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랑/그림 이야기

중용의 미학

영원한 울트라 2005. 12. 22. 13:33
중용의 미학

정병관 <미술평론가>


▲Work, 70×90cm, Oil on Wood, 1938
유영국 화백이 한국의 추상화의 선구자 중의 한 분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1940년대에 이미 기하추상화 작품을 한 그는 오늘날까지 약 반세기 동안에 추상화의 독특한 개인 양식을 수립하였으며, 1960년대 이후에는 '산'이라는 주제를 고수하여 산의 추상화가로 잘 알려졌다.

그는 세계 미술사적으로 볼 때 오직 전후 세대라고 보기에는 너무 앞선 작업으로, 전전 세대 1930년대의 추상운동인 '추상창조' 그룹세대의 추상미학에서 출발한 세계 추상미술의 선구자적 대열에 동참한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추상회화는 전후의 소위 앵포르멜과 거리가 멀고 오히려 전전의 주류였던 기하추상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전후에 새로운 추상운동을 자기의 개인 양식에 흡수, 통일하여 하드엣지 회화나 모노크롬 회화의 시대적 감각을 담은 새로운 자기 갱신을 계속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의 그림이 어느 미술양식이나 미학에 치우치지 않고, 항상 극단을 피하고, 과부족이 없는 중용의 지혜로 일관하여 제작 생활을 계속해 온 것으로 보고 싶다. '중용'이라는 단어가 미학 용어가 아니라 도덕철학 용어에 속하지만 이 말을 중심으로 그의 그림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플라톤에 의하면 중용이란 어디에 멈추어야 할 것인가를 알고, 그리고 거기에 멈출 줄 아는 지혜이다. 유화백의 그림은 이 원리로부터 풀려 나온 독특한 양식과 회화적 질을 자랑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다고 생각된다.

그의 그림은 감동에 바탕을 두지만, 극단적인 정열의 발산도, 흑백 회화의 무감동 상태도 아닌 독특한 기쁨의 명상에 관객을 잠기게 만든다. 이는 기하학적 양식과 자유 추상 사이에 유영국 양식이 자리를 정착시켰다고 생각된다. 구상과 추상 사이에서, 전통과 현대성 사이에서, 화면 구성의 지혜에 있어서 중도를 걷고 있다고 생각한다. 강한 것과 유연한 것 사이에 그 자신의 독특한 회화 세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작가의 의도보다도 조형성 그 자체의 분석이 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부분적으로 조금 자세한 고찰을 시도하여 본다.

<감동과 무감동 사이>

칸딘스키는 추상회화는 관객에게 감동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이것은 이브 클라인의 모노크롬에까지 지속된다. 화면구성이 없는 모노크롬도 역시 감동은 회화의 마지막 보루처럼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후 미니멀 미술이나 1970년대 초에 나타난 모노크롬 회화에서는 감동이 무시되거나 의도적으로 그림에서 제거되었다. 그 대신 개념적인 요소가 감동 대신에 중요시되었다.

무감동 상태의 그림이란 적극적인 감격을 불러 일으키는 서정주의 추상과 반대되는, 담백한 정서를 관객으로 제공하는 그림을 말한다. 유화백의 그림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러한 무감동의 그림은 단정하게 옷을 입고, 기하학적으로 정돈된 화실에서 깨끗한 빠렛뜨와 붓으로 조용하게 그려 가는 작품 제작 태도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라고 생각된다.


▲Work, 136×136cm, Oil on Canvas, 1970
그러나, 감동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보는 사람의 시선을 강렬하게 끌고 심금을 울리는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 그림들이 있다. 물론 이 감동의 원천인 그림, 또는 감동하는 관객에 따라서 차이는 있겠지만, 검정이나 회색, 백색 등의 모노크롬 회화가 관객에게 주는 무감동성에 비하면, 색채 그 자체가 주는 그리고 그 배치에서 야기되는 효과에 따라서 알맞은 감동의 상태로 관객을 유도한다고 말할 수 있다. 유화백의 그림에서는 추상표현주의 회화가 주는 격렬한 운동감에서 오는 감동은 찾을 수 없다. 완전한 정지상태는 아니지만 감동의 과열현상 같은 것이 없으며, 조용한 움직임이 화면에 태연한 것 같은 곡선을 따라서 생기면서 마음을 이끄는 작용을 한다.

<기하학과 서정 사이>

기하학적 추상은 서양의 과학 문명에 뿌리를 둔 분석적인 태도 위에 기초를 둔 것이라면 서정 추상회화는 다분히 동양적인 원리인 직관에 관계된다. 유화백의 그림은 몬드리안 같은 엄격한 수직, 수평선에 의한 정, 직사각형이나 정방형에 의한 분석적인 화면 구성에서는 거리가 멀지만, 그렇다고 자유로운, 아주 풀어 놓은 형태 또는 이전의 얼룩 같은 것으로 화면을 채우려고도 하지 않았다. 형태가 거의 없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앵포르멜 추상은 아니지만 형태의 윤곽선이 비교적 확실할 뿐 엄격한 기하학적 형태는 아니므로 그 중간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이것은 일반적인 경향이며, 때로는 기하학적인 수직, 수평선 또는 정방형, 직사각형, 삼각형 등이 다소 유기적인 곡선형과 결합된 화면도 상당수 있다. 물론 거의 때로는 기하학적인 화면도 있다. 기하학적인 엄격성은 색조의 부드러운 조화 또는 색면이 가지는 질감에 미세한 뉘앙스를 주어 모를 죽인 것에 다름이 없다. 또한 이 그림에서 완전히 기하학적이 되면 몬드리안에의 굴복과 같은 것이 느껴져서인지 모르지만, 위의 그림에서는 오른쪽 아래 부분에 가볍게 자유로운 호선을 아래에서 옆으로 그어서 완전 기하학을 파괴하였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이 하찮은 선이 서양적인 힘이 있는 화면에 동양적인 직관과 자발성으로, 조형적으로 보다는 정신적으로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한다.

시기별로 기하학이 강해지기도 하고 서정적인 화면이 밀려 오기도 하여 양극을 피하고 중도를 오고 가고 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조금 부드럽고 조금 강하다는 차이이지, 엄격한 기하학적 시기도, 완전히 풀린 서정적인 시기도 없다. 그래도 1960년대 말 경 서정적인 모호한 형태로부터 확실한 윤곽선으로 바뀌는 과정이 있었으며, 1970년대 이후 현재까지는 계속되는 안정된 시기 또는 환숙기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Work, 134×134cm, Oil on Canvas, 1975
미니멀 회화나 하드엣지 추상과 관계가 아주 없다고는 볼 수 없을 것 같지만 화가 자신의 말대로 하드엣지와 전연 상관이 없다고 해도 반박하기는 어렵다. 다만 시대정신 같은 공통성을 예술가로서 예민하게 느끼고 세계에 대하여 반응한 결과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추상과 구상사이>

유영국 화백의 그림은 휘슬러의 심리주의 회화론이나 칸딘스키의 내적 필연성에 입각한 추상화론에 연결시키는 것보다는 1950년대에 파리파 추사의 일파인, 자연에서 출발하여 추상적 구성주의에 도달한 비씨에르, 마네씨에 그리고 에스테프와 같은 일단의 화가들과 접근시켜 생각할 수 있다. 물론 한국이 낳은 추상미술의 선구자 중의 한 사람이라는 관점에서는 한국의 칸딘스키나 몬드리안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엄격하게 그의 그림을 따져 본다면 역시 전후 프랑스파 추상화가들과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접근법은 그림에서가 아니라, 자연과 예술과의 상호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사상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에스테프가 1930년대에 소위 후기 입체주의 구상에서 점차적으로 추상에 도달하는 과정을 유화백에게서는 볼 수 없다. 그가 1930년대 문화학원 시절부터 단도직입적으로 아르프의 추상부조를 좋아했다는 현대미술에 대한 감각의 전위성은 1930년대에 파리에서 결성되고 단체전을 열기도 한 '추상-부조' 그룹 화가들의 진취성과 비교할 수 있다. 사실 1940년대 유선생의 기하학적 추상작품은 순수 기하추상화이며, 몬드리안과 도스브르그의 신조형주의 추상에 원칙적으로 접근된다. 이 때부터 어떤 아류가 아닌 독창성을 획득한 작품들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그림에서 수직선과 직사각형은 몬드리안을, 사선과 불규칙한 사각형은 도스브르그를 연상시키지만, 유영국의 작품임을 구별짓는 요소는 그림 상우편 서리에 세로로 길게 그린 부드러운 곡선형의 분홍빛 작은 형태이다.

자연주의적인 '산' 풍경 모티브로 한 추상작업이 196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밀물과 썰물처럼 자연주의적인 요소가 두드러지기도 하고 추상성이 압도하기도 하며 계속되고 있다. 인상주의적인 광선의 표현이 두드러진 초기작품의 자연주의적인 구상성은 1970년대 이후의 하드엣지적인 윤곽이 확실하고 평면화된, 그리고 밝고 강한 색채 추상으로 변화되었으나, 순수추상이라고 말하기엔 언제나 변함없이 산을 연상시키는, 그리고 때로는 들과 바다, 나무들과 길 같은 단순화된 형태를 짐작할 수 있다.

자연형태를 단순화한 것뿐만 아니라, 순수추상 형태도 여기에 결합시켜 조화를 얻고 있다. 그림에서 추상성은 다소 불규칙하고 때로는 곡선형이 되는 경향이 우세하다. 물론 엄격한 삼각형을 겹친 추상 형태가 산이라는 이미지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결론적으로 이는 추상과 구상 사이에서 균형을 얻은 작품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전통과 현대성 사이>

얼핏 보기에는 한국의 전통이나 서양의 전통과 거리가 멀 뿐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유 화백의 그림이 풍기는 침착한 분위기는 예를 들면, 중국의 심주가 덤덤한 필촉으로 그린 조용한 산수화를 연상시킨다. 서양화의 전통에서 보더라도 고전주의 회화가 지니는 정적이고 조용한 분위기와 유 화백의 그림은 서로 어울린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서는 '산' 이라는 모티프는 전통 산수화와 그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색채 회화일 뿐 아니라 추상화된 '산'과 전통적인 수묵산수와는 거리가 있지만 인간 세계가 아닌 우주적인 공간과 철학적인 상징성이 문인산수에서 아주 단절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유 화백의 조용한 직업화가로서의 제작 생활이 진실된 화가에의 길을 한결같이 계속하기에는 매우 어지러운 현대사회에서 볼 때 , 지난날에 세상을 버리고 그림에 생애를 바친 승려 또는 문인화가들과 대등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그가 일본 유학을 한 외에는 서구화단과 거리를 두고 한국을 지킨 토박이 한국 화가라는 것도 그를 한국의 전통적인 산수화 모티프에 평생 매달리게 한 요인 중의 하나일 수도 있다.

비록 산수화의 철학적 의미는 희박해졌다할 지라도 그의 그림은 자연을 생각하는 정신에 있어서는 옛사람들과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서양적인 그림을 그리는 화가, 말하자면 '서양화가'로 치부되는 분류법에 따라 동서양을 분리시키는 것도 문제가 없지 않다. 서양화 재료를 쓰지만 동양적일 수도 있고, 동양화 재료를 써도 서양적일 수 있다. 나아가서는 현대회화를 서양화라고 분류할 것인가도 신중을 기해서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유 화백뿐만 아니라 유화를 그리지만 한국 화가라는 민족적 개성이 뚜렷한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서양인들의 그림과 비교해 본다면 유영국 화백은 한국인의 그림이라는 것이 산과 들, 하늘과 바다 같은 모티프에서, 그 소박하고 단순한 형태에서, 그리고 그 초록색과 붉은색, 청색과 백색 등의 색채 배열에서도 한국사람만이 할 수 있는 그림이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전통과 현대성 사이의 단절은 뿌리깊은 민족적 개성이나 정신세계까지 그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영역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영국 화백은 한국의 전통과 서양의 고전주의적 전통까지 간직한 현대화가라고 말할 수 있다.

<대조와 조화 사이>

유 화백의 그림은 형태와 색채 양면에서 모두 대조의 원리와 조화의 원리가 균형있게 사용되어 화면이 끝없는 변화 속에서 동질성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형태 하나하나의 창조보다는 형태와 형태사이의 관계가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체적인 균형으로 보아서 잘된 그림이 되는 것이지 부분적인 효과가 주목되지는 않는다.


▲Work, 136×136cm, Oil on Canvas, 1968
사실 몇 년 동안만 그려도 더 이상 그릴 것이 없을 법한데, 무려 30년이 넘도록 오로지 '산' 모티프에만 매달리고, 그림 하나하나가 각기 다른 구도와 색감 그리고 형태의 변화를 표현한 것을 보면 경이로움이 앞선다. 얼마나 인내심이 강한 화가인가. 나아가서는 얼마나 능력이 있는 화가인가. 재주와 인내가 없으면 도저히 오랫동안 이끌고 갈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이인문이 '강산무진도'라는 끝없이 펼쳐지는 산수도를 그린 것으로 알려졌다. 유 선생의 그림을 바라 보면 세월에 항거하고 공간과 대결해 마지막으로는 자기자신의 인간으로서의 운명과도 결판을 내는 힘을 느끼게 되는 것은 필자 혼자만이 아닐 것이라고 본다.

화면을 구성한 평평한 색면이 열 손가락으로 헤아리면 되는 절약한 색면수로 한정되었으며, 색채는 더욱 범위를 좁혀서 대여섯 가지의 색으로 더욱 절제하였다. 형태의 크기도 크고 작은 변화가 별로 없이 중간 형태들이 몇개 어울리거나 병치되어 있다. 넓은 공간과 협소한 공간의 대조는 거의 없고 가끔 짧은 선이 그어져서 단조로움을 깰 뿐이다. 최소한의 구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형태와 색채를 사용한 경제적인 화면관리는 틀림없이 미니멀적인 화면이라는 인상을 줄 것이다. 그렇다 할 지라도 미니멀 그 자체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미니멀이나 하드엣지 회화의 영향이라고는 말할 수 없으며, 동시대적인 우연의 일치 현상이라고 밖에는 말하기 어렵다.

미니멀 회화 또는 모노크롬 회화가 가지는 극단적인 황폐감을 회피하면서, 단순화되어 가는 기하학적 추상의 지류를 타고 있으며, 고전적인 대조와 조화라는 조형원리를 고수하지 않는 일종의 '중용의 원리'같은 것을 수립했다고 볼 수 있다.

<밖에서 오는 것과 자기 것 사이>

국제적인 새로운 미술조류가 밀려 와도 절대로 가볍게 접근하지 않는 슬기를 창조적인 예술가라면 가져야 하며, 특히 자기 양식의 성숙된 시기에 도달한 작가가 새롭다고 해서 외래 양식에 그때 그때 대응하다 보면 자기의 고유한 개성과 자기 양식을 상실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유 선생의 그림이 이러한 대가들이 가져야 할 무게있는 태도를 반영하고 있음은 재언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자신을 고수하여 시대 감각에 뒤떨어졌다는 인상을 주지도 않는 대응, 적절한 대응이 심층적인 마음상태로 이루어진 경우가 유 화백의 경우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서 동일한 것 같지만 항상 새로운 작품이라는 인상을 주는 창조를 거듭하는 작가라고 생각된다. 항상 새롭게 거듭나는 작가, 자기 갱신을 끊임없이 계속하는 화가라는 인상을 그의 그림을 볼 때마다 관객으로 하여금 느끼게 하는 데에는 각고의 노력이 그의 천재성과 함께 크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에 걸쳐서 청색조 아니면 붉은 색조의 조화로 모노크롬 회화를 이루는 작품들이 있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모노크롬이 아니지만 모노크롬 회화라는 느낌을 주는 것은, 한가지 색이 주는 감동을 한가지 색조 안에서, 변화있게 주는 묘미를 가졌기 때문이다.

'산'그림 뿐만 아니라 '물' 그림도 그렸다는 것은 1980년대에 그린 몇 폭의 바다 풍경 비슷한 화폭 때문이다. 바다 풍경 같지만 철저하게 평면화된 색면들의 관계에서 오는 화면은 추상성을 배제할 수 없다. 1960년 경에 이브 클라인이 지중해 바다 풍경의 파란 빛과 푸른 하늘에 감동되어 '청색 모노크롬'을 발명했지만, 그의 청색 그림들은 어둡고 침침하여 밝은 지중해의 파란색 감동은 느끼기 어렵다. 오히려 유영국 화백의 그림에서 지중해의 밝은 햇볕 아래 밝고 푸른 바다의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은, 모노크롬이 진정 색채 그 자체가 주는 감동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면 유 화백의 그림이야말로 성공한 모노크롬 회화라고 말할 수 있다. 이브 클라인은 신비주의적인 개념이 농후하고, 유영국 선생의 청색 그림은 그림 그자체로서 성공한 모노크롬 회화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도 밖에서 온 미술사조를 어떻게 자기 양식으로 흡수하여 색채가 주는 감동을 세계적인 수준에서 실현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강한 것과 약한 것 사이-대체로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추상화면은 단단한 질감으로 유리나 철판같은 매끄러운 느낌이며, 이브 클라인의 청색 모노크롬은 대체로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개성의 흔적을 없앤다고 롤러로 물감을 칠하거나 아예 바탕에 니스를 칠하고 마르기 전에 안료 분말을 그 위에 뿌리기도 하였기 때문에 광선을 흡수하는 침침한 화면이 되었다. 유 화백의 그림은 대체적으로는 몬드리안의 이 경성색면과 이브 클라인이 연성색면의 중간 정도인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상태라고 본다. 그러나 일률적으로 처리된 것은 아니다. 비유를 하자면 나무 또는 천이 가지는 질감을 느끼게 되며, 때로는 부드러운 솜같이 연하고, 구름처럼 가볍기도 하다. 선도 철사처럼 강한 선이 아니라 약한 명주 실처럼 품위가 있는 선이던가 파스텔조의 부드러운 불연속적인 선들이 한 화면에 놓여진다. 숨쉬는 색면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알맞은 질감의 화면들이다.


▲Work, 65.5×91cm, Oil on Canvas, 1994
윤곽선이 정확하게 경계를 이루거나, 요철이 있는 부정확한 선으로 이루어졌거나, 또는 그림 전체의 분위기를 지배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색면의 질감과 윤곽선의 강약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매끄러운 색면을 부드러운 선으로 두를 수도 있고, 부드러운 색면을 강한 선으로 매듭지을 수도 있다. 바탕과 선은 상호보완 작용을 하는, 말하자면 강한 것과 약한 것을 조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부드러운 화면도 아주 맥이 빠지지 않고 강한 화면도 숨쉬는 여유를 갖게 된다.

색채 배합에 있어서 강한 부분과 약한 부분의 교묘한 통합을 볼 수 있다. 강한 색은 순도가 높거나, 검정이나 흰빛이 아니면 검정에 가까운 저채도의 청색이나 녹색의 색면 또는 선이 된다. 검정이나 짙은 색은 깊이를 측량할 수 없는 한정없는 공간감을 느끼게 하며, 깊은 사색적인 감정을 유발한다. 그것은 또한 육중한 무게를 느끼게 하며 그림 전체의 무게를 아주 가볍지도 않고, 또 아주 무겁지도 않은 쾌적한 상태를 유지하게 한다. 때로 짙은 초록빛 산의 중첩과 더불어 그림 윗편에 먼동이 트이듯이 장미빛 하늘이 한줄기 선 모양으로 밝게 처리되기도 한다. 철학적인 의미가, 정신의 고양을 상징하는 산수화에서의 주제의식이 그림에 있는 것 같다. 유영국 화백이 동해안에 있는 고향을 가고 오면서 볼 수 있었던 치악산의 모습이 어느 그림엔가 나타나 있다면, 그 그림이 바로 그 산의 깊고, 높고, 무거운 산의 모습이 아닌가 상상해 본다.

대체로 뉘앙스의 미학이 아니라 대담한 색면 배치의 무뚝뚝함이 있지만, 뉘앙스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1970-80년대에 백색 화면상에 눈으로 식별하기 어려운 뉘앙스를 표현한 다분히 개념화된 모노크롬 화가들에 비하면, 대담한 화면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얼마나 뉘앙스가 풍부한 그림인가. 얼룩같은 질감이나 하늘을 날으는 구름같은 경쾌한 텃치같은 것이 화면 여기저기에서 발견된다.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강한 것과 약한 것을 안배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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