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랑/그림 이야기

미래파...

영원한 울트라 2006. 1. 23. 15:49

Carlo Carra

 

Leaving the Theatre

 

Leaving the Theatre, 1909,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London

 

 

카라의 작품은 큐비즘의 콜라주가 어떻게 미래주의 강령에 맞게 상용 되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글자들은 정치적인 의미를 확실히 하고 있는데, 마치 소리나 말처럼 당시 고조되고 있던 전시의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다. 그는 작품에서 왕과 군대를 찬양하였고 사이렌과 군중의 소음을 시각적으로 나타냈다.

 

 

 

The Horsemen of the Apocalypse

 

The Horsemen of the Apocalypse, 1908, oil on canvas, Art Institute of Chicago

 

 

그는 또  건물의 페인트공, 실내장식가, 프레스코 화가로 일했었다. 1910년 정치적 주제를 갖은 분할주의 풍의 작품을 그렸다. 파리를 여행하고 돌아온 후, 이 작품의 공간구성을 입체주의적 분할시각으로 재구성하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동안 카라는 형이상학 회화의 유파를 활성화시키며, 불안감을 유발하는 도상을 수용하여 아리러니나 허무주의성향이 배제된 작품을 그린다. 카라는 '형이상학적 회화장르'를 신비적-고대적인 양식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순수파미술과 프리미티비즘미술을 종 합하고자 하였다. 동시에 그는 예술과 정치의 만남을 지향하는 미술이론을 창안해내고 이탈리아의 오래된 전통에 뿌리박은 조형적 가치로 복귀할 것을 주장한다

 

 

 

Giacomo Balla
(1871-1958)

 

 

 

 
 
Dynamism of a Dog on a Leash
1912
Oil on canvas
35 3/8 x 43 1/4 (89.9 x 109.9)
Albright-Knox Art Gallery, Buffalo, New York
 
 
 

발라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미래주의 화가이다. 그는 20세기 초 파리에 머물면서 신인상주의 화가인 쇠라와 시냐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빛과 색채에 열중하여 초기에는 인상파적 화풍으로 그렸으나 1910년 이후 미래주의를 선언하고 기수가 되었다.

 

대표작으로는 ‘쇠줄에 끌려가는 개의 운동’ ‘바이올리니스트의 손’ ‘아치형의 램프’ 등이 있다.


그의 작품은 유행하던 인상파의 영향이 많이 남아있긴 하지만 평면 안에 운동감과 시간을 끌어들인 매우 획기적인 시도였다. 마치 에니메이션의 연속적인 그림이나 영화 필름에서 볼 수 있는 시간차를 두고 일어나는 동작을 점묘 기법으로 그려 ‘한 공간 안에서 동시에 이루어지는 운동’이라는 미래주의 이론을 만든 작품이다. 점묘법은 형태를 색점으로 나타내는 것으로서 선과 색이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음으로 흔들거리는 물체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일찍이 마네가 ‘루앙 성당’과 ‘노적가리’ 등 빛의 움직임에 따라 달라 보이는 사물을 여러 작품으로 표현한 적이 있는데. 발라는 그 여러 작품을 한 화면에 모아놓았다고 볼 수있다. 마네가 사물의 고정되어있는 모습을 통하여 시간의 변화를 그렸다면 발라는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나는 동작의 변화를 그리는데 중점을 두었다. 현재 눈에 보이는 모습과 조금 전에 일어났던 모습의 잔상들의 장면을 모은 것이다.

 

질주하고 있는 말의 다리는 4개가 아니라 20개이다’라는 미래주의 작가들의 주장은 보고 있는 것과 기억하고 있는 것을 모아 관객의 관심을 화면으로 집중시키려는 의지를 나타내는 말이다.


당시 이탈리아는 국가의 공업화를 매우 서두르고 있었기 때문에. 발전을 위한 성급한 추진력에 강요라도 당한 듯 미래주의 작품들은 언뜻, 관객이 진정으로 예술에 기대하는 진지함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예술이 그들이 원하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미래주의 미술은 현대예술이 새로운 장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은 틀림이 없다.

 

 

 

 
Gino Severini
 
 
Armoured Train
1915
Oil on canvas
116.5 x 87.5 cm
R.S. Zeisler Collection, New York
 
 
미래주의는 날로 달라지는 기계문명에 발맞추어 도시의 부산한 움직임과 속도를 예술로 표현하고자 했던 미술운동이다. 즉 현대 문명의 가치가 속도에 있다고 본 것이다. 예술이 예술 자체로 고고하게 독립되어 있던 것에서 사회의 일부가 되어 시대를 앞서 나가기를 기대하면서요. 그러자니 고요하고 엄격했던 전통 학습법을 부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즉 모든 것을 버리고 이제 우리가 예술에 있어서 새로운 미래가 되자는 것이 곧 미래주의의 목표였다
 

세베리니는 이런 미래파와 입체파의 양식을 종합하여 이탈리아 외의 국가에서 미래파 운동을 인정받게 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그는 후에 저명한 미래파 선구자가 된 이탈리아의 점묘파 화가 자코모 발라의 문하생으로 1900년에 그림을 시작했다. 그는 프랑스의 새로운 회화에 관한 발라의 이야기에 자극받고 1906년에 파리로 옮겨가 입체파 화가 브라크와 피카소, 작가 기욤 아폴리네르 등의 주도적인 프랑스 전위예술가들을 만났다. 그는 1910년까지 줄곧 점묘법을 이용한 작업을 했으나, 그해에 밀라노의 시인 마리네티가 최초의 미래파 선언문을 작성하자 거기에 서명했다.
 
그러나 그는 표면상으로는 미래파의 공식적인 미학적 입장을 지지했지만, 그림에서는 인물을 형상과 속도의 원천으로 사용했다.그는 특히 밤의 술집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러한 작품들에서는 율동적 형태와 활기 있고 명멸하는 색채로 화면을 가득 채움으로써 운동감과 음향의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타바린 무도회의 움직이는 상형문자 Dynamic Hieroglyph of the Bal Tabarin〉(1912, 뉴욕 현대미술관)는 밤 생활을 다룬 주제의 연장선상에 있으나, 이 작품은 입체파의 콜라주 기법(춤추는 사람들의 옷에 붙인 실제 의복장식)과, 가위 위에 올라탄 사실적 누드와 같은 엉뚱한 요소들을 결합시킨 것이었다.
 

세베리니는 〈적십자 열차 Red Cross Train〉(1914,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와 같이 전시를 다룬 작품들에서 잠시 동안 전쟁과 기계의 힘을 찬양하는 미래파의 원리를 드러내보였을 뿐이었다. 오히려 그는 점차 입체파의 독특한 형상에 경도되어가면서 〈빛의 구심적 팽창 Spherical Expansion of Light〉(1914, 밀라노 리카르도와 마그다 주케르 컬렉션)에서 보여지듯이 여전히 점묘파와 미래파의 장식적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세베리니는 1921년에 신고전주의적인 구상양식으로 선회하여 남은 생애 동안 많은 장식 패널과 모자이크를 제작하면서 줄곧 그 화풍을 견지했다.

'미술사랑 > 그림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민화이야기2  (0) 2006.01.27
민화 이야기  (0) 2006.01.27
칸딘스키와 클레의 추상 미술  (0) 2006.01.19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0) 2006.01.16
시대별로 본 비너스 그림  (0) 2006.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