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내캔 그림편지
모네 - 가을, 숲으로 통하는 길(1876)
사랑이란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있는 것은 아니다.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며... 가을이 깊어지면 나는 거의 매일같이 뜰의 낙엽을 긁어모으지 않으면 안된다. 날마다 하는 일이언만 낙엽은 어느덧 날으고 떨어져서 또다시 쌓이는 것이다. 낙엽이란 참으로 이 세상의 사람의 수효보다도 많은가보다. 30여평에 차지 못하는 뜰이언만 날마다의 시중이 조련치 않다. 벚나무 능금나무...제일 귀찮은 것이 벽의 담쟁이다. 담쟁이란 여름 한철 벽을 온통 둘러싸고 지붕과 연돌의 붉은 빛만 남기고 집안을 통째로 초록의 세상으로 변해 줄때가 아름다운 것이지, 잎을 다 떨어뜨리고 앙상하게 드러난 벽에 메마른 줄기를 그물같이 둘러칠 때 쯤에는 벌써 다시 지릅떠 볼 값조차 없는 것이다. 귀치 않은 것이 그 낙엽이다. 가령 벚나무 잎같이 신선하게 단풍이 드는 것도 아니요.,처음부터 칙칙한 색으로 물들어 재치없는 그 넓은 잎이 지름길 위에 떨어져 비라도 맞고나면 지저분하게 흙속에 묻혀지는 까닭에 아무래도 날아 떨어지는 쪽쪽 그 뒷시중을 해야한다.
벚나무 아래에 긁어 모은 낙엽의 산더미를 모으고 불을 붙이면 속의 것부터 푸슥푸슥하게 타기 시작해서 가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바람이나 없는 날이면 그 연기가 낮게 드리워져서 어느덧 뜰안에 가득히 담겨진다. 낙엽 타는 냄새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남다. 갈퀴를 손에 들고는 어느 때 까지든지 연기 속에 우뚝 서서 타서 흩어지는 낙엽의 산더미를 바라보며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별안간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끼게 된다. 연기는 몸에 배서 어느결엔지 옷자락과 손등에서도 냄새가 나게 된다. 나는 그 냄새를 한없이 사랑하면서 즐거운 생활감에 잠겨서는 새삼스럽게 생활의 제목을 진귀한 것으로 머릿속에 떠올린다.
음영과 윤택과 색채가 빈곤해지고 초록이 전혀 그 자취를 감추어 버린 꿈을 잃은 헌출한 뜰 복판에 서서 꿈의 껍질인 낙엽을 태우면서 오로지 생활의 상념에 잠기는 것이다. 가난한 벌거숭이의 뜰은 벌써 꿈을 메우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탓일까. 화려한 초록의 기억은 참으로 멀리 까마득하게 사라져버렸다. 벌써 추억에 잠기고 감상에 젖어서는 안된다. 가을이다. 가을은 생활의 시절이다. 나는 화단의 뒷자리를 깊게 파고 다 타버린 낙엽의 재를...꿈의 시체를 땅속에 깊이 파묻고 엄연한 생활의 자세로 돌아서지 않으면 안된다.
책상 앞에 붙은채 별일 없으면서도 쉴새없이 궁싯거리고 생각하고 괴로와하고 하면서 생활의 일이라면 촌음을 아끼고 가령 뜰을 정리하는 것도 소비적이니 비생산적이니 하고 경시하던 것이 도리어 그런 생활적 사사에 창조적 생산적인 뜻을 발견하게 된것은 대체 무슨 까닭일까. 시절의 탓일까. 깊어가는 가을이, 벌거숭이의 뜰이 한층 산 보람을 느끼게 하는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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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나는 내캔 그림편지
모네 - 가을, 숲으로 통하는 길(1876)
사랑이란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있는 것은 아니다.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며... 가을이 깊어지면 나는 거의 매일같이 뜰의 낙엽을 긁어모으지 않으면 안된다. 날마다 하는 일이언만 낙엽은 어느덧 날으고 떨어져서 또다시 쌓이는 것이다. 낙엽이란 참으로 이 세상의 사람의 수효보다도 많은가보다. 30여평에 차지 못하는 뜰이언만 날마다의 시중이 조련치 않다. 벚나무 능금나무...제일 귀찮은 것이 벽의 담쟁이다. 담쟁이란 여름 한철 벽을 온통 둘러싸고 지붕과 연돌의 붉은 빛만 남기고 집안을 통째로 초록의 세상으로 변해 줄때가 아름다운 것이지, 잎을 다 떨어뜨리고 앙상하게 드러난 벽에 메마른 줄기를 그물같이 둘러칠 때 쯤에는 벌써 다시 지릅떠 볼 값조차 없는 것이다. 귀치 않은 것이 그 낙엽이다. 가령 벚나무 잎같이 신선하게 단풍이 드는 것도 아니요.,처음부터 칙칙한 색으로 물들어 재치없는 그 넓은 잎이 지름길 위에 떨어져 비라도 맞고나면 지저분하게 흙속에 묻혀지는 까닭에 아무래도 날아 떨어지는 쪽쪽 그 뒷시중을 해야한다.
벚나무 아래에 긁어 모은 낙엽의 산더미를 모으고 불을 붙이면 속의 것부터 푸슥푸슥하게 타기 시작해서 가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바람이나 없는 날이면 그 연기가 낮게 드리워져서 어느덧 뜰안에 가득히 담겨진다. 낙엽 타는 냄새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남다. 갈퀴를 손에 들고는 어느 때 까지든지 연기 속에 우뚝 서서 타서 흩어지는 낙엽의 산더미를 바라보며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별안간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끼게 된다. 연기는 몸에 배서 어느결엔지 옷자락과 손등에서도 냄새가 나게 된다. 나는 그 냄새를 한없이 사랑하면서 즐거운 생활감에 잠겨서는 새삼스럽게 생활의 제목을 진귀한 것으로 머릿속에 떠올린다.
음영과 윤택과 색채가 빈곤해지고 초록이 전혀 그 자취를 감추어 버린 꿈을 잃은 헌출한 뜰 복판에 서서 꿈의 껍질인 낙엽을 태우면서 오로지 생활의 상념에 잠기는 것이다. 가난한 벌거숭이의 뜰은 벌써 꿈을 메우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탓일까. 화려한 초록의 기억은 참으로 멀리 까마득하게 사라져버렸다. 벌써 추억에 잠기고 감상에 젖어서는 안된다. 가을이다. 가을은 생활의 시절이다. 나는 화단의 뒷자리를 깊게 파고 다 타버린 낙엽의 재를...꿈의 시체를 땅속에 깊이 파묻고 엄연한 생활의 자세로 돌아서지 않으면 안된다.
책상 앞에 붙은채 별일 없으면서도 쉴새없이 궁싯거리고 생각하고 괴로와하고 하면서 생활의 일이라면 촌음을 아끼고 가령 뜰을 정리하는 것도 소비적이니 비생산적이니 하고 경시하던 것이 도리어 그런 생활적 사사에 창조적 생산적인 뜻을 발견하게 된것은 대체 무슨 까닭일까. 시절의 탓일까. 깊어가는 가을이, 벌거숭이의 뜰이 한층 산 보람을 느끼게 하는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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