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민화」는 '백성의 그림'인가?
1. 민화는 과연 백성의 그림인가?
주로 후(後)조선시대에 그려진 그림, '누가 그렸는지 알 수 없는 그림'을 우리는 '민화(民畵)'라고 부른다. '민중이 그리고,
민중이 즐겼고, 그래서 민중의 꾸밈없는 정서가 우러나는 그림'이 민화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하지만 그게 사실인가?
'민화'는
17∼18세기에는 속화(俗畵), 잡화(雜畵)라고 불렸다. '속된 그림', '잡스러운 그림'이라는 뜻이다. '별화(別畵)'라고도 불렸다. 따로
그리는 그림이란 뜻이다. 어느 쪽이나 별로 좋은 뜻은 아니다.
한글이 「훈민정음(訓民正音 :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이라는
좋은 이름이 있었어도 조선의 사대부들은 서기 1897년(단기 4230년)에 훈민정음을 대한제국의 '국문(國文 : 나라의 글)'으로 정하기 전까지
한글을 소리글이라는 뜻의 '언문(諺文)', 여자들이 쓰는 글이라는 뜻의 '암클'이라고 부르며 천하게 여겼고, 서기 1938년(단기 4271년)에
한글학자 주시경 선생이 비로소 '한글'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오늘날까지 우리는 우리 글을 한글이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다. 속화,
잡화, 별화라고 불렸던 민화는 식민지 시절에 와서야 '민화(民畵)'라는 '비교적 그럴듯한 이름'을 얻었고 우리는 이 그림을 '백성의 그림'으로
믿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사실일까? 후조선이 '이조(李朝)'라는 잘못된 이름으로 불렸듯이 이 민화도 이름이 잘못 붙은 게
아닐까? 우리가 풍물굿과 풍물굿을 이어받은 사물놀이를 '농악(農樂)'이라는 이름으로 잘못 불렀듯이, 그림의 성격은 '백성의 그림'과는 어울리지도
않는데 '민화(民畵)'라는 이름으로 잘못 부르고 있지는 않을까?
만약 사실이라면, 결코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땅줄기도
정맥, 정간, 대간이라는 이름을 잃어버리고 산맥(山脈)이라는 엉터리 개념 - 이 땅에 맞지도 않는 - , 엉터리 이름을 쓰고 있고, 풍물굿이라는
말 대신 농악(農樂)이라는 말을 쓰고 - 그럼 산간 마을이나 바닷가 마을에서 하면 산악山樂, 어악漁樂이란 말인가? - '진'이라는 이름 대신에
발해라는 이름을 쓰고 남북국 시대(어떤 이는 양국兩國시대로 부르자고 제안한다) 대신에 '통일(?)신라시대'라는 엉터리 이름을 쓰는 판국에
'민화'까지 엉터리 이름이라면, 우리는 엉터리 이름으로 가득찬 엉터리 역사를 배우고 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후세를 위해서라도 이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며, 바로잡아야 한다.
2. 일본인이 붙인 '민화(民畵)'라는 이름
먼저 '민화(民畵)'라는 이름이
언제, 왜, 누가 지은 이름인지부터 알아보자. 민화라는 이름은 서기 1937년(단기 4270년) 일본인 도예가 유종열(柳宗烈. 야나기
무네요시)이「공예적 회화」라는 글에서 "민중에서 태어나 민중을 위해 그려지고 민중에 의해 쓰여진 그림을 민화라 부르자."라고 주장한 뒤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이 민화라는 말은 일본의 길거리에서 팔리는 싸구려 그림인 대진회(大津繪. 오쓰에)를 가리키는 말이었다가 서기
1959년(단기 4292년)부터 조선의 '이름없는 그림'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그 뒤부터 지금까지. 특별히 그림에 "아무개가 그렸다."고
적힌 그림이 아니면 무조건 '민화'로 이름붙이는 경향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결국 민화라는 이름은 20세기 일본의 도예가인
유종열(柳宗烈)이 자기나라의 싸구려 그림에 갖다 붙인 이름이고, 그 말이 우리 나라에 있는 '누가 그렸는지 알 수 없는 그림'에 붙이는 이름이
되었으며, 작품의 수준이나 기법이나 소재, 주제의식을 가리지 않고 이름이 없는 그림이면 무조건 '백성의 그림'으로 보아 '민화'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잘못된 일이다.
"왜인이 지었다고 꼭 뿌리치란 법이 있나요? 좋은 이름이면
그대로 쓰죠." 그렇지 않다. 이 이름이 단순히 왜국에서 만들어진 이름이라고 해서 뿌리치는 것이 아니다. 이 이름을 붙이고 사는 그림 가운데에는
'백성의 그림'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수준 높은 그림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 '민중의 순수한 감각'이라고 보기에도 어려운 그림도 많다. 그런
그림들에게 - 아무리 화가의 이름이 없다고 해서 - '백성의 그림'이라는 이름의 자로 멋대로 재어서 거짓 이름을 줄 수 있는가? 따라서 나는
'민화'라는 이름은 제한되어야 하며 되도록 다른 이름을 새로 붙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3. [민화]속에 숨어 있는 비밀들 -
숨겨진 그림문자
[화조모란도(花鳥牡丹圖)]라는 그림이 있다. 꽃이 피고 새가 우짖는 그림이다. 꽃은 모란이다. 따라서 화조모란도는
모란꽃이 피어 있고 그 꽃에 새들이 앉아있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병풍으로 만들어져 신혼부부의 방에 둘러쳐졌다. 모란은 부귀를 상징하고 새들은
언제나 쌍으로 그려진다. 무슨 뜻일까?
새들은 원래 모란에 앉지 않는다. 잎이 무성해 앉기 불편하고 먹을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림에서는 새들이 짝을 지어 모란꽃에 앉아 있다. 이 새들은 현실속의 새가 아니다. 이 새들은 부부를 나타내고 - 짝을 지어 앉아
있으므로 -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꽃 위에 앉아있는 것은 부부가 부귀를 누리며 - 실제로는 큰 탈 없이 - 살라는 축원을 뜻한다.
또다른 화조모란도에는 새 두 마리가 겹쳐 그려져 있다. 그것도 한 마리가 동쪽을 향해 그려져 있으면 다른 한 마리는 몸이 서쪽을
향해 그려져 있다. 그 두 마리가 중간에서 몸이 엇갈린다. 겹쳐진다. 그리고 두 마리는 고개를 돌려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
왜일까. 균형을 맞추려는 것일까? 아니다. 이들은 암수 두 마리의 새이고 이들이 겹쳐져 있는 것은 교미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들
새 또한 부부를 나타낸다. 앞서의 화조모란도에는 단지 함께 있는 모습만이 그려지지만 이 그림에서는 아주 노골적으로 두 마리 새가 겹쳐져서
부부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는 보통 백성들의 바램이 나타난 그림이라 해도 괜찮다.
4. 시청각 교재였던 '이름없는
그림들'
이번에는 그림으로 그려진 글자를 보자. [강륜문자도]라는 그림이 있다. 잉어와 부채와 죽순, 그리고 가야금과 복숭아가
그려져 있다. 이들이 '효孝'자 모양을 만들고 있다. 모양이 '효孝'자이니 효도를 다룬 그림이다. 그럼 왜 잉어와 부채와 죽순을 그렸고 가야금과
복숭아가 그려졌을까? 옛날 효자들의 이야기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왕상은 새어머니가 잉어를 먹고 싶다고 말하자 얼음판에 나가서
잉어가 튀어나오게 해 달라고 빌었다. 그러자 잉어가 튀어올랐다. 맹종은 겨울에 죽순이 먹고 싶다는 어머니의 바램을 들어드리려고 대나무밭에 가서
펑펑 울었다. 눈물에 녹은 대밭에서 죽순이 솟아 나왔다. 황향은 여름에 부채질로 어머니의 침구를 식혀 드리고 겨울에는 먼저 침구에 들어가 몸의
열기로 침구를 따뜻하게 데웠다. 모두 후조선 시대 유교 도덕을 가르치려고 쓴 '교과서'『삼강행실도』와『오륜행실도』에 나오는 효자 이야기들이다.
그러니까 [강륜문자도]의 잉어, 부채, 죽순은 모두 효자와 관련된, 그리고『삼강행실도』와『오륜행실도』에 관련된 것들이다. 잉어는
왕상이 잡은 잉어요, 죽순은 맹종이 얻은 죽순이고, 부채는 황향이 여름에 어머니의 침구를 시원하게 식히던 부채인 것이다.
이런
그림을 앞에 놓고 그림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그림 속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짚어 가면서 유래를 알기쉽게 가르쳐 주던 그림이 바로
[강륜문자도]이다. 글자를 잘 모르는 사람이나 아이들에게 효도를 가르치는 '시청각 교재'였던 것이다. 이런 그림이 '단순한 민중의 그림'이 될
수 있는가? 이것은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가르치려고 만든 교육수단이다.
[강륜문자도]중 충忠 자도 뜻이 있다. 잉어와 용과 새우,
조개로 그려진 이 그림은 잉어의 입에서 용이 튀어나오고, 조개와 새우가 옆에 곁들여진 모습으로 충忠 자 모양을 그리고 있다. 우선 잉어에서 용이
튀어나오는 모습은 과거급제를 가리킨다. 어변성룡(魚變成龍 : 물고기가 바뀌어서 용이 된다)이라는 말은 선비(잉어)가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아치(용)가 된다는 뜻이었다. 벼슬아치는 임금을 모셔야 한다. 그래서 급제와 충성은 똑같은 개념이었다.
새우는 한자로
하(蝦)이고 조개는 한자로 합(蛤)이다. 하합(蝦蛤)이다. 이 하합은 화합(和合)과 발음이 같다. 왕과 신하가 화목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그림은 과거급제해서 벼슬아치가 되면 임금을 섬겨야 하고, 임금과 화목하게 지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충성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시청각
교재였다.
[죽실봉황도(竹實鳳凰圖)]라는 그림이 있다. 말 그대로 열매가 열린 대나무와 봉황이 그려진 그림이다. 대나무가 그려져
있고 봉황이 대나무 아래에 앉아있다.
봉황은 '천길을 날고, 배가 고파도 조를 쪼아먹지 않고 오직 대나무 열매만 먹는 새' 였다.
대나무 열매는 대꽃이 피고 난 다음 열리는 열매인데 30년, 60년, 또는 120년 만에 대꽃이 필 때도 있다. 그만큼 잘 열리지 않고 구하기도
힘들다. 게다가 대꽃이 피고 나면 대나무는 말라죽는다. 그래서 더욱 구하기가 힘들다. 구하기 쉬운 곡식을 먹지 않고 굶을지언정 이런 대나무
열매만 먹는 새가 봉황이었다. 그래서 청렴함의 상징이다.
청렴함은 유교사회에서 관료들에게 요구되던 덕목이었다. 그래서 죽실봉황도는
관리의 청렴함을 강조하는 그림이었다. 이런 그림이 과연 민초들의 '순수한 바램'을 그린 그림이었을까. '민화'라는 이름을 의심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5. 하늘에 바치는, '하늘사람'이 하늘에서 보고 그린 그림들
[송축책가도(頌祝冊架圖)]라는 그림을
보자. 이 그림은 책 몇 권을 담은 책선반들을 가득가득 쌓아놓은 그림이다. 주로 아래에서 위로 수직으로 탑을 쌓아 올렸다. 또 가야금과 붓과
종이와 수박과 모란, 병, 수석(壽石)이 곁들여진다. 책을 다룬 그림에 수박과 수석과 모란이 곁들여졌다. 왜 그럴까? 그냥 책이 쌓인
서고(書庫)를 다룬다면 책만 가지런히 꽃아 놓으면 될 일이다. 그런데 책이 서가에 꽃혀 있지 않고 엉뚱한 물건들 - 병, 수석, 수박, 모란,
오이 - 과 함께 있다. 해답은 바로 그 '엉뚱한 물건들'과 책이 가리키는 뜻에 있다.
책은 문과 급제나 높은 벼슬을 뜻한다.
그리고 수박과 오이는 - 씨가 많기 때문에 - 많은 자식을 둔다는 뜻이다. 수석은 어떤가? 돌은 오랫동안 바뀌지 않고 오래오래 남아 있기 때문에
오래 산다는 뜻이다. 모란은 앞서 말한대로 부귀영화다. 병은 평안하다는 뜻인 평(平)과 발음이 같다. 따라서 송축책가도는 평안하게 오래오래
살면서 자손도 많이 남기고 과거에 급제해서 높은 벼슬을 받아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 주십시오. 라고 비는 그림이다.
이 그림의
시점도 중요하다. 책들이 그냥 쌓여 있는게 아니라 수직으로, 아래에서 위로 탑처럼 쌓여 있다. 책의 탑들이 하늘을 향해 솟아 있다. 그림을
이쪽에서 저 위를 향하는 시선으로 그렸다. 왜 이렇게 그렸을까? 이 그림이 하늘에 대고 비는 기원용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하늘을 향해, '위'를
향해 제물을 쌓아놓고 빌 듯이, 자기가 바라는 것들을 하늘이 볼 수 있게, 위에서 볼 수 있게 탑을 쌓듯이 쌓은 모습으로 그린 것이다. 자기가
보고 즐기려는 그림은 아니다.
시점이 중요한 그림은 또 있다. 조선시대에 그려진 [한성전도(漢城全圖)]라는 지도에는 산이 가로로
'누워' 있다. 산이 우뚝 서서 둘러싸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가로로 누워 있는 것이다. 마치 하늘에서 직접 땅을 내려다보고 그린 듯한
그림이다. 이런 그림은 실제적인 그림이라기보다는 관념적인 지도이다. 그럼 조상들은 과학적인 조감법을 몰라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아니다.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관념의 문제였다.
조선 후기에 그려진 [해동지도]나 [대동여지도], [청구도]는, 분명히 오늘날보다도 더
정확하게 나라의 땅줄기와 물줄기를 그리고 있다. 해동지도에서는 산들이 누워있거나 사방으로 퍼져 있지 않고 똑바로 서 있다. 시점도 하늘에서
아래를 바로 내려다본 시점이 아니라 땅에서 산봉우리를 바라보듯이 그려져 있다. 적어도 이런 점에 있어서는 우리 조상들이 결코 비과학적이지
않았다. 그림은 각자 쓰임새가 따로 있었던 것이다.
[목판천하도]라는 지도를 보자. 이 지도에는 조선, 일본, 중국이 보인다.
그런데 이 '천하(天下)'를 그린 그림에는 고야산, 대인국(大人國), 여인국이라는 이름이 나와 있다. 신화 시대의 땅 이름들이며 『산해경』에
나오는 이름들이다.
고야산 은 『산해경』중「동산경(東山經)」에 나오는 산 이름이다. '중원'이라는 황토고원에서 바라보았을 때
동쪽에 있는 땅('산山'이란 한자는 '땅, 나라' 라는 뜻도 있다)이라서 동산경에 들어갔다. 동쪽의 땅 이름이다.
대인국(大人國)은『산해경』의「해외동경(海外東經)」- '중원의 동쪽 바깥 지역'을 나타낸 지리서 - 에 실려 있다. 이 대인국은
레미 마띠유라는 산해경을 연구한 서양학자에 의해 '조선(朝鮮 : 고조선)'이라는 주장이 제기된 적이 있다. 안재홍이나 최남선도 이와 같은 견해를
나타냈다. 우리의 조상이 지리서에 실렸다.
여인국은 여자국(女子國)이라고 한다. "옥저(沃沮)의 노인이 말했다. '어떤 나라가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데 온통 여자뿐이고 남자는 없다."(『삼국지(三國志)』「위지(魏志)」동이전)고 했다. 즉 옥저가 접한 바다의 한가운데에 섬이
있었고, 그 섬은 여인들만이 사는 여인국으로 알려졌던 것이다. 위나라 시대 옥저는 지금의 함경도 지역 바닷가에 있었다. 여인국도 크게 보면
배달민족의 전설상의 나라이다.
이런 우리 조상들의 나라가 천하를 다룬 천하도에 실려 있다. 실제의 땅 이름과 신화속의 땅 이름이
뒤섞여 있다. 말 그대로 뒤섞인 천하를 그린 천하도이다. 비록 '중국(中國)'이 지도 한가운데에 있기는 하지만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신화속의
지명은 배달겨레의 지명이다. 이런 천하도에 우리의 땅 이름인 대인국, 여인국의 이름이 실렸다. 천하는 천하이되 중국이 가운데이고 그 안에
동이라는 이름의 옛 조선이 둘러싸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천하는 조선과 중국이 사실상 나눠 가진 셈이고.
조선인은 이 그림을
천장에 붙여놓고 방바닥에 누워서 바라보았다. 거꾸로 뒤집어 보면 사람이 천장에서 바닥에 붙어있는 지도를 보고 있는 모습이다. 마치 하늘사람이
하늘에서 천하를 내려다보는 듯한 모습니다. [한성전도]의 시점과 같다.
[한성전도]와 [천하도]를 그린 조선사람들, 그들은
하늘사람이었으며 하늘의 시점에서 땅을내려다보았다. 이 점이 그림을 병풍에 놓고 눈높이에서 바라보거나, 누운 산을 그리지 않고 똑바로 선 산만을
그렸으며 그림을 벽에 걸어놓지 천장에 붙여서 보지 않았던 한족들과 달랐다. 한족이 땅을 사랑하는 누런 땅의 백성들이라면 조선사람들은 하늘을
그리워하고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고 하늘을 사랑하는 백성들이었다. 이 그림들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이 정도가 되면 운보 김기창 선생의
말대로 그림을 '민화'라 붙이지 말고 하늘그림이라는 뜻의 천화(天畵)라고 붙여야 하지 않을까. 하늘 백성이 하늘에서 천하를 내려다보고 그린
그림이고 하늘에 소원을 비는 그림이니.
6. 잘못 붙여진 이름 - 신선의 그림이 윤리화라니
[송하문답도(松下問答圖)]라는 그림도 이름이 잘못 매겨진 예이다. 누가 이 그림을 '윤리화'라고 이름붙였다. 소나무 두 그루가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 지팡이를 짚은 노인과 저 먼 산을 가리키는 아이가 그려져 있다. 먼 산이 배경으로 그려져 있다. 이게 혹시 소나무에 잘못
올라갔다가 노인에게 꾸지람을 듣는 그림일까? 그래서 아이가 억울해서 저 먼 산을 삿대질하면서 "저 산에 사는 아이도 나무 타고 놀았어요."라고
'고자질'하는 장면일까? '천만의 말씀'이요 '만만의 콩떡'이다. 그림에는 그림을 설명하는 시가 적혀 있다.
"松下問童子
言師採藥去
只在此山中
雲深不知處."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물으니
"스승님은 약초를 캐러 가셨습니다.
다만 이 산중에 계신 것은 아오나
구름이 깊어 계신 곳을 알지
못합니다." 라고 하더라.
그런데 이 그림이 윤리화란다. 시의 상황을 그림으로 그려 설명하고 있는데. 시의 내용으로 보면 차라리
어느 은자가 친구를 만나러 가다가 친구의 제자인 아이를 만나 물어보는, 선화(仙畵)로 풀이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이름이 잘못 매겨진 경우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7. 상식을 거뜬히 뛰어넘는 그림
해학반도도(海鶴蟠桃圖)라는 그림은 상식을 '무시'한다. 바다의
물결이 그려져 있고 바닷가에 복숭아나무가 자라고 그 복숭아나무에 학들이 앉아 있다. 민물가에 사는 학이 언제 자리를 바닷가로 옮겼나? 학은
갈매기가 아니다. 또 복숭아나무는 짠물이 많은 바닷가에서는 살지 못한다. 그런데도 학이 바닷가에서 복숭아 나무 위에 앉아있는 그림을 그렸다.
왜일까?
이 그림에 그려진 반도(蟠桃)는 장수의 상징이다. 한 번 먹으면 세 즈믄 해(3천년)를 산다는 천도(天桃). 하늘
복숭아. 이 복숭아가 해학반도도에 나오는 복숭아나무의 복숭아이다. 학도 장수의 상징이다. 오래 사는 열 가지 영물 가운데 하나이다. 파도를
나타내는 한자는 조(潮)인데, 이 조(潮)는 왕실이나 임금을 나타내는 조(朝)자와 발음이 같다. 다시 말해서 해학반도도는 우리 임금님이 하늘
복숭아를 드시고 학처럼 오래오래 사십시오. 라는 뜻으로 그려진 그림이다. 그래서 이 해학반도도는 임금의 장수를 비는 그림으로 병풍에 그려졌다.
- 비록 나중에는 왕공뿐 아니라 여염집의 잔치에, 그리고 대갓집의 회갑잔치에 두루 쓰이게 되지만.
이런 그림이 '민중을 위한,
민중의 그림'이 될 수 있는가? 그런데도 이 그림은 누가 그렸는지 알 수 없다는 이유로 '민화'가 되어 있다.
8. 원래는 하늘의
소식을 받고 기뻐하는 그림인데
희보작호도라는 그림이 있다. 희보(喜報). 그러니까 '기쁜 소식'을 전하는 호랑이와 까치를 그린
그림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호랑이는 까치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고, 까치는 소나무 가지 위에 앉아서 호랑이 쪽을 향해 짖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까치가 호랑이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모습이다. 그럼 무슨 기쁜 소식이었을까.
까치라는 새 자체가
운수 좋음을 뜻하는 길조였다. 그리고 새는 우리 전통 사상에서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사자였다. 그 새가 하늘과 좀더 가까운 소나무 가지 위에서
땅에 있는 호랑이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고 있다. 자연히 '하늘의 기쁜 소식'을 호랑이에게 알려주는 것이리라. 이 호랑이는 이빨을 드러내고 웃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러니 까치로부터 하늘의 기쁜 소식을 듣고 호랑이가 웃는 모습이라고 풀이해야 옳지 않은가.
그런데도 이 그림이
조선시대 양반과 상놈을 상징하는 그림이라고 하면서 양반을 '어수룩한' 호랑이로, 상놈 말뚝이를 까치로 풀이해 놓은 사람들이 있다. 정말 옛말대로
무식한 데에는 약도 없다.
9. 맺는 말 - 새로운 이름을 붙이길 바라면서
지금까지 나는, '백성의 그림'이라고
알려진 '민화'가 사실은 지배층의 바램과 생각을 담은, 지배층을 위한 그림이 대부분이며, 그들 그림은 누가 그렸는지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민간신앙이나 사상이 담겨 있는 그림과 함께 뒤섞여서 '민화'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사실을 간단히 설명했다. 또 이들 그림은 대부분 그림 속에
암호를 품고 있어서,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엉뚱한 풀이가 나온다는 사실도 지적하였다.
민화 라는 이름 자체가 식민지 시절
일본인에게 받은 이름이었고 그 이름은 실제의 적용기준에 제대로 들어맞지 않았다. 과연 이 이름을 그대로 고집해도 되는 것일까? 태백산맥이
백두대간이라는 이름으로 제자리를 찾듯이, 민화도 제대로 된 새 이름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이름이 없다고 해서 다 백성이 그린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민화라는 이름 대신 새로운 이름으로 이 그림들을 부를 것을 제안한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천인화(天印畵)다.
하늘을 섬기는 사람들이 하늘에 바치고 하늘의 시점에서 그린 그림이니 말이다. 또 하늘의 이치를 도장 찍듯이 그려낸 그림이기 때문에 천인화라고도
한다. 이는 내 말이 아니라 '민화'를 연구하고『귀신먹는 까치호랑이』라는 책을 쓰신 김영재 씨의 말씀이다.
천인화는 불화나
무속화나 군자도(君子圖)나 신선도, 그리고 문자도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이름이기도 하다. 군자도 하늘의 뜻을 이어받아 이 땅에서 그 뜻을
펼치는 사람이고, 신선은 이 속세를 떠나 천상의 옥황상제가 사는 곳에서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자도도 군자의 도리를 가르치는
그림이었다. 무속화도 하늘에 바치는 그림이다. 봉황이나 호랑이, 까치를 그린 그림도 하늘의 영물을 그린 그림이다. 이 정도쯤 되면 하늘과 관련된
것들을 도장 찍듯이 찍어낸 그림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의식 속에 '민화'라는 이름이 사라지고
'천인화'라는 이름이 들어설 때, 그때 우리는 우리 머릿속에 심어진 잘못된 역사의 이름을 버리고 올바른 이름을 만들어서 들어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http://my.netian.com/~greatkan/history4/history4-1-1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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