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후에 일어난 서정적 추상회화의 한 경향, 정형화되고 아카데 미즘화된 추상, 특히 기하학적 추상에 대한 반동으로 생겨난 것으로, 격정적이 며 주관적인 것이 특징이다. 앵포르멜이란 '비정형'을 의미하는 말로, 넓은 의미에서 보면 추상표현주의의 범주에 들지만 특히 미국의 액션 페인팅에 대응 하는 프랑스의 예술 동향을 가리킨다. 앵포르멜이란 프트리에, 볼스, 뒤뷔페 등 세 사람의 선구자가 있어, 그 기원은 1945년에 발표된 프트리에의 '인질전', 1946년 뒤뷔페의 '오트 파트전', 1947년 볼스의 전시회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은 모드 가혹한 전쟁의 피해자들로서, 이 세 전시회의 공통적인 특징은 전쟁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억압된 인간의 극한적인 정신 구조를 다루고 있다 는 점이다. 그러나 앵포르멜의 이념이 구체화된 것은 비평가 미셀 타피에 의 해서였다. 그는 《아르 오트르》란 소책자를 내어, 본래 앵포르멜의 근원적인 생명의 징후는 구상·비구상을 부정하고, '생생한' 포름에 정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입체파와 기하학적 추상은 붕괴된 고전주의의 '마지막 절 규'에 지나지 않고 초현실주의도 낭만주의의 문학적 변종으로 보아 부정한다 고 밝히고, 가치 전도를 위해 앤티휴머니즘의 극한까지 밀고 갔던 니체와 다 다이즘만이 받아 들일 수 있는 유산으로 규정한 뒤, 이 반근대두의 위에 위상 기하학, 집합론, 양자역학, 비교적 기독교, 노장사상 등을 끌어들여 앵포르멜 미술의 진로를 제시했다. 1952년 6월에 타피에의 주도하에 '앵포르멜이 의미하 는 것'이란 명칭의 전시회가 열려 이 운동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이 전시회의 명칭은 구조주의 언어학자 소쉬르의 개념에서 따온 것으로 '의미하는 것'과 '의미하지 않는 것'을 등가로 놓고, 비정형 속에서 의미를 찾고자 한 것이었다. 따라서 타피에는 앵포르멜 미술에서는 표현의 제스쳐보다는 마티에르에 중점 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이것이 액션 페인팅과 다른 점이다. 그후 앵포 르멜은 국제적인 예술운동으로 전개되었다. 본래 이즘이나 유파를 목표로 하 지 않았던 앵포르멜 운동은 그 구성원도 늘 유동적이었지만 주로 파리에 살고 있던 젠켄스리오펠, 아펠 등이 중심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