼굴은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당시의 암울한 시대적 상황이 반영된 듯 절망스런 표정을 지니고 있다. 반면 어린 낭자를 그린 소묘에서는 소녀가 가질 수 있는 보편적 정서인 순수함과 사랑스러움이 엿보이는데, 여기에다 서양인이 투영하고 있는 약간의 이국적 신비감까지 겹쳐지고 있다.
또한, 놀데는 한국 방문 이전인 1912년에 이미 장승을 소재로 유화작품을 그린 적이 있다. 그는 장승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맥락을 정확히 알고 있지는 못했지만, 이 목조가 가지는 내면적 힘, 즉 마술적 의미부여를 본능적으로 읽었고, 이러한 느낌을 작품에 그대로 제시하고 있다.
<한국 노인> 1913. 펜과 잉크 소묘.
아다와 에밀 놀데 재단.
한국 방문을 포함한 놀데의 남태평양 여행은 무언가 새로운 것, 무언가 창조적인 것을 경험하려는 열의에 항상 가득 차 있던 놀데에게 어쩌면 필연적인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현실에 만족하거나 안주할 수 없는 숙명적인 방랑벽을 가지고 있는 것이 예술가의 일반적 속성 중 하나라면, 놀데는 서울까지 가서 한국 사람을 그리게 될 것을 예감이나 한 듯이 베를린에서 한국 장승을 먼저 그린 것이다.
에밀 놀데는 서양미술사 내에서 이미 확고한 평가를 받은 작가인데, 그렇다면 그는 한국을 방문한 최초의 세계적 화가이자 한국인과 한국 민속품을 그린 최초의 세계적 화가가 되는 셈이다. 우리의 입장에서 한국을 소재로 그린 놀데의 그림을 살펴봄으로써 놀데와 같은 서양예술가가 어떻게 타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는가를 확인하는 일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책의 구성 및 특징
제1장에서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독학으로 예술가의 길에 들어선 놀데의 개인적인 인생항로를 소개하며, 제2장에서는 놀데가 ‘고전주의’ 양식을 의도적으로 거부했던 이유 및 그의 독특한 조형능력을 추적한다. 제3장에서는 이 책의 중심 논제인, 놀데가 취한 원시주의의 특성을 설명하고 이국적 정물화가 그의 전체 양식발전에 끼친 영향을 검증한다. 제4장에서는 놀데 특유의 색채처리와 후기 수채화의 예술적 가치, 그리고 그의 예술관 ‘의도하지 않음’을 양식발전이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 마지막으로 제5장에서는 독일어 접두사 ‘우어(Ur)’의 의미를 분석함으로써, 이것이 다양하면서도 모순적인 놀데의 예술성 속에서 바퀴의 축처럼 자리잡고서 그의 창조력을 대변하고 있음을 밝힌다.
<가을 바다 19> 1911. 캔버스에 유채. 72.5X86.5cm. 아다와 에밀 놀데 재단.
북해와 발트 해 사이에 있는 유틀라트 반도는 놀데의 고향이 있는 곳이다. 그는 여름철 뿐만 아니라 가을철에도 때때로 이 지역에 머물며, 풍랑이 이는 거친 바다를 조그만 배로 헤치며 다니곤 했다. 그가 그린 가을 바다는 시각적 관찰에 의거한 작품이 아니라, 감각적 체험 뒤에 생겨나는, 감정의 분출구로서의 기록이다. 화면을 뒤엎고 있는 격렬한 붓의 속도와 불협화음적으로 병치된 색채의 에너지들은 가을 바다를 향한 놀데의 감정 그 자체이다.
이 책은 예술가에 대한 일반적인 소개서나 평전이 아니라, 예술과 관련된 여러 분야들이 놀데라는 한작가에게, 그리고 그의 작품세계에 어떠한 방식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치밀한 조직물이다. 한 작가의 면모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하여 예술에 대한 여러 가지 방법론이 적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그 시대의 독일 역사에 관한 지식이라든가, 놀데의 작품을 어떠한 미학이론과 연결시켜 바라볼 수 있을까 하는 문제라든가, 서양미술사 내에서 독일미술이 갖고 있는 복잡한 역학관계라든가, 모더니즘 형성기에 비유럽 미술이 어떠한 양상으로 서양예술가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에서부터, 색채에 대한 일반적인 반응과 예술가의 주관적 경험이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 예술가가 예술재료를 경험하는 과정 속에서 어떻게 물질이 정신과 연결되어 상호작용을 하게 되는지, 농촌 출신의 놀데가 사회적 또는 정치적 상황 속에서 노출시키고 있는 자기 모순을 어떻게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는지, 그리고 독일어 접두사 ‘우어’에서 어떠한 사변적 세계관을 읽어낼 수 있는지 등, 놀데라는 한 인간과 그의 예술세계를 다각적인 방향에서 분석해 보고자 했다.
그리고 놀데라는 화가를 본격적으로는 처음 소개하는 터라 그의 삶과 예술세계를 충실히 보여주고자 했다. 풍부한 자료사진은 물론, 그의 작품세계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도록 거의 모든 작품들을 생생한 컬러 도판으로 실었다. 또한 각 작품마다 설명을 달아 본문을 읽지 않더라도 그의 작품세계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반 고흐, 클림트 등과 같이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거장들만큼 에밀 놀데는 미술 전공자들뿐 아니라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가를 이해하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예술가이다. 그는 인간적 모순이 많았던, 그리하여 예술가가 갖고 있는 숙명적인 부조리를 우리 앞에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나약하면서도 강인한 인물이었다. 글.http://www.youlhwadang.co.kr/modernart/artessay/nolde.ht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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