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랑/전시소식

문형철 개인전

영원한 울트라 2006. 6. 12. 13:14
 

제11회 문형철 개인전

'자연인식'

 

 

 

2006년 6월 14일(수) ~ 6월23일(금)

갤러리 상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 159 T.02-730-0030

 

OPEN: 2006년 6월 14(수) PM6시

 

 

자연인식,캔바스에 유채, 2006

 

문형철의 회화-인공자연, 전자 눈에 비친 자연

고충환(Kho, Chung-Hwan 미술평론)

백남준의 작업 중에는 달을 미디어 속으로 불러들여 미디어를 일종의 달 시계로 변형시킨 영상작업이 있는가 하면, 정원을 모니터 속으로 불러들여 정원을 고도로 인공적인 TV정원으로 변형시킨 영상작업이 있다. 이들 작업을 통해서 백남준은 첨단의 전자매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자연은 어떻게 어필되고, 또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설핏 보면 자연이 미디어 속으로 들어온 것 이외에는 별반 다른 느낌이 없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연을 실제로 경험하는 것과 미디어를 통해서 자연을 접하는 것과의 현격한 차이가 놓여 있다. 실제로서의 자연과 이미지로서의 자연은 분명 다르다. 미디어는 분명 자연에 대한 인식을 변형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은 매체가 달라지면 메시지가 달라진다고 했다. 그리고 전자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인의 달라진 위상에 대해서는 기존의 실존적인 정체성과는 다른 가상공간에서의 정체성인 페르소나(persona)를 주장하기도 했다. 매체를 통해 접하는 자연은 자연에 대한 감각코드와 인식코드를 변형시키고, 나아가 자연 자체를 변형시킨다. 더 이상 예술이 자연에게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예술의 현란한 수사로 정의되고 변호된다. 예술가의 비전이 자연을 변형시키고, 나아가 세계를 변형시킨다. 인공정원은 자연의 일부를 사유화하고, 자연을 자기의 논법으로 전유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반영한다. 자연을 자기의 시야가 미치는 한계 안쪽으로 거둬들여 일종의 사유의 뜰로 변형시킨 것이다.

자연인식,캔바스에 유채, 2006

문형철의 근작은 이처럼 미디어 속으로 들어온 자연, 미디어에 의해 한차례 걸러진 자연, 순수한 이미지로 화한 자연을 보여준다. 그 자연은 분명 실제를 닮았지만, 결코 실제의 속살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현저하게 인공적이고 기계적이고 전자적인 표면을 보여줄 뿐이다. 그림 속의 자연은 실제보다는 이미지에 길들여지고, 이미지를 더 친근하게 느끼는 현대인의 지각체계를 보여준다. 실제를 통해서 실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를 재현한(해석한) 이미지를 통해서 실제를 보는 것에 익숙한 현대인의 감각코드를 보여준다.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이미지, 나아가 어떠한 비교해볼 수 있는 실제도 가지고 있지 않은 이미지, 그러므로 원본이 없는 이미지, 자족적인 이미지에 대한 장 보들리야르(Jean Baudrillard)의 신념을 재확인시켜준다.

자연인식,캔바스에 유채, 2006

실제로 사람들은 자기를 압도해오는 자연을 흔히 그림 같은 풍경(Picturesque)이라는 말로서 표현한다. 이 말 속에는 그림을 자연에 비교하는 대신, 자연을 그림에 비교하려는 자연과 그림과의 전도된 관계가 숨어 있다. 자연은 저절로 주어진 것이므로 그 자체로는 무가치한 것이고, 대신 자연의 복잡한 지평을 정리하고 재단하여 자연에다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체계를 부여한 그림의 가치를 인정하는 낭만주의의 흔적이 배어 있다. 그 이면에는 실제와 이미지와의 메울 수 없는 간극에 대한 공공연한 인정이 놓여 있고, 이미지의 프리즘을 통해서 실제를 보는 데에 길들여진 현대인의 인식구조가 놓여 있다. 이런 현실에서 자기를 집어삼킬 듯 압도해오는, 자기가 견딜 수 있는 감각의 한계를 넘어선 자연과의 대면이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자기 속에 비밀을 품고 있는 불가지(不可知)의 자연, 신화 속에서 인간과 교류하던 자연, 숭고한 자연, 위대한 자연이 여전히 유효한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그런 견지에서 자연은 죽었다고까지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각자의 마음속에 남아 이따금씩 알 수 없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흔적으로나 확인해볼 수 있을 뿐. 고도로 인공적이고 기계적인 숨결을 내뿜는 문형철의 그림 속 자연은 자연에 대한 이러한 사념을 불러일으킨다.

자연인식,캔바스에 유채, 2006

문형철의 근작은 주로 군락을 이룬 이름 모를 풀들을 소재로 한 것들이다. 그 소재들을 곧장 캔버스 안쪽으로 불러들이지 않고, 인공적이고 기계적인 과정을 통해 변형시킨다. 그러니까 대상을 클로즈업한 사진을 찍고, 이를 포토샵을 이용한 컴퓨터프로세싱을 통해서 재생시킨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접사된(클로즈업된 사진의 프레임 속에 붙잡힌) 자연은 최초의 총체적 환경으로부터 분리되고, 대기와 연속된 관계를 상실한다. 풀잎을 스치는 바람과, 대지가 생명의 씨앗을 키워내는 소리, 그리고 그렇게 잉태된 생명들의 환희와 같은 자연의 아우라가 증발한다. 그 대신 그림 속의 자연은 그것이 한때 자연이었음을 증명하기 위한 한낱 자연의 껍질, 자연의 표면으로 변질된다. 그리고 이는 전체로부터 동떨어져 부분으로 남겨진 자연, 마치 표피처럼 지나치게 얇은 층으로 인해 그 속이 텅 빈 자연, 어떠한 깊이도 느낄 수 없는 자연으로 현상한다.

자연인식,캔바스에 유채, 2006

그런가하면 포토샵은 자연 본래의 색채를 변질시킨다. 포토샵 속에서 자연은 마치 카멜레온인 양 형형색색의 현란한 색채의 옷으로 덧입혀진다. 자연의 고유색이 처음부터 주어진 것이라면, 포토샵 속에서의 인공적이고 임의적인 색채는 그렇게 주어진 자연의 본성을 배반한다. 그러므로 포토샵은 단순히 자연의 본성을 배반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그 자체가 또 다른 자연을 낳는 전지전능한 기계(신)라고까지 말 할 수 있다. 기계가 생산해낸 고도로 인공적인 자연(능산적 자연)이 자연 자체(소산적 자연)를 대체한 것이다. 이런 현실이 자연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킨다. 마치 자연 자체보다는 모니터나 사진과 같은 인공의 프리즘을 통해서 본 자연, 복사기나 포토샵에 의해서 형질 변경된 자연을 더 친근하게 느끼는 것처럼.

자연인식,캔바스에 유채, 2006

이처럼 포토샵에 의해 변형된 그림 속의 자연은 실제의 자연을 그대로 닮아 있지만, 실제로는 단지 자연을 암시할 뿐인 자연의 표면, 자연의 껍질에 지나지 않는다. 그 자연에 주어진 색채는 색채라기보다는 오히려 빛의 속성에 가깝다. 예컨대 스스로 빛을 내는 형광 색 안료나, 프리즘을 통해 본 빛의 스펙트럼, 그리고 자기발광성 다이오드(일종의 전자 칩인)와 같은 각종 전자 매체로부터 비롯된 일종의 전자 빛으로서 현상한다. 빛으로 화한 색채에 대해서는, 포토샵이 감각적 실제로서의 자연과는 구분되는 고도로 인공적인 자연을 가능하게 할뿐만 아니라, 빛으로 상징되는 신성한 아우라마저 복원해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문형철의 그림에 나타난 자연은 자연 본래의 신성을 상실한 것이 아니라, 비록 기계적인 메커니즘으로 변질되고 훼손된 형태로나마 그 신성을 복원해낸 것이다. 하지만 자연 자체의 신성과 인공적인 프로세스를 통해서 복원해낸 신성이 같을 수는 없는 일이다. 작가의 그림은 이처럼 자연 자체와 조작된 자연, 고유의 신성과 복원된 신성이 맞물려 있는 보이지 않는 경계 위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소여된 자연을 일종의 환영적인 자연으로 변질시킨다. 아날로그의 물적 토대에 바탕을 둔 자연을 디지털 프로세스에 의한 환영적인 이미지로 변질시키고 있는 것이다.

자연인식,캔바스에 유채, 2006

문형철의 그 동안의 작업을 보면 어느 정도의 변화를 거치긴 했지만, 그 주된 테마는 늘 인간이다. 왜곡된 신체와 부분들로 조각난 신체로써 조화로운 총체로서의 인간에 대한 신념이 한낱 환상에 지나지 않음을 주지시켜왔다. 특히 네거티브로 전이된 신체는 인간의 억압된 욕망과 무의식을 떠올리게 하는 한편, 인간성을 상실한 시대에 인간성의 복원을 꿈꾸는 역설적 표현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물을 통해서는 인간관계에 대한 다중성을 드러내는데, 즉 그물은 복잡한 인간관계를 표상하며, 서로가 연속된 존재임을 주지시킨다. 그리고 그물은 시시각각 개인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제도의 보이지 않는 망(눈)을 상기시킨다(예컨대 인터넷으로 연결된 네트워크는 전자정부의 효율성을 강화하는 측면이 있다).

자연인식,캔바스에 유채, 2006

그리고 근작에서는 고도로 문명화된 사회와 기계적인 메커니즘이 인간의 의식과 감각체계를 지배하는 시대에 있어서의 자연의 존재방식을 보여준다.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편집된 자연이 유포되고, 인터넷을 통해서 한낱 정보로 화한 익명의 자연이 무차별로 살포되는 시대에 있어서의 자연은 어떻게 어필되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복사기가 시시각각 자연의 실제를 카피하는가 하면, 포토샵 속에서 자연이 형형색색의 옷으로 갈아입는 현실에서 자연은 분명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감각될 것임을 주지시킨다. 그리고 그 반응의 결과로서 일종의 전자 눈(카메라 렌즈와 컴퓨터)에 비친 자연을 내놓는다. 매체가 자연 자체를 변질시킬 것인가에 대해서는 더 두고 볼 일이지만, 적어도 자연에 대한 인식만큼은 이미 상당할 정도로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 자연을 소재로 한 문형철의 근작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대한 반응이며, 전자시대에 이미지가 존재하는 방식에 대해서 적극적인 논평을 가한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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