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삶의등대▲

진면목

영원한 울트라 2007. 9. 27. 14:34
송(宋)대의 문인이자 관리였던 동파 소식(蘇軾)은 현재의 중국 장시(江西)성 여산을 구경했을 때 유명한 시를 남긴다. “좌우로 둘러보니 등성이지만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면 봉우리다/멀고 가깝기, 높낮이 모두 틀리구나/여산의 진면목을 왜 모르는가 싶었는데/이 몸이 그 산속에 갇혀 있기 때문일세(橫看成嶺側成峰, 遠近高低各不同, 不識廬山眞面目, 只緣身在此山中).”

 ‘진면목’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시다. 이 단어로 시는 더 유명해졌지만 사실은 그 안에 담긴 철리(哲理)적 취향이 핵심이다. 눈으로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 원근(遠近)과 고저(高低)가 서로 다른 산이 그려지고, 결국 이 산의 전체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겠다는 푸념. 이어 부분에 갇히면 전체를 보지 못한다는 각성이 따른다.

 소동파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사실 당국(當局)이라는 단어와 뜻을 같이한다. 당국은 요즘 한국말에서 어떤 일을 직접 처리하는 ‘관계 당국’의 의미로 쓰이지만 실제는 국면에 직접 몰두하고 있는 상황을 가리킨다.

 구체적으로는 장기와 바둑을 두는 상태를 말한다. 장기나 바둑알을 움직여 싸움을 벌이다 보면 흔히 전체 국면을 놓치게 마련이다. 그래서 어깨너머 훈수도 필요한 것이겠지만.
 당국이라는 말에도 전거가 있다. 당(唐)대의 위징(魏徵)은 이 사람 저 사람 모두 건드리면서 번잡해진 유가의 경전 『예기(禮記)』를 대대적으로 정리했다. 태종 이세민의 치세에서 대신을 지냈던 위광승이라는 사람은 위징이 간략하게 정리한 책자를 사용하자고 건의한다. 그러나 재상인 장설의 반대에 부닥친다. 세세하게 달아 놓은 과거 학자들의 주석이 낫다는 게 재상의 판단이다. 경전의 원래 뜻을 되살린 위징의 정리 작업이 무시되는 순간이다.

 학자 원충이라는 사람이 재상 장설의 이런 행태를 두고 “한 국면에 빠진 사람은 미망에 빠지게 마련(當局者迷)”이라는 유명한 평을 남긴다.

 어떤 현상이나 의식에 몰두하면 다른 것이 보이지 않는 법이다. 눈앞의 이익이나 편의성만을 좇을 경우에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평준화라는 ‘코드’에 매달려 대학의 자율적인 학생 선발권을 무시해 대학 사회의 반발에 봉착한 대통령과 교육부가 그 꼴이다. 민심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투에만 몰두하는 한나라당 대선 후보자도 같은 모습이다. 사회의 분위기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파업만을 일삼는 노조도 대표적인 당국자다. 괜한 시비만을 양산하는 이들의 미망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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