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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명화를 훔치는가, 미술품 도난으로 보는 명화의 역사

영원한 울트라 2006. 6. 11. 10:13
누가 명화를 훔치는가, 미술품 도난으로 보는 명화의 역사
 
[신간 소개] 구치키 유리코의 <도둑맞은 베르메르>

[데일리안 강명기]
◇ ⓒ 놀와
미국 FBI는 문화적 가치가 높아 우선적으로 찾아야 할 세계 10대 도난 미술품 목록을 발표하고, 전 세계 시민들의 협력을 요청하는 글을 발표했다. FBI의 미술품 범죄 수사팀이 선정한 작품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성모와 실패>, 뭉크의 <절규>, 카라바조의 <아기 예수의 탄생>, 렘브란트의 <갈릴리 바다의 폭풍우>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2005년 12월에 실린 외신보도로 오늘날 명화 도난사건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예술에는 음악, 문학, 그림, 무용, 연극 등 창의성을 요구하는 다양한 분야가 있다. 하지만 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오로지 그림, 즉 미술품밖에 없다. 미술을 제외한 다른 분야에서 다른 사람의 작품을 훔친다고 할 때 그것은 표절의 형태로 드러나며 도난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미술품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작품으로 형상화되어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마음의 안식을 주며 시대에 따라서는 부와 명성의 상징이기도 했다. 현대에 이르러 미술품은 다양한 역사적 지식을 후세에 전해주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일종의 사회적, 경제적 가치 창조에 일조를 해왔다.

하지만 미술품이 갖는 사회적 경제적 역할의 비중에 비례해 미술품의 상품가치 또한 높아지자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도난, 위작, 반달리즘, 아트 테러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미술품 도난은 단순히 돈을 노리는 절도가 아닌 정치적 이유를 띠고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뿐만 아니라 현대의 자본주의 시장논리를 뛰어넘어 치솟고 있는 미술품의 경매가격은 도난을 부추기는 하나의 요인이 되었으며, 이러한 가격 상승은 미술품을 범죄조직의 지하세계로 끌어들이기에 충분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도난당한 작품들은 지하컬렉션 전리품의 하나가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마약이나 무기의 밀거래 대금으로 유통되기도 한다. 이들 도난당한 미술품들은 현재는 60억 달러에 달하고 있으며 매년 10퍼센트 비율로 증가하고 있다.

도난당한 미술품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올 확률은 10퍼센트 미만으로 한번 잃어버린 명화는 다시 볼 수 없다고 여기면 된다.

지금도 세계적으로 미술품 도난에 관련된 기사는 심심치 않게 보도되고 있으며 도난당한 작품은 누구나가 쉽게 알 수 있는 거장들의 명화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난사건으로는 1911년 루브르 미술관에서 일어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들 수 있으나, 이 사건은 애국심이 발로된 낭만적 사건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현대 미술품 도난사건에 있어서는 거대 범죄조직에 의한 범행으로 더 이상 사회의식이 함유된 사건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1985년에는 마르모탕 미술관에서 모네의 <인상-해돋이>를 도난당했으며, 1990년에는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에서 렘브란트의 <갈릴리 바다의 폭풍우>와 베르메르의 <세 사람의 연주회>가 도난당했다.

1994년에는 릴레함메르에서 동계올림픽 개막식날 뭉크의 <절규>를 도둑맞았으며, 1998년에는 루브르 미술관에서 코로의 <세브르 가는 길>을 도난당했다. 최근에는 2003년 영국 드럼랜리그 성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마돈나>가 관광객으로 위장한 절도범에 의해 도난당했다.

또한 뭉크의 또 다른 <절규>는 2004년 오슬로 하계올림픽 개막식날 뭉크의 <마돈나>와 함께 도난당해 올림픽 개막식과 연관되는 징크스를 보였다. 특히 이라크 전쟁 발발시 바그다드 미술관에서 일어난 미술품 약탈은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안겨주었으며, 이외에도 행방불명인 미술품은 무수히 많이 있다.

이러한 미술품 도난사건은 비단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1993년 운보 김기창 화백의 그림 15점을 도난당한 것을 들 수 있다.

도난은 1993년 팔순 기념으로 열린 전시회 준비 중에 발생했는데, 전시하려던 작품 15점이 충북 청원의 운향미술관에서 몽땅 다 사라진 것이다. 작품은 1934년작 <전복도>를 비롯해 <고양이와 나비>, <고양이와 벌>, <부엉이>, <여인상>, <투계> 등이다.

다행히도 김기창 화백의 작품은 3년 후에 화랑 관리인의 범행으로 밝혀지면서 되찾았다. 범인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 범행에 따른 처벌은 면하였다. 하지만 한국전쟁 때 월북한 운보의 동생 김기만 화백이 형에게 선물한 수묵화 <난초>가 2000년에 운보갤러리에서 전시 중 도난당하는 사건이 일어나 안타까움을 전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같은 해에 조선족 출신 화가인 박태옥의 <중화미인>이 예술의 전당에서 사라졌으며, 2001년에는 ‘한독조형전’에 출품한 유병영의 조각 <부분과 전체>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도난당했다.

더욱 어이없는 미술품 도난사건은 1978년 순회전시 중이던 국전 입상작품 58점이 대전에서 도둑맞은 것이다. 이때 범인들은 유명화가의 작품만 골라 면도날로 화폭을 도려내어 달아났다.

이들 작품들은 지금까지도 오리무중이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도난사건으로는 2002년 국립 공주박물관에서 국보 제247호 <금동보살입상> 등 4점을 도둑맞았다가 다시 찾은 일도 있다. 이 사건은 당시 언론에 크게 알려지면서 장물업자가 구입을 취소했다는 소문이 나 범인의 꼬리가 잡힌 경우이다.

국립 공주박물관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경우는 미술품 도난 중에서도 특히 문화재의 도난이 주를 이루고 있다. 1963년에는 봉은사에서 보관 중이던 보물321호인 <지정 4년명 고려 청동향로>가 사라졌으나 몇 주 후에 꼬리를 잡혀 다시 찾을 수 있었다.

1967년에는 덕수궁미술관에서 전시된 국보 제119호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2001년에는 안평대군의 글씨가 적힌 국보238호인 <소원화개첩>을 도난당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도난사건은 1927년 11월에 경주박물관에서 일어났다. 바로 금관총 출토유물 도난사건이다. 과대, 요패, 귀고리, 팔찌, 반지 등 황금유물만 노린 범행으로 5개월 후에야 경찰서장 관사 앞에서 발견되었고 지금까지도 범인은 잡히지 않고 있다.

그때 잃어버린 과대와 요패는 지금 보물88호로 지정되어 있다. 얼마 전(2006년 4월)에는 1980년 초에 선암사에서 도난당한 <팔상도> 외 5점이 경매에 나타나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의 이러한 미술품 도난에 관한 현실은 정확한 기록의 부재와 안일한 보안과 관리 소홀에 의해손쉽게 이루어지고 있다.

1984년부터 지금까지 불교계에서 도난당한 문화재는 송광사의 을 비롯해 총 473건에 달하고 있지만 거의 회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문화재청에 등록되어 있는 도난 문화재는 2005년 9월 현재 136건으로 총 5,451점에 달하고 있으며, 도굴과 함께 도난의 다른 형태인 해외유출 문화재의 경우는 74,548점에 이르러 미술품 도난이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미술품 도난과 더불어 또 다른 범죄 형태인 그림 위작도 현대 예술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불과 한 달 전인 2006년 5월 2일에는 경매에서 변시지 화백의 작품 <제주풍경> 10호가 1,150만원에 판매되었으나 정작 화가 자신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해서 위작시비에 휘말렸다.

이러한 위작시비는 최근 들어 세간에 화젯거리로 자주 오르내리고 있는데, 2005년 4월에는 이중섭 화백 작품의 진위 논란으로 연일 언론이 들끓기도 했다. 그동안 위작의 진위논란이 끊이지 않고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단연 이중섭과 박수근이다.

1982년부터 10년간 감정한 이중섭 화백의 작품 189점 가운데 75.7%인 143점이 가짜 판정을 받았으며, 박수근 화백은 101점 가운데 36.3%인 37점이 가짜였다.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위작 논란도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다. 작가 본인이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해도 감정가들은 진품이라고 주장했으며, 이러한 논란으로 결국 천경자 화백은 붓을 꺾고 미국으로 떠나는 불행한 사태까지 발생했다.

최근에는 피카소를 비롯해 달리, 마티스, 렘브란트 등 세계 거장의 작품들을 우리나라에서도 연이어 전시하고 있으며, 위작과 문화재 도난, 해외문화재유출 반환 문제 등 미술품에 대한 범죄가 심심치 않게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이러한 미술품 범죄는 결코 남의 이야기로 방관할 수만은 없다.

결국 미술관에 걸린 아름다운 명화가 갖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도난의 역사는 명화를 보는 일반적인 방식과는 달리 명화에 대한 전혀 다른 인식의 폭을 넓혀줄 것이며, 미술품 도난과 위작이라고 하는 범죄를 통해서 결국은 명화란 무엇인가, 하는 정의를 우리에게 되묻고 있는 것이다./ 강명기