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자들이 꼭 알아야 할 미술품 구입 요령
《미술품을 사는 데 가장 중요한 원칙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다.
돈만 있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 긴 안목을 갖고 작품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먼저 필요하다. 많은 전시를 시간 나는 대로 둘러보고 경매 현장이나 화랑을 자주 들러 시장정보를 익히는 것이 좋다. 또 관심 있는 작가나 화풍, 유파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그랬을 때, 단순한 취미를 넘어 컬렉션과 투자가 가능하다.
초보자들에게 권하는 작품 구입 요령을 소개한다. 》 1. 판화나 사진부터 시작하라 판화나 사진은 복제가 가능한 멀티플 아트(multiple art)라는 인식 때문에 회화에 비해 가치가 떨어지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사진장르가 급성장하면서 이 같은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필름, 혹은 판화의 원본만 가지고 있으면 무한정 찍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작품으로 제작된 사진이나 판화는 한정된 에디션(edition)이 있다. 일정 매수만큼만 찍어낸 후에는 원본을 폐기하는 등 에디션 관리가 엄격하다. 단 사진이나 판화를 구입할 경우 믿을만한 화랑이나 경매업체를 통해야 한다.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도 에디션이 많은 것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다. 한 장만 제작하는 판화나 사진작품도 많다. 국내 대표 작가로는 작고한 판화작가 오윤. 그의 작품은 단 하나뿐(unique piece)으로 최근 거래가격(1000만원)도 저평가된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2. 유명작가 소품에 관심을 갖자 미술품을 처음 접하는 경우 유화에 관심을 갖고 덤비지만, 가격이 비싸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유명 작가의 드로잉에 관심을 가져보자. 외국에서는 작품성 있는 드로잉은 컬렉터들이 탐내는 아이템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2004년 현재 ㈜서울옥션에서 거래되는 박수근 유화작품은 호당 2억 원을 호가하지만 드로잉은 호당 1000만∼20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작가의 개성이 살아 있는 드로잉이 질 낮은 유화작품보다 오히려 소장가치가 높음을 명심하자. 3. 중저가 미술품 시장을 이용하라 우리나라도 대중을 위한 중저가 미술품 시장이 활발해지고 있다. 미술품은 비싸다는 인식을 깨는 여러 행사를 찾아 작품을 사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된다. ㈜서울옥션에서 매년 두 차례 열고 있는 ‘이지아트(Easy Art)’와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매년 6월경 열리는 ‘아트서울(Art Seoul)’이 대표적인 행사다. ‘이지아트’는 100만원 이하 작품만을 출품하고 ‘아트서울’도 미술대학에서 추천받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저렴한 가격대로 내놓는다. 매년 3월경 예술의 전당에서 박영덕 화랑과 미술월간지 ‘미술시대’가 주최하는 ‘한국 현대 미술제(KCAF)’도 중견 신진작가들의 작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장터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화랑들이 주축이 되어 매년 6월경 여는 ‘청담미술제’도 눈여겨볼 만하다.
마침 미술계 큰 잔치인 ‘2004 화랑미술제’가 6∼11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한국화랑협회(회장 김태수)가 주최하는 이번 행사에는 국내외 중량급 172명의 작가가 회화, 조각, 영상, 설치, 판화, 사진 등 현대미술 전 분야에 1800여점을 내놓아 미술품 애호가라면 꼭 한번 들러볼 만하다. 4. 싼 게 비지떡이다 단순히 ‘싼 맛’에 작품을 사는 것보다 작가의 대표작이면서 작품성 좋은 작품을 사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싸게 사는 방법이다. 작품 제작시기, 완성도, 희소성 등을 면밀히 살피고 믿을 만한 화랑이나 경매회사를 통해 사는 것이 장기적으로 안전하다.
미술품 구입에 주의해야 할 점은 작품의 진위 여부이다. 최소한 몇 백 만원을 넘는 경우는 필수적으로 미술품 감정서를 요구해야 하며, 팔 때도 마찬가지로 이 감정서를 첨부해야만 공신력을 갖게 된다.
또 작품 구입시에는 가능한 한 작가와 작품의 자료를 많이 받아두는 것이 좋다. 제작 연대나 제목은 물론 재료 등과 함께 팸플릿, 화집 등 가능하면 작가의 모든 파일을 알고 있는 것이 작품의 이해와 관리에도 도움이 된다. 5. 젊은 작가에 관심을 가져라 미술작품을 보는 안목만 있다면 이른바 미래의 박수근 이중섭이 될 작가의 작품을 미리 구입해 놓을 수 있다. 지금은 비록 작품가격이 싸더라도 언젠가는 전설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할 작가들이 분명히 숨어 있다.
물론 젊은 작가의 가능성을 한눈에 알아보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열정을 갖고 부지런히 발품을 판다면 언젠가는 작품을 보는 안목이 생길 것이고 본인이 ‘찍은’ 젊은 작가가 커 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 또한 특별한 즐거움이다.
지난달 1∼13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마니프 아트페어에서는 30, 40대 젊은 작가들이 정찰제를 표방하고 작품을 내놓기도 했다. 6. 가격대를 미리 알자 한국의 미술시장은 화랑 가격이나 경매가, 작가가 부르는 가격이 다른 데다 작품성을 무시한 채 ‘호당 얼마’라는 식으로 값을 매기는 관행이 계속되는 등 고질적 병폐가 적지 않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화랑가와 경매시장을 돌아다니며 적정한 가격대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작품 가격을 공개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으로 경매 카탈로그를 참고한다든가(출품작가만 해당) 화랑 미술제나 마니프 전시 같은 판매전에 자주 들러 평소 가격을 물어 보는 정도의 사전 확인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그림 값은 작가와 작품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 대략 큰 엽서 한 장 크기의 호수(1호 22.7×15.8cm)를 산정기준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제작연도, 작품성별로 천차만별이어서 일률적으로 ‘이 작가의 그림 값은 얼마’라고 말할 수는 없다.
미술 경제지 ‘아트프라이스’가 지난해 10월 창간호에서 서양화가 73명의 작품 가격을 공개한 적이 있었는데 작가별로 호당 가격과 함께 작가가 부르는 가격, 시장에서 거래되는 실거래가 변동상황을 공개했다. 조사결과 외환위기 이후 작품 가격이 소폭이라도 상승한 작가는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장욱진 천경자 다섯 명 뿐이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