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경쟁/케이블TV

케이블TV 약진과 저가경쟁의 덫

영원한 울트라 2010. 6. 25. 10:00

선정성과 폭력성 등 저질 콘텐츠로만 인식되던 유료방송이 변하고 있다. 지상파와 대등한 수준의 콘텐츠를 일부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가 제작하며 고화질(HD), 3차원(3D) 및 개인용비디오녹화기(PVR) 등 새로운 서비스 혁신을 플랫폼 사업자가 제공한다. 유료방송시장이 새롭게 거듭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료방송시장 구조는 여전히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신규 플랫폼 도입에 중점을 두었던 정책 기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는 1995년에 케이블(CA)TV를, 김대중 정부는 2002년에 위성방송을, 노무현 정부는 2005년에 디지털미디어방송(DMB)을, 이명박 정부는 2008년에 인터넷TV(IPTV)를 도입하여 현재의 경쟁적 유료방송시장을 형성했다. 플랫폼 간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방송시장은 방송서비스의 고품질화, 콘텐츠에 대한 제값 찾기보다는 타 사업자의 가입자 뺏기에 더 집중했다. 제한된 시장에서 출혈적 제로섬게임에 집중하도록 정책이 역할을 했다. 그 결과 유료방송 이용 요금은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보다 낮은 수준이며 광고시장 역시 사업자 수 증가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정체했다.


플랫폼 간 소모적인 가격 경쟁은 영상산업 선진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 유료방송시장의 저가 출혈 경쟁이 극심해져 산업구조의 질적 퇴보를 유발한다. 황폐화된 시장 구조에서 벗어나 방송시장 정상화를 위한 정책과 다매체를 아우르는 종합적이고 합리적인 미디어정책 틀 마련이 긴요하고도 절실한 때이다.

정책 산업 학계 등 모든 분야의 관계자는 유료방송 정상화를 위해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사회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본다. 휴대전화와 인터넷 등 통신요금은 국민 1인당 월 평균 5만∼6만 원 지출하는 반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방송에 대해서는 몇천 원도 아까워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에서는 ‘방송=무료’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방송이 정당한 대가를 받도록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플랫폼 기반 경쟁에서 콘텐츠 기반 경쟁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플랫폼 경쟁에서 기인한 시장 역행적 구조는 콘텐츠부터의 혁신을 통해 역동적 선순환 시장으로 거듭날 수 있다.

 

출혈 경쟁을 야기하는 결합상품이 최근 저가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결합상품의 지나친 가격 경쟁은 결국 유료방송시장 전체의 장기적인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더 많은 채널을 더 저렴한 가격에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은 시청자 편에서는 분명히 이로운 것이다. 그러나 유료방송 정상화라는 큰 정책적 기조에서 바라보면 과거의 그릇된 경쟁 다툼으로의 회귀현상에 대한 우려가 들지 않을 수 없다.

제살 깎기 식 저가 경쟁은 경쟁 사업자의 가격 인하를 유인하며 콘텐츠시장 붕괴로 이어진다. 방송시장은 일반 산업과는 다르다. 도매품을 사다가 소매시장에서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를 모아서 시청자에게 제공하고 그 후 수신료 수익의 일정 부분을 콘텐츠 대가로 제공한다. 플랫폼 사업자 중심의 경쟁구조가 확산되어 가격이 저렴해지면 시청자 편익에 도움이 된다고 보이지만 결국은 콘텐츠 값을 낮춘다. 이는 프로그램 제작에 대한 투자 미비로 방송콘텐츠의 질적 하락을 초래하고 시청자 피해로 귀결된다.

정부는 여러 매체가 차별적으로 순기능하고 콘텐츠 산업의 발전을 도모하는, 유료방송 시장 정상화라는 큰 틀에서 정책 대원칙을 세워 접근해야 한다. 수신료 정상화를 통하여 얻은 수익을 양질의 콘텐츠 제작 및 수급에 투자하여 시청자로 하여금 지상파 방송과 차별화되는 유료방송의 가치를 인식시키는 것이 유료방송이 정상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의 필수 조건이다.

도준호 숙명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