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랑/전시소식

국립현대미술관 - ≪게르하르트 리히터/A.R. 펭크≫전 개최

영원한 울트라 2006. 2. 20. 12:05
- 독일 현대미술의 대표적 거장의 작품을 한국에 소개 -


전시회명 : (국문) 게르하르트 리히터/A.R. 펭크
(영문) Gerhard Richter/A.R. Penck
주 최 : 국립현대미술관
전시기간 : 2006. 2. 25(토) - 4. 30(일)
※ 개막식 : 2006. 2. 24(금) 오후 3시
전시장소 : 국립현대미술관 제2전시실
부 문 : 회화, 조각
작 품 수 : 리히터(회화 30점), 펭크(회화 34점, 조각 3점)



국립현대미술관(관장: 金潤洙)은 전후 독일 현대미술의 두 거장인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와 A.R. 펭크(A.R. Penck)의 전시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2월 25일부터 4월 30일까지 과천 본관 제2전시실에서 열린다.
이 전시는 리히터의 회화 30점 그리고 펭크의 회화 34점 및 조각 3점으로 구성되었으며, 각 작가의 시기별 대표작을 통해 이들의 작품경향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 게르하르트 리히터와 A.R. 펭크 -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1960년대 이후 세계 현대미술사 전개에 있어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이다. 그는 “회화의 종말”이 이야기되는 오늘날에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현대적 감각과 방법으로 이룩한 그의 독보적인 회화경지는 전 세계 실험미술가들의 경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펭크 역시 전후 독일의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서 이른바 ‘독일 신표현주의’ 미술의 대표주자이다. 그는 정보사회에 적합한 조형의 방법을 찾고자 이론과 창작 양면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른바 ‘기호언어’로 구성된 그의 작품은 갈등과 대립으로 점철된 현대사회에 대한 우화로서 보는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있다. 특히 이데올로기 대립을 주제로 한 작품들은 분단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많은 공감을 주고 있다.



- 전시의 성격과 의의 -

리히터와 펭크는 국제적인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간 한국에서는 이들의 작품세계를 전반적으로 조망하는 전시가 없었다. 다만 펭크의 경우 한국전시는 간간이 있긴 했으나 대개 산발적이었고, 초기작이나 최근작품이 포함되지 않아 그의 전모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데 부족함이 많았다.

때문에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 67점(리히터 30점, 펭크 37점)은 이런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줄 것으로 기대된다. 비록 적은 수이긴 하지만 전시작품은 작가들의 1960년대 초기 작품으로부터 2000년대 최근의 작품까지 망라되어 있고, 작가들의 제반경향을 살필 수 있는 대표작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시는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연대기적이고 입체적으로 살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특히 이번 전시는 보기 힘든 리히터 작품전을 한국에서 볼 수 있다는데 의미가 크다. 즉 리히터의 작품은 가격이 비싸기로 국제적으로 유명한 작가로서 본격적인 작품전시가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물다. 리히터의 작품이 그간 한국에 제대로 전시되지 못한 것도 이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리히터작품 소장으로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있는 독일 베를린의 뵈크만 콜렉션(Böckmann Collection)의 특별한 협조로 리히터의 가장 대표작들이 대거 출품될 수 있었다. 전시에 출품된 리히터의 작품의 가액만도 총 7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작가설명 :
 

게르하르트 리히터 (Gerhard Richter, 1932- )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전후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1960년대 이후 세계 현대미술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작가이다.


  1932년 독일의 드레스덴에서 중산층 가정에서 출생한 작가는 일찍이 15세 때부터 예술가의 길을 걸었다. 1951-54년 사이 사회주의 동독의 드레스덴 미술아카데미에서 수학하면서 보수적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익혔다. 파리여행, 카셀 도쿠멘타 참관 등을 통해 서방의 현대미술 흐름에 눈을 뜨게 된 그는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기를 전후해서 부인과 함께 서독의 뒤셀도르프로 이주했다. 1961년부터 1964년까지 뒤셀도르프의 미술아카데미에서 카를 오토 괴츠(Karl Otto Goetz) 밑에서 수학하면서 시그마 폴케(Sigmar Polke), 콘라드 피셔-뤅(Konrad Fischer-Lueg),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 등과 교우한다. 이때 플럭서스 운동 및 팝(Pop) 아트 등으로부터 영향 받았으며, 시그마 폴케, 콘라드 뤅과 함께 이른바 자본주의 리얼리스트(Capitalist Realists)그룹에서 활동했다.


  그는 오브제 미술, 행위미술 등 현대 실험미술의 열풍 속에서도 전통장르로서의 회화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회화는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현대적 감각과 방법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기존의 관념적, 주관적 의도에 의해 속박되지 않는 회화의 새로운 길을 찾고자 했다. 즉 대상의 묘사로서의 회화를 거부하고 회화를 통해 순수한 실재세계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리히터는 1962년 이후 사진이미지에 기반한 회화를 제작한다. 사진이미지는 인공적 가필을 통해 그대로 회화로 재생산되어 졌다. 심지어 추상회화를 위해서도 사진이미지는 활용된다. 작가에 있어 사진은 “양식도, 구성도, 규범도 없으며··· 개인적 경험을 떨쳐버리게 해주는 순수한 이미지”로서 기존의 예술개념을 탈각한 회화를 만드는 방법을 의미했으며, 객관적 실체를 기계적으로 드러내는 사진을 통해 개인적 경험과 관념에 물들지 않는 이미지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가 사용하는 사진소재는 가족의 스냅사진, 작가가 직접 찍은 풍경사진, 그리고 인쇄매체로부터 취한 사진 등 다양하다. 그의 회화에서 사진적 일루전들은 흐릿한 윤곽, 추상표현적 터치, 기하학적 구성 등과 인위적 작업을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사진적 일루전의 실재성에 대해 의심하게 만들고, 가공된 이미지의 허구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예술에 있어서 진성성의 문제에 대해 깊이 사유하게 한다.


  리히터의 회화의 양식은 단일하게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며, 동시다발성, 분절성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무스타일성은 중성적, 익명적 이미지인 사진을 기반으로 하는 그의 회화구조와 깊이 관련된다(Michael Danoff). 리히터의 작품의 형태를 시기별로 보면 1960년대 초기 구상사진회화, 1966년 이후의 극사실적인 풍경사진화 및 기하학적 추상회화, 1971-72년 사이엔 유명 사진인물화, 1977년 이후엔 추상회화와 정물화 등이 많이 제작된다.

       

  리히터의 작품은 그간 “회화의 종말” 시대의 대안적 회화로 주로 아방가르트 미술의 인식범주안에서 읽혀져 왔다. 하지만 2001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회고전(큐레이터 Robert Storr)을 계기로 전통 장르로서의 회화성이 재평가되어 주목받기도 한다.




A.R. 펭크 (A.R. Penck, 1939- )

  A.R. 펭크는 1939년 독일의 드레스덴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랄프 빈클러(Ralf Winkler)였다. 유년시절 동독의 작가이자 감독인 위르겐 뵈트커(Juergen Boettcher)에게서 회화와 소묘를 사사받은 그는 드레스덴의 미술아카데미에 여러 차례 지원했으나 낙방하고, 독학으로 회화, 조각, 영화, 문학, 음악 등을 공부했다. 수학시절엔 러시아 사실주의, 세잔느와 반 고흐, 피카소의 작품으로부터 영향 받았으며, 서독의 게오르그 바젤리츠 등과 교류하였다.


  펭크는 1960년대 초 바젤리츠 등의 영향 하에 대가 추종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주장’으로서 미술을 추구하며, 동독사회의 모순을 지적하고 경직된 사회주의 예술관을 개혁하고자 했다. 또 분단으로 인한 독일의 역사문제를 그림 속에서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과제를 떠안고 끊임없이 고민하였으며, 동․서독 분단 이전의 정치적·문화적 유산에 항거하고, 이후 혼란스러운 현대 사회의 추이에 대해서도 예리한 비판을 아끼지 않는 예술가로서, 독일 현대미술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연구를 통해 역사와 인간의 모습을 담는 이른바 ‘세계회화(Weltbilder)’를 발전시켰다. 일루전을 포기하고 단순한 구성과 몇 개의 가느다란 선들로 이루어진 이들 그림들은 강압과 갈등으로 점철된 냉전시절의 역사적 모순을 축약적으로 보여준다. 선사시대 동굴벽화나 석기시대 조각무늬의 형상들에서 유래된 표현형식은 그림의 마술적·주술적 효과를 극대화 한다. 작가의 선사시대에 대한 관심은 자신의 이름을 빙하시대의 저명한 연구가인 Albrecht Penck(1958-1945)를 본떠 A.R. Penck로 개명한 점에서도 알 수 있다. 펭크에 있어 빙하시대는 또한 단순성과 명료성을 의미하며, 시대에 대한 우의화로서 “냉전”을 표상했다.   


  작가는 인공지능학, 정보이론, 체계이론의 영향 하에 정보사회에 적합한 조형의 방법을 찾고자 했으며, 미술을 통해 주관적 개별적인 상태를 극복하고 보편적인 소통을 위한 기호언어(Zeichensprache)를 개발하고자 했다. 이와 관련 미술작품을 일종의 기호체계로 파악하는 슈탄다르트(Standart) 이론을 제시했다. Stand(표준)와 Art(예술, 기술)가 결합된 신조어인 슈탄다르트(Standart)는 미술을 표준적이며 보편적인 언어로 치환함으로써 미술관념을 정확히 반영하고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만인이 공유할 수 있는 보편타당성을 지닌 조형언어를 지향했다. 이 슈탄다르트 이론은 1964년 이래 작가의 미술창작의 원리가 되었다.


  펭크는 기호언어에 의한 미술을 확신한다. 작가는 말한다. “당신이 데생 연필 혹은 초크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험해 보라. 획, 점, 십자모양, 화살 그리고 소용돌이 문양 등 당신이 이것들을 어떻게 부르는가 하는 것은 상관없다. 하지만 이것들 모두가 어떻게 보이는 가를 주목하라. 그리고 이것들을 표상하는 데 익숙해져라. 만약 당신이 이를 한다면, 진짜로 어떤 기호를 그리거나 표상할 때 각각의 기호가 네게 어떤 느낌이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의 기호가 당신에게 그 어떤 아이디어를 주는 일도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 당신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감정이 어떤 기호를 표상할 때에 갑자기 나타나는 것을 체험할 것이고, 그 감정이 네가 현실에서 어떤 체험을 하게 만든다는 것을 체험할 것이다.” 


  펭크의 작품세계는 카셀 도쿠멘타 등을 통해 서방세계에 알려졌으나 경직된 사회주의 동독정권에 의해서는 공인받지는 못하였다. 마침내 1980년 동독 국적이 박탈된 펭크는 서독에 잠시 체류 후 런던과 아일랜드로 이주하여 현재는 더블린에 거주하면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