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경쟁/방송통신정책

미디어법 통과1년

영원한 울트라 2010. 10. 28. 23:56

조인트 까이고 매질당한 상처가 너무 깊은 탓일까. 한번 망가진 언론시계는 회생 가망이 없어 보인다. 무지막지한 기세에 눌려 잔뜩 주눅까지 들었다. 그래서일까. 언론자유 지수가 31위에서 69위로 하락했지만 전혀 부끄러운 기색도 없다. 비정상적인 방법을 동원한 여론장악에만 몰두하고 있다. 당분간 본연의 기능을 기대하긴 힘들 것 같다.  


권력에 비판적인 논객들이 퇴출당하고 있고, 심지어 애꿎은 연예인들에게 압력이 가해지고 있지 않은가. 또한 신문시장의 독과점 현상과 재정악화 문제는 심해만 가고, KBS 수신료 인상, 종편 재배치 문제 등으로 망가진 언론시계는 자꾸만 꼬여간다. 임기 중반을 넘어선 MB 정권은 여전히 ‘언론악법’ 연장선에서 언론을 길들이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파열된 언론시계는 퇴행 속으로 과속 질주하고 있다. 불과 1년 전 절차적 위법성을 무릅쓰고 한나라당이 밀어붙인 언론악법의 주된 논리는 ‘일자리 창출’과 ‘소유규제 완화를 통한 미디어산업 활성화’였지만 지금 무엇이 달라졌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되돌아보면 오히려 공영방송을 ‘정권 친화적 방송’으로 만들기 위한 숨 가쁜 1년이었다.


정권비판 프로그램 폐지, 건강한 목소리 퇴출, 시청료 인상...국민 편에서 멀어진 KBS


                                 <7월 15일 전국언론노조가 KBS파업을 알리는 언론노보>

방송의 정치적 독립은 과연 요원한 걸까. MB 정권의 방송 사유화 집착은 참으로 대단하다. 친정권성향 인사들로 포진된 낙하산 정책이 제공한 파업의 가시밭길은 내부 갈등의 골을 깊게 그어 놓았다. 또 방송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신뢰성에 심각한 상처를 안겨주었다. 거기에다 전파의 주인이자 지불주체인 국민과의 합의과정 없이 시청료 인상을 강행하고 정부는 이를 눈감아 줌으로써 거센 국민적 저항을 야기 시켰다. 이로 말미암아 공익성과 보편적 서비스에 심각한 해를 끼쳐놓았다.


정권이 KBS를 장악한 뒤 일어난 일들이다. 게다가 건강한 목소리를 내던 가수, 코미디언, 시사비평가 등은 아무런 이유 없이 밀려났다. 권력과 자본에 맞서 비판적인 소리를 내던 대표적 프로그램이었던 <시사투나잇>과 <미디어포커스>가 폐지됐고, ‘탐사보도팀’이 사실상 해체돼 무력화됐다.


<추적60분>은 갑자기 보도본부로 이관됐다. PD저널리즘의 숨통을 죄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MB 정권과 PD들은 악연의 연속이다. MBC <PD수첩>의 수난사에서도 잘 읽힌다. 그들을 더 철저하게 통제하겠다는 권력의 선언으로 해석된다. 오죽하면 KBS 내부 종사자들 중에는 “KBS를 권력으로부터 지키지 못한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 없다”며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는 KBS 새 노조의 파업은 이런 부끄러움에 대한 반성“이라고 자괴 섞인 푸념을 털어 놓는다.


KBS 신관 앞 ‘개념광장’에서 KBS 새노조 파업 21일째 집회가 열리던 지난 21일 언론노조 KBS 엄경철 본부장은 “파업이 21일이 지났지만 파업대오를 강고하게 지키고 있는 조합원들에게 자랑스럽고 고맙다”고 말하면서 “아직 사측의 태도 변화가 없다”고 보고한 뒤 “‘국민의 방송 KBS를 위해’ 끝까지 가볼 생각인데 그렇게 해도 되겠는가?, 함께 하실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이날 조합원들은 고막이 아플 정도의 큰 박수와 함성으로 지지의사를 표시했다.


그런가 하면 KBS 수신료 인상 반대 국민서명운동이 한 달째 접어들고 있다. 미디어행동을 비롯한 시민단체와 네티즌 단체들이 결성한 ‘KBS 수신료 인상 저지를 위한 100일 행동’(100일 행동) 활동이 한 달이 되었다. 100일 행동은 지난 6월 21일부터 ‘100일 100인 릴레이 1인 시위’를 펼치고 있다. 국민의 방송이 국민 편에서 점점 멀어져만 가고 있다.  


"MBC, MB정권 충견들로 포진...인사만행 자행” 총체적 공영방송 위기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 홈페이지> 

MB 정권이 망가뜨린 것은 KBS뿐만이 아니다. MBC는 지금 ‘언론인 학살’에 내부 종사자들이 치를 떨고 있다. MBC가 MB정권의 충견들로 포진되면서 온갖 인사만행이 자행되고 있다. MBC는 지난 6월 4일 이근행 언론노조 MBC 본부장, PD수첩의 오행운 PD를 해고하는 등 41명을 무더기로 징계했다. 6.2지방선거 결과가 나온 지 채 이틀도 되지 않은 시점이어서 충격을 주었다.


한국기자협회는 이날 MBC에서 벌어진 징계조치는 YTN 사태에 이은 ‘제2의 언론인 학살’이라고 규정했다. MBC 노조원들의 뜻이 성명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언론인에게 ‘해고는 살인’을 의미한다. 그러나 김재철 사장은 끝내 이근행 위원장의 숨통을 끊었다. 더 이상 MBC를 파국으로 몰아가지 말라는 사원들의 마지막 절규에도 불구하고 손에 피를 묻혔다.”


그 뿐만이 아니다. MBC 노조는 “방송 독립과 언론 자유를 외치며 싸우던 MBC 언론 노동자의 해고는 14년만의 일이다. 더욱이 100명이 넘는 사원을 징계 대상에 올린 폭거는 전 세계 언론사에서도 보기 드문 전대미문의 대학살”이라고 규정지으며 분노했다.


“MBC를 난도질해 정권의 충견임을 증명한 이들...우리는 이들이 2010년 6월 11일 MBC에서 일으킨 피바람을 가슴에 담아 기억할 것이다. 저들이 후배의 앞길을 짓밟고 언제까지 영달을 누릴 것인지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그날을 기다리며 우리는 오늘을 견딘다”는 MBC 노조의 6월 11일 성명은 지금 대한민국 언론시계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는 가늠해 준다.


어디 그 뿐이랴. MB 정권은 출범 초기부터 YTN에 대한 낙하산 인사로 방송 내부의 건강성을 훼손시켜 놓더니 급기야 그 보상약이나 된 듯, 홍상표 YTN 상무이사를 최근 청와대 홍보수석에 내정했다. 이에 대해 YTN 노조는 16일 성명을 내고 “‘상식’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세상”이라고 개탄했다.


노조는 “정권을 가리지 않고 두 차례 도전하더니 결국 소원대로 권력의 ‘입’이 됐다”며 “공직 퇴임 후 업무 관련 기업 수장 자리를 냉큼 차지하는 행태를 지적해야 할 언론사, 그곳의 고위 간부가 스스로 용감무쌍하게 곧바로 홍보 수석행 열차에 올라탔다”고 비판했다. ‘공영방송의 총체적 위기’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그렇게 급하다더니...미디어법 처리 1년이 지난 지금 뭐가 달라졌나?


방송의 과도한 정치적 종속은 ‘과연 우리에게 방송은 필요한가?’라는 물음 대신 ‘우리에게 방송은 과분한가?’로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정체성 위기를 맞고 있다. 문제는 방송의 정체성 위기는 모든 언론을 함께 위기로 몰아넣는다는 것이다. 이는 곧 민주주의의 위기와 일치한다. 그래서 퇴행적 언론정책이 빚은 참담한 결과는 정권이 바뀌어도 쉽게 복구되지 않는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역사에서 그 교훈을 찾을 수 있다.


지나온 1~2년간의 아집과 독선으로 점철된 언론정책이 대한민국 정체성과 민주주의 방향키가 될 언론시계를 얼마나 긴 과거의 시간으로 퇴보시켜 놓았는지 역사는 반드시 기록할 것이겠지만, 그 기록의 근간이 될 ‘왜?’의 물음에 대한 답은 지금도 행해지고 있다. 여론 독과점과 정권의 여론장악을 위한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어리석음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이 말이다. 

    

그래서다. 다시 1년 전으로 거슬러갈 올라가 보자. 한나라당은 방송법과 신문법 개정안을 왜 그리 급하게 처리했을까. 날치기 처리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달라진 게 별로 없다. 그렇게 급하게 서두르던 미디어법 통과 이후 정부·여당은 과연 언론의 선진화를 위해, 또 국민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방송산업 활성화를 위해 하루빨리 미디어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보채던 사람들이 1년 동안 한 일은 방송 등 언론장악 외에 별로 찾아볼 수 없다. 절차상 위법한 법이라서 법 집행을 유보하는 것일까, 아니면 다시 헌재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1년이 지난 지금, 그 때의 주장은 실체도 모호해졌다. 오로지 조·중·동 가운데 누구누구에게 종합편성채널(종편)이라는 ‘떡’을 줄 것인가라는 ‘명제’만 뚜렷하다. 방송산업 활성화를 위해 긴급한 과제 중 하나가 신문사와 대기업의 종편이나 보도전문 채널 진출로 귀결됐었으나 차일피일 미루면서 눈치만 보는 형국이다. 그러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수신료 인상?, 국민에게 부담 지어 종편 먹여 살리겠다는 속내”


신문이 지상파의 10%, 종합편성채널·보도전문채널의 30%까지 지분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한 게 방송법의 뼈대다. 그러나 종편을 따내기 위한 전방위적인 경쟁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도 당시 표결과정의 불법 논란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헌재는 “절차적으로 위법하니 국회에서 재논의 하라”고 했지만, 이행되지 않자 민주당이 ‘부작위 권한 침해 소송’을 헌재에 내놓은 상태다.


이런 절차적 문제와 별개로, 정부 여당이 날치기 이후 보여준 행보는 ‘산업 발전론’이라는 법안 강행처리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실제 정부·여당은 방송법 처리 이후 종편 추진과 광고 규제 완화 외에 이렇다 할 방송산업 활성화 정책을 내놓지 않았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21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미디어 산업 발전이 중요하다고 언론법을 밀어붙였으면서, 정작 누가 들어와서 뭘 어떻게 해야 산업이 발전하는지 큰 그림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를 보충할 만한 단서가 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종편 사업자 선정 시기를 두고 수시로 말을 바꿨다. 종편 선정 시점을 ‘2009년 7월’에서, ‘2010년 초’, 다시 ‘2010년 상반기 이후’, ‘연내(2010년 3월)’ 등으로 계속 미뤄왔다. 왜 그렇게 점점 자신이 없어진 걸까. 정부가 ‘종편 트리플 특혜’(수신료 인상을 통한 광고 파이 키우기+황금채널 배정+의무전송 혜택) 지원책을 고심하고 있는 것도 방송시장 활성화 논리에 모순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연초 5000원에서 6000원 사이로 수신료 인상선을 제시한 최시중 위원장은 이렇게 수신료가 오를 경우 7000억원 가까운 광고가 미디어산업에 풀릴 것이라면서 수신료 인상의 종편 부양 효과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여권은 언론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소유규제를 완화하면 (방송의) 광고시장 파이가 커질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제 와선 국민에게 부담을 지어 종편을 먹여 살리겠다는 속내를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 22일 ‘미디어산업발전 실체 없이 종편 특혜만 만지작’ 기사 중에서


‘양질의 콘텐츠가 자체 광고시장을 만들어낸다’는 애초 주장과는 달리 수신료를 올리지 않으면 종편 생존이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음을 잘 지적한 대목이다. 기사의 지적대로라면 종편이 콘텐츠 투자에 나서기보다는 최소투자로 열매만 따 먹으려는 조짐이 보인다는 진단이 가능하다. 종편을 둘러싼 ‘딜레마’ 역시 졸속 입법의 문제점을 드러내기는 마찬가지다.


“불완전한 미디어법, 상식․논리적으로 손질 재입법 해야”


                                                         <경향신문 22일자 사설 내용>

그렇다면 해법은 없는 것일까. 언론시계의 제 기능을 하루 빨리 되살리기 위해선 위법인 ‘언론악법’을 상식적으로, 논리적으로 손질하여 재입법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보태고 있다.


“1년 전 성립된 미디어법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고 문제가 많은 법이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여론독과점 심화다. 우리는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그것을 목도하고 있다. 따라서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은 미디어법을 재입법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경향신문> 22일 사설 ‘미디어법 날치 1년, 재입법이 근본처방이다’ 중에서


“미디어법 처리 과정의 위법 논란은 아직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다시 헌재의 판단을 기다리는 와중이지만, 작년과 같이 “위법이지만 무효는 아니다”라는 식의 상식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은 결정을 다시 내린다면 헌재의 권위는 더 크게 실추될 것이다.”

-<한겨레> 21일 ‘미디어 전망대, 1년전 미디어법 서둘러 날치기하더니’ 중에서 


미디어법 날치기 1년을 맞으면서 비판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더욱 명백해 진 것은 방송산업 활성화를 위해 그렇게 급하다면서 밀어붙인 종편 허가 수와 선정의 투명성 보다 근본적인 미디어법의 완전한 절차가 전제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어물쩍 종편 허가를 내려서는 안 된다. 보수신문사들 모두에 허가하는 최악의 경우를 우려하는 학자들도 많다. 그러나 다행히 1년이 지난 지금 진퇴양난에 빠진 것은 정부·여당이다. 언론악법이 국민과 야당, 시민사회단체를 뭉치게 했다는 사실을 그간의 선거과정에 확인해 준 때문이다.


게다가 부질없는 약속이 족쇄가 됐다. 애초 한나라당은 ‘언론악법’이 통과되면 2만1,465명의 일자리가 만들어지며, 2조9000억 원의 생산유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선전을 하면서 법안통과를 종용했었다. 하지만 국민 70% 이상이 반대했다. 게다가 헌법재판소가 국회 시정을 요구하고 있지만 한나라당은 뻔뻔하게 언론악법을 그대로 두고 있다. 1년 전 그날의 뼈아픈 사건을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