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랑/그림 이야기

[미술속의 에로티시즘] 비도덕성 벗긴 ‘신랄한 터치’

영원한 울트라 2006. 6. 1. 13:44
[미술속의 에로티시즘] 비도덕성 벗긴 ‘신랄한 터치’

1980년대는 모더니즘 미술의 급격한 퇴조와 함께 미술을 생활세계로 끌어들이는 다양한 시도와 현상이 일어났다. 미국의 현대미술이 쇠퇴일로에 접어들었을 때 혜성같이 등장했던 화가가 에릭 피슬이다. 뉴욕과 세계 화단에서 가장 떠오르는 뉴페인팅과 신표현주의의 기수 줄리앙 슈나벨, 데이비드 살르, 로버트 롱고는 그의 동료였다.

1948년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LA의 캘리포니아 미술연구소에서 수학했다. 초기부터 너무나 유명해진 도시 외곽의 그림에서 시작한 그는 미국 중산층의 생활을 거짓 없이 잡아냈다.

70년대 금욕적인 현대미술을 ‘죽은 미술’이라고 보고 그는 인간의 육체에 탐닉했다. ‘누구라도 알몸이었다’라고 주장하며 30년대 미국의 서술적인 회화의 ‘알몸’을 사춘기의 섹슈얼리티에 접목시킨 것이다.

‘피슬 리얼리즘’으로 불리는 비유적인 알코올중독, 성적 충동, 근친상간, 비행소년의 대담한 묘사는 곧잘 그의 ‘나쁜 회화’로 해석됐다.

피슬은 1979년 소재와 표현에서 압권인 ‘몽유병자’라는 대작으로 화단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교외의 어린이용 풀에서 벌거벗은 소년이 자위행위에 빠져 있는 모습을 클로즈업한 알몸 연작이었다.

그는 사진을 활용하고 빛의 미묘한 표정과 이동, 순간을 포착하는 기법으로 소년과 중산층 벗은 알몸의 초상들을 가차없이 그려냈다. 이 ‘나쁜 소년’도 여인이 침대 위에 누워 음부를 그대로 드러내놓은 모습을 훔쳐보고 있는 소년의 모습을 영화 장면처럼 그리고 있다.

나쁜 소년은 자신 앞에 펼쳐진 여인의 육체를 호기심과 눈요기로 바라본다.

아이를 유혹하는 에로틱한 이 팬터지의 이미지를 화가는 이 소년의 다른 손으로 이동시킨다. 등 뒤로 자위행위보다는 여인의 핸드백을 뒤지는 불량 소년의 손에 시선을 집중시킨다. 그 모습은 모두 블라인드 사이로 스며든 햇볕 아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 기법은 그가 차용한 영화 ‘나인 하프 위크’의 장면을 떠올린다.

옆의 그릇에는 남성 성기로 상징되는 바나나, 그리고 여성의 유방으로 비유되는 사과 두 알이 담겨 있다. 이처럼 피슬이 그린 벗은 알몸들은 성의 기회주의와 도덕적 불안과 10대의 방종 등 미국 정체성의 숨은 문제를 노출시킴으로써 미국 중산층의 도덕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벗겨낸 화가로 주목받고 있다.

〈김종근|미술평론가(critic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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